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 공약을 두고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반면 야당에서는 박 당선인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교육분야 시민기자들과 함께 박 당선인의 교육 공약을 점검하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교육이 시작됩니다."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 선거 교육공약집 첫 장에 적혀 있는 핵심 기치다. "과도한 경쟁과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학생의 소질과 끼를 일깨우는 행복교육으로 바꿔나가겠다"는 것이다.
이거 박근혜 교육정책 맞아?
박 당선인의 이런 기치는 글귀로만 본다면 진보 교육단체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한 진보 교육단체 관계자는 "박 당선인의 교육공약은 대중 포섭정책의 일환이면서, 이명박 교육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위기감이 깊어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내놓은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박 당선인의 교육공약은 25개 항목으로 나뉘어 담겨 있다. 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초등 일제고사(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 폐지, 중학교 자유학기제다.
이 둘은 모두 교육공약집 '꿈과 끼를 살려주는 교육과정 운영' 항목에 들어있다. 일제고사와 같은 지나친 경쟁이 학생들의 꿈과 끼를 좀먹고 있다는 지적을 일부 받아들인 결과로 볼 수 있다.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같은 날 똑같은 문제지로 시험을 치르는 일제고사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첫 해인 지난 2008년 시작됐다. 지난해까지 모두 5차례 시행한 일제고사는 진보진영 등에서 '막장 시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부 학교에서는 초등학생에게까지 반강제로 야간 문제풀이를 시켰고, 성적 조작과 커닝 조장 등 여러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최근엔 충북지역 한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학교 관리자들이 '일제고사 부정사건'을 놓고 싸움을 벌이다 경찰까지 개입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청주 D중 학생들은 지난해 6월 26일 교과부가 치른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에서 부정이 일어났다고 작년 11월 폭로했다. 하지만 학교 관리자들은 이런 폭로를 부인했다.
심판을 봐야할 충북도교육청은 지난해 11월 감사를 벌인 뒤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면서 관리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폭로 학생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결론이어서 논란이 일었다.
결국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수사 두 달 만인 지난 2월 5일 "일제고사 부정은 사실"이라는 수사결과를 내놨다. 이 지역 교육계에서는 "얼굴을 들 수 없는 막장 드라마가 펼쳐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교조 충북지부(지부장 박옥주)는 논평을 통해 "지난 5년간 충북도교육청 이기용 교육감은 일제고사 연속 전국 1위 등 기록경신을 요구하며, 무리하게 학교 현장에서 '학업 미도달 학생' 없애기를 강요해왔다"면서 "이번 D중학교 부정사례는 전국 1위를 강요하는 도교육청의 일제고사 체제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제고사 '3년 연속 전국 1등'을 내세우며 교육청 현관 앞에 '일제고사 1등 돌탑'까지 세운 충북교육청의 책임이 크다는 얘기다.
해마다 따라붙는 일제고사 말썽, 없애려면...
사실 일제고사 뒤에는 해마다 말썽이 따라붙었다. 일제고사 응시 선택권을 안내했던 교사들이 줄줄이 해직된 뒤 법정 싸움을 통해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부정 사건도 꼬리를 물었다. 2009년 2월 전북 임실의 성적 조작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도 충북에서만 D중을 비롯해 2개 학교에서 부정 시비가 벌어졌다. 일제고사 성적 결과가 교과부의 시·도교육청 평가와 학교 성과상여금과 연계되면서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이런 형편에서 박 당선인이 일제고사를 손질하는 방안을 내놓아 진보 교육단체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초등학교 평가는 폐지하고 중학교 평가에서는 시험과목을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대선기간 때 박 당선인에게 '색깔론 공격'을 받은 전교조는 초등학교 일제고사 폐지에 찬성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중학교, 고등학교도 일제고사를 없애거나 일부를 뽑아 표집해서 시험을 치르는 표집평가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하병수 전교조 대변인은 "일제고사가 경쟁교육의 조기 격화를 부추긴 주원인이었다는 점에서 초등학교 일제고사 폐지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아직 미흡하다"면서 "일제고사를 학생의 자유선택에 맡기거나 표집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반면, 박 당선인과 가까운 한국교총은 초등 일제고사 폐지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안양옥 교총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초등 일제고사 폐지에 대해 "초등에서는 영어과목을 없애는 등 과목을 줄이면 된다"라고 밝혔다. 일제고사 폐지 반대 의사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자유학기제...전교조는 찬성, 한국교총은 반대박 당선인이 내놓은 중학교 자유학기제 또한 눈길을 끈다. 이 제도는 중학교의 한 학기를 잡아 중간·기말고사 등 필기시험을 없애는 대신 체험활동 중심의 교육을 하도록 하는 제도다.
자유학기제는 박 당선인의 교육공약 초안을 잡은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직접 만든 것이다. 문 교육감도 지난해 교육감 선거에서 '중1 시험폐지' 공약을 내놓았지만, 선거 뒤 한국교총이 반발하자 거둬들인 바 있다. 대신 중학년 1학년의 중간고사를 폐지하는 시범학교 운영방안을 최근 새롭게 내놨다.
자유학기제에 대해서도 전교조는 조심스런 찬성 의견을 내놨다. 일단 하 대변인은 중학교 자유학기제에 대해 "입시경쟁의 조기격화를 차단하고 학생의 진로적성 탐색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은 일단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입시경쟁 체제가 현실로 존속하는 상황에서 그 취지가 제대로 살려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며 "또다른 사교육 시장이 극성을 부리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한국교총의 안 회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중1 자유학기제에 대해 "제도나 법이 아닌 교육과정 개편·정상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학기제와 같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