요즘 거리에선 딱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스마트폰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으로. 이런 시대에 책을 습관처럼 읽는 것은 안드로메다 별 이야기일 수 있다. 특히나 아이들에게 독서를 습관화한다는 건 스마트폰 쓰지 못하게 하는 만큼 어렵다.
형제들끼리 의사소통하라고 책 읽게 해지영이네 가족은 그런 면에서 별난 가족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800권을 읽었다. 그것도 태산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만 800권이란다. 1년 동안 매일 2권 이상은 읽었다는 거다. 물론 한 사람이 아닌 지영이네 가족이 그렇다. 덕분에 안성시립도서관으로부터 '2012년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되어 인증 명패도 받았다.
책 읽게 하는 데 목숨 거는(?) 열혈 엄마려니 생각했다. 이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는. 만나자마자 그 생각은 선입견일 뿐임이 밝혀졌다. 그들은 단지 책 읽는 걸 자연스레 즐기는 가족이었다. 엄마 박은희씨가 말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한 이유는 순전히 형제들끼리 의사소통 잘하고, 재밌게 잘 놀라고 시작한 거죠."이 집 아이들은 3남매다. 첫째 손지영(11세), 둘째 손일우(9세), 막내 손혜민(7세)이다. 이들의 장난감은 책일 경우가 많다. 블록 쌓기 놀이를 할 때도 책에서 얻은 영감으로 이야기를 꾸며 놓는단다.
요즘 읽는 책 따라 아이들 꿈도 달라져... 엄마 책도 빌려 오는 아이들
요즘 지영이는 '살아남기 시리즈'에 푹 빠졌다. 예컨대 '북극에서 살아남기,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등. 호기심이 많은 지영이다운 독서다. 둘째 일우는 동화책을 좋아한다. 일우는 이야기 형태의 책을 즐겨 읽는다. 막내 혜민이는 아직 글을 시원하게 읽는 편이 아니다. 책을 봐도 주로 그림책을 본다.
"지영이는 아무래도 고학년이 되다 보니 위인전을 권유해볼까 해요. 일우는 전래동화를 많이 읽어보라고 할 거고, 혜민이는 그냥 이것저것 읽게 하려고요. 막내는 아직 어리니까요. 호호호호"이렇게 말하니 엄마가 아이들의 독서생활을 통제하나 생각할 수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엄마는 한 번도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법이 없다. 책을 사러 갈 때도 꼭 아이들 세 명과 함께 간다. 아이들 책이니 아이들이 스스로 고르게 하기 위함이다.
꿈이 뭐냐고 물으니 아이들의 대답이 재밌다. 지영이는 "요리사에서 파티쉐어, 그리고 탐험가에서 생물학자로 바뀌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럼 또 바뀔 수 있느냐"는 질문에 조금도 망설임 없이 "네. 그래요"란다. 둘째 일우는 "자동차 정비사가 꿈이었는데, 지금은 생물학자에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 아이들의 꿈 변천사는 바로 '요즘 즐겨 있는 책'의 변천사였던 것. 책 따라 꿈도 바뀐 게다. 아이들은 책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꼭 커서 뭐가 된다기보다 말 그대로 상상하는 거다. 꿈이 바뀔 거라는 지영이의 말이 그걸 증명해준다.
아이들은 가끔 학교에서 책을 빌려 온다. 순전히 엄마도 읽어보라고. "왜 그러느냐?"는 질문에 지영이가 대답한다. "내가 읽어서 좋으니까, 엄마도 좋아하실 거 같아서요"란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감동이 확~~. 엄마 읽으라고 빌려 오는 마음도 아름답다. 평소 엄마와 아이들이 책으로 얼마만큼 교감하는지도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 가족은 텔레비전은 안 볼까. 아니다. 드라마와 각종 오락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지영이의 아빠는 바쁜 직장인이라 퇴근해오면 책보다 텔레비전이 가깝다. 온 가족이 함께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다. 예컨대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등. 이 말을 하고 있으니 일우가 "맞아요. 정말 재밌어요"라고 말한다.
"내가 봐도 아이들 책은 재밌어요"라는 엄마의 말. 그것은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느니,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라느니 하는 말들이 자리 잡을 곳이 없어 보인다. 아이들의 책을 엄마가 더 즐긴다는데 두말해서 무엇하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책 읽어 주는 엄마요즘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아이들 세 명을 앉혀 놓고 엄마가 책을 읽어 준다는 것. 간식 시간이나 취침 전에 이루어진다고. 책 읽어 줄 때, 아이들 세 명의 발가락과 손가락 등을 만져준다. 말하자면 엄마의 스킨십이다.
눈에 그려지는가. 막둥이는 엄마의 무릎에, 첫째는 엄마의 왼쪽 어깨에, 둘째는 오른쪽 어깨에 기대어 엄마와 책을 번갈아 보는 모습을. 엄마는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과 스킨십 하는 장면을.
"직접 읽을 때도 좋지만, 엄마가 읽어주면 정말 좋아요"라는 지영이. "그래도 내가 읽을 때가 좋아요"라는 일우. 배시시 웃기만 하는 막내 혜민이. 이 아이들은 엄마가 책 읽어줄 때 행복지수가 확 올라가는 듯 보였다. 특히 지영이는 아기 때부터 엄마가 책 읽어주는 소리를 듣고 커다보니 그 느낌이 좋은 게다.
그렇게 가족이 모두 정신없이 재밌게 읽다 보니 2012년 한 해만 800권을 빌려본 게다. 물론 집 바로 옆에 '태산 작은 도서관'이 있었던 건 행운 중 행운이었다. 덕분에 엄마와 아이들은 요즘도 책이랑 잘 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30일, 안성 태산 작은도서관에서 지영이네 가족과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