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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간 18시간의 연수 강행군을 마쳤다. '꿈 희망 미래 교사 연수'라는 제목의 학교 자체 연수였다. 처음에 학교에서는 이 연수를 '힐링 연수'로 발표했다. 하지만 나는 단번에 이 연수가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를 포함하여 우리 학교의 많은 선생님에게 '힐링'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학교에 힐링'을 요구한 적은 없기 때문이었다.

연수가 끝나고 동료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소주 몇 잔도 함께 들이켰다. 그러자  몸과 마음이 갑작스럽게 노곤해지기 시작했다. 연수 내내 감정 없는 웃음 속에서 유예되었던 서러움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심장을 치며 올라왔다. 봄방학을 한 큰딸을 어디에 맡길 데가 없어 우리 학교와 녀석이 졸업한(?) 어린이집을 오가면서 설레발을 쳐야 했던 맞벌이 직장 생활인의 비애 같은 것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강요된 힐링의 뒤끝이 이렇게나 강렬한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데, 내 마음이 모나서 그런 것인가.'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명멸했다.

대개 이런 연수는 시종일관 '긍정'과 '밝음'을 요구한다. 요구가 아니라 강요한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온몸으로 웃기를 시키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구호로 외치게 한다. 결코 좋아할 수 없는 동료 교사에게 억지 웃음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도 연출해야 한다. 뜬금없이 슬퍼하고, 그러다가 또 아무 이유 없이 호쾌한 웃음을 지어야 하는 게 이런 연수가 주는 어려움이자 곤혹스러움이다. 긍정 심리학의 첨단 전도사들인 강사들은 우리를 가지고 논다!

지난 이틀간의 연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수시로 '내가 리더다'를 외쳐야 했고, 계속 두 손을 들어 흔들면서 동료 교사의 이름을 어색하게 부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막판에 '마니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는 자신의 마니또에게 '오글거리는' 칭찬을 쏟아내야 하기도 했다. 아무 이유 없이(?) 내밀한 가정사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쳐내는 용기 있는(?) 선생님들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렇게 솔직하고 그렇게 인간적인 분들이 왜 평소에는 그다지도 세상의 불의와 어려운 이들의 삶에 눈길을 돌리지 않는 걸까.

그래도 어쨌든 칭찬을 하고 웃음을 짓는 게 좋은 게 아니냐고?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러운 상황과 함께 드러나야 하는 게 아닌가. 결코 원하지 않는 강요된 연수에서 쏟아내는 웃음과 칭찬이 나를 피곤하게 하는 이유다. 이 웃음과 칭찬은 진정한 관계 맺음과 소통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공허하다. 만들어진 웃음과 칭찬이 나를 정말 미치게 하는 까닭이다.

 책 <피로사회>(한병철 저/김태환 역) 겉그림
책 <피로사회>(한병철 저/김태환 역) 겉그림 ⓒ 문학과지성사
우연의 일치였을까. 마침 나는 연수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 밤,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이 쓴 <피로사회>를 읽었다. 그날 나는 이미 다음날의 웃음이 나를 갉아먹을 것이라고, 동료 교사들이 내뱉는 자기 고백에서 인간의 위선과 허위 의식을 재차 확인할 것이라고, 그리하여 학교에서 큰 맘 먹고 애써 마련해 준 '힐링 연수'가 나를 '킬링'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려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피로사회>는 제목 그대로 우리를 피로하게 하는 이 시대에 대한 냉철한 보고서다. 저자가 보기에 포스트모던한 오늘날의 사회는 성과사회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성과주체다. 비극적인 것은 이 성과 주체가, "노동을 강요하거나 착취하는 외적인 지배기구에서 자유롭다"(28쪽)는 사실이다.

"성과주체는 성과의 극대화를 위해 강제하는 자유 또는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긴다. 과다한 노동과 성과는 자기 착취로까지 치닫는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착취자는 동시에 피착취자이다."(29쪽)

당신은 우울증, 소진증후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와 같이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정신 질환들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가. 과거에는 프로이트적인 의미의 심리적 억압과 같은 것을 주요 요인으로 보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들 정신 질환이 긍정성의 과잉, 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교묘한 시스템은 이런 방식으로 성과주체가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44쪽)하고, 결과적으로 "지배 없는 착취"(44쪽)를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저자는 우울증,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나치 강제수용소의 무젤만(나치 수용소에서 영양 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수감자들을 가리키는 말)과 비슷한 증상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완전한 무감각 상태에 빠져 육체적인 고통과 감독관의 명령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그런 '좀비'와 같은 상태 말이다.

저자가 보기에 과거의 규율 사회를 지배한 질서가 금지와 억압이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후기근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은 성과주의가 내리는 명령이다. 그래서 과잉 활동이나 노동과 생산의 히스테리는 극단적으로 허무해진 삶에 대한 반응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스스로를 착취하는 피착취자의 역설이 바로 이런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긍정성의 과잉, 그리고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아니야, 나는 부정성으로 똘똘 뭉친 덩어리다. 나는 무능하지 않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책을 덮고 난 뒤에 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생각들이었다.

연수 막바지에 영상 편지를 쓰는 꼭지가 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피로사회>의 한병철 선생이 분명 강조하고 싶었을 '유능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기가 불편한 사람에게 '아니오'라고 분명히말할 수 있는 유능함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에게 영상 편지를 썼다.

"교장 선생님, 저 지금 정말 힘드네요."

영상 편지에서 내가 내뱉은 첫 마디였다. 곧이어 나는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연수의 부당함을 완곡하게 말씀드렸다. 교사와 같은 감정 노동자에게 이런 연수가 주는 부담감은 최악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른바 '힐링 연수' 식의 연출된 감정이 교사에게 주는 해악에 대한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 편지는 지금쯤 교장 선생님에게 발송되어 있을 것이다.

성과주체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억압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하는, 이 거역할 수 없는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까. 우리 모두의 진지한 성찰과 자기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지성사(2012)


#한병철#<피로사회>#성과주의 사회#성과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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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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