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필을 선언한 고종석이 지난 1월 장편소설 <해피패밀리>를 출간했다. 복귀를 기대한 팬들에게는 아쉽게도, 절필선언을 하기 2년 전에 연재했던 작품을 올해 들어서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은 제목 그대로, 단란한 가정처럼 보이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의 구성은 9명의 인물이 각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삶과 가족에 대한 생각을 독백으로 풀어내고 있으며, 실제 다른 인물들이 써내려간 것처럼 등장인물들 각각의 생각과 성격이 드러나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행복한 가족일 것만 같은 이 가정에도 갈등이 존재한다. 이야기는 아들인 '한민형'의 목소리로 시작되는데, 몇 페이지만 넘겨보면 그가 늘 술을 퍼마시며 아버지가 운영하는 출판사의 편집장에 안주하는 것을 부모가 늘 걱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 '한진규'는 그런 아들을 그저 멀리서 바라만보는 방관자같다. 모자간의 갈등마저도 어찌 손쓰지 못하고 무력함을 느끼며, 이따금씩 곁에서 자신의 아내만 다독일 뿐이다. 고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한경화'는 아들 민형과 큰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이고, 다른 가족들로는 민형과 남매인 '한영미'와 '한영주'가 있다. 그리고 민형의 대학후배 '이정석'과 장모인 '강희숙', 딸 '한지현'이 등장한다. 모자간의 갈등을 봉합해주는 역할을 하는 아내 '서현주'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누나 '한민희'까지. <해피패밀리>는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의 모습을 나름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각자가 속해있는 가정에 대한 허심탄회한 속내를 천천히 드러내면서, 갈등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점차 복잡하게 꼬여있는 원인을 드러낸다. 한 두가지 일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오며 겪은 사건들이 쌓여 이젠 풀어내기 힘든 실타래처럼 엉켜있다.
"그들을 지금까지 함께 살게 한 것은 그저 관성이었을지도 모른다."(본문 중에서)슬프게도, 그 관성으로 살아가는 가정은 비단 소설 속 '민형'의 집안 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근 '가족해체' 현상이 점차 가속화되어, 가족의 규모가 작아지다 못해 점차 독신가정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해피패밀리>의 문장들은 그 아슬아슬한 관성마저도 기어이 무너지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을 꿰뚫어보고 있는 듯 하다.
담담한 문체로 더듬어가는 가족의 모습,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기?<해피패밀리>에서의 개인은 모두가 일정부분씩 이기적이다. 가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 '내 가족이 이랬으면' 하고 그들의 모습에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투영하고 기대한다. 아홉명의 인물 중 대다수가 드러낸 심정은 그런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소설은, 그렇게 등장인물 모두가 가족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드러낸 뒤에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가족의 모습이 그려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과정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것을 자신의 시점에서 느낄 뿐, 그 모습이 실제로 어떠한지 제 3자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본 적은 없지 않나. 그 덕분에, 소설 <해피패밀리>에선 아홉명의 주인공이 각자가 더듬어 본 가족이라는 코끼리의 모습을 독자가 마지막 장에서 짜맞추어 느껴볼 수 있다.
또한 그런 점에서, 현실에서 살아가는 우리네도 크게 다르지 않음을 되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에게 자신이 원하는 역할을 부여하고, 특정한 기대를 걸고, 그에 못 미치면 실망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 않은가. 정작 실제로 내가 속한 가족의 현실이 어떠한 것인지는 잊어버린 채로.
소설은 담담한 눈빛으로 이기적인 가족의 모습을 그려냈지만, 역설을 통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는 않은 듯 하다. 되레 더욱 담담한 문체로 그 가족들 누구도 비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말한다.
"우리 가족 가운데 우리 가족 가운데 미친 사람 아무도 없어. 그냥 특별한 일을 겪었을 뿐이고, 다 많이 놀랐을 뿐이야."(본문 중에서)<해피패밀리>는 우리가 흔히 떠올릴만한 '행복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내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작가가 '이렇게 살아야 행복한 가족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갈등을 겪고 그로 인한 가족구성원들의 상처가 불안하게 봉합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가족을 보여준 셈은 아닐까.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다"는 주인공의 대사, 쉽게 들을 수 있는 당연한 말이지만 때로 많은 사람들은 그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내 방식대로의 행복이라는 틀에 가족을 맞추어야만 한다는 태도로.
명절에 가족-친지들간의 '잔소리 선물셋트'에 시달린 사람이라면, 혹은 자신도 모르게 안겨준 사람이라면 <해피패밀리>를 읽으며 다시금 돌아보는건 어떨까. 자신과, 자신이 속한 가족의 모습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해피패밀리>(고종석 씀 | 문학동네 | 2013.1. |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