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한진중공업 노조가 벌이고 있는 공장 점거 시위'에서 쇠사슬을 묶은 정문 자물쇠의 열쇠는 누가 가지고 있으며, 누가 열어줄까요?
정답은 '한진중공업 경비원 아저씨'
그런데 회사는 외부세력과 소수노조가 회사를 계획적으로 침입해 불법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앓는 소리를 합니다. 열쇠도 자기들이 갖고 있고 가끔 음식 넣어줄 때만 열어주면서 말이죠. 그리고 밖에 나오면 영도조선소를 빼곡하게 둘러싼 경찰이 연행해갑니다. 문 잠가 놓고, 만약 나오면 잡아가면서 이걸 농성이라 말합니다. 정말 이게 '농성'인가요? 아니면 '감금'인가요?
또 회사는 무단점거로 인해 조업마저 중단됐다며 하소연합니다. 고 최강서씨의 유가족과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회사 안에 천막으로 빈소를 만들고 바람을 막을 비닐을 철골 구조물에 둘렀습니다. 제가 볼 때 약 25만㎡ (7만5000여평)이라는 이 공장 안에서 이 천막이 얼마나 거대한 점거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들어오지 말라는 곳에 들어왔으니 잘못은 잘못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어쩌다 들어오게 됐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처음 들어왔던 지난달 30일, 저는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운구가 시작되자 장례식장 안까지 들어와 고 최강서씨의 관이 움직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날 경찰은 운구행렬을 향해 여러번 "관이 움직이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경찰이 쳐놓은 차단선을 뚫고, 뚫고 나아가던 운구 행렬이 결국 한진중공업 서문 근처에서 완전히 막혔습니다. 경찰력으로 둘러싸인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경찰이 배치되지 않은 조선소 서문을 사람들이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밤에 회사에서 버틸 준비해서 출근하는 관리자들
발로 차기도 하고 나중에는 도로에 있던 쇠막대기로 문을 쳐서 결국 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휩쓸려서 조선소 안으로 관과 함께 들어갔습니다. 지금도 안에 있는 노조원들은 "정말이지 그 문이 열릴지는 몰랐다"고 말합니다. 공장 안에 있는 유가족은 "당시 경찰은 마치 쥐를 잡듯 우리를 몰아갔고 관마저 경찰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협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고인의 관을 빼앗아 가져갈 것이라 생각했던 유가족의 생각은 그리 허무맹랑한 소리는 아닙니다. 1일 <부산일보>는 부산경찰청 관계자의 말을 빌려 경찰이 "시신을 압수할지 검찰에 문의까지 했지만 시위용품이 아니라 압수할 수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나아가 회사는 현장에서 누구도 보지 못한 용접절단기를 이용해 시위대가 문을 열었다고 주장합니다. 현장에 오지 않았던 언론이 이 말을 듣고 쓰기 시작하고 이것이 마치 사실인 양 퍼집니다. 경영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도 31일자 입장문에서 "(시위대가) 서문으로 이동해 미리 준비한 해머, 용접 절단기, 쇠봉 등으로 철문을 부순 후 시신이 든 관을 들고 조선소로 난입했다"며 즉각적인 공권력의 개입을 촉구합니다.
사실 워낙 확신에 차서 언론에 알리기에 저만 못 본 건 줄 알았는데 노조원 그 누구도 용접절단기를 봤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노조원들이 거짓말 하나 싶어 현장을 지휘했던 영도경찰서 경비작전계 관계자에게도 물었습니다. 본 적 없답니다.
아! 또 있습니다. 한진중공업은 직원들 퇴근을 시켜달라 했습니다. 대책위는 그러라고 했습니다. 출근도 하게 해달라 했습니다. 그래서 하라 그랬답니다. 그래서 직원들은 어제도 퇴근했고, 오늘은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아예 회사 관리자들은 밤에 회사에서 버틸 준비까지 해서 출근했습니다. 침낭을 든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퇴근하시라 해도 굳이 짐까지 싸서 다시 주말 보내러 들어오시다니… 진정한 '농성'은 어쩌면 이 분들이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정이 이런데 1일자 <중앙일보> 기사 제목은 '한진중 노조 이틀째 시신 시위 … 직원들 갇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