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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들어 갔네. 잘라냅시다."

'잘라? 뭘? 누구한테 말한 거지?'

마주앉아 환부를 드러낸 지 불과 1분여. 의사에게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어린 나이에 안 됐다거나 마음의 준비를 하라 등의 위로 역시 그의 사전엔 없는 듯했다. 너무나 간결 명료한 어투가 마치 '종이를 자릅시다', '천을 자릅시다' 같은 생명 없는 것을 대할 때의 느낌이었다.

병원에 들어선 순간 공포에 질려 얼음이 된 아이에게 의사는 너무나 매정했다. "아휴~ 아프겠네, 선생님이 금방 낫게 해줄 게요~" 하는 반은 거짓말인, 그러나 진심 담긴 말을 해줬더라면……. 그랬더라면 오늘까지 이처럼 앙심 어리게 기억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내 나이 여덟 살, 첫 수술이 결정된 순간이다. 문제가 된 부위는 왼쪽 엄지발가락 좌측 모서리. 당시 손발톱 깎기는 혼자서 하는 일 가운데 하나였는데, 언젠가부터 서서히 갈고리 모양으로 살점을 파고든 그것까지 알아채기엔 미흡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처음 문제의 부위가 쿡 쑤셨을 땐 양말이나 신발에 이물이 들어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가려움과 통증이 더해지면서 불안감도 커졌다. 하지만 말을 하는 순간 안 좋은 예감이 현실이 될 것 같아 끈질기게 침묵을 지켰다. 그 결과 어머니에 보였을 땐 발톱을 살짝 누르면 연두색 고름이 새나오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뭔가 다른 방법이 없나' 물어보고 싶었지만 터져버린 울음 속에 묻히고 있었다. 간호사인지 어머니인지에 의해 침대로 옮겨졌고, 나는 두려움에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내 상체를 꼭 끌어안고 두 눈을 맞추고 있는 어머니를 있는 힘껏 붙잡고 성대가 찢어질 듯, 병원이 떠나가라 우는 일이었다. 

 나의 왼발가락
나의 왼발가락 ⓒ 이명주

사실 수술 자체가 준 고통은 얼마만큼이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2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얀 가운을 걸친 의사의 냉담함, 온몸을 짓누르며 모골을 송연하게 했던 공포로 인한 그것의 기억은 여전하다. 그리고 치료과정에서 재현된 또 한명의 백의가 선사한 무자비함과 더불어!

환부를 소독하고 경과를 보기 위해 몇 주간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 첫날, 역시 처음으로 붕대에 가려져 있던 수술 후 발가락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끔찍했다. 좌측 발톱이 세로로 반듯하게 잘려나간, 그래서 그 크기만큼 아래 빨간 속살이 드러나 있는 모습. (당시를 회상하니 급작스레 속이 메스껍고 온몸에 전율이 퍼진다.)

상당한 인내로 체액과 약물에 엉겨붙은 붕대를 떼낸 직후 마주한 충격적 광경 앞에 다시금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역시 말없이 제 할일에 충실한 간호사가 소독액에 적신 솜을 곧바로 갖다댔다. 그런데 그 순간, 피가 역류하고 눈이 까뒤집히며 불과 여덟 살인 아이가 그때까지 '백의천사'로 여겨왔던 이에게 살의(殺意)를 품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유인 즉, 아직도 피가 가시지 않은, 원래는 발톱의 보호를 받던 여리디 여린 피부를 인정도 조심성도 없는 간호사가 수차례 찔러댄 것. 움찔 놀라는 어린 아이의 동요를 눈치챘을 것임에도 '망할' 백의의 여인은 어떠한 미안함도 시정도 없이 그 무심하고 잔혹한 '치료행위'를 계속했다.

통원치료는 이삼 주간 이어졌다. 나는 그때마다 마치 내게 앙심을 품은 듯, 혹은 생명 없는 그 무엇을 대하듯 하는 간호사 때문에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내 안의, 그 전까지는 미처 몰랐던 '무섭고 뜨거운 무엇'를 다독이느라 애써야 했다.

그때 이후 너무나 다행히 다시금 수술을 받은 일은 없다. 그런데 수년 전 서울 모 병원에 가까운 지인이 교통사고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느 이른 새벽, 같은 병동 할아버지에게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듯한 간호사가 하의를 착용하지 말란 지시를 어겼다며 욕설에 가까운 막말을 하는 걸 봤다.

사람이 너무 기가 막히면 말도 안 나오는 법. 잠도 덜 깬 탓에 새벽의 그 괘씸한 사태를 그냥 두고 본 걸 영 찜찜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같은 날, 같은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듣게 된 두 의사의 대화는 다시금 내 눈과 귀를 흔들며 나를 얼음처럼 굳게 만들었다.

"xxx호 할머니, 실수로 약을 많이 줬어."

"에잇 뭐어. 어쨌거나 얼마 못 살 텐데."

이로 인해 어린날, 동네 한 작은 병원에서 깨어났던 내 안의 '무섭고 뜨거운 무엇'이 다시금 날뛰었고 나는 더이상 의를 입은 천사 아닌 그들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나의 수술 이야기' 응모글입니다.



#손톱깎기#발가락#오마이뉴스#백의천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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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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