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인형은 장식용 또는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원시시대에는 인형이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었다.
원시 부족들은 어떤 신앙의 대상으로 또는 주술의 대상으로 인형을 만들고 존중하며 숭배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인형은 자신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자 하나의 영혼을 가진 어떤 존재였다.
또한 인형은 인간에게 행복과 불행을 가져다주는 신의 전령이었다. 때로는 어떤 마법으로 인형 속에 잠든 영혼을 깨워서 함께 이야기하며 울고 웃기도 한다.
인형은 그 주인을 지키는 부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인간에게 덮치는 재앙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내는 제물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인형이 다치거나 망가졌을 때 원시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과연 어땠을까. 오늘은 인형에게 찾아온 불운이 내일은 다른 형태로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며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열심히 기도했을 것이다.
인형이 경고하는 살인사건다카기 아키미쓰의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에서는 제목처럼 인형이 살해당한다. 어찌보면 이것은 좀 모순적이다. 아무리 인간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었다 하더라도 어차피 인형에게는 생명이 없다. 인형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잔인하게 팔다리를 떼어낼 수는 있겠지만,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 생명을 없앨 수는 없다.
그런 인형을 굳이 살해했다고 표현했을 정도면 작품 속에서 인형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작품의 무대는 약 60여년 전의 일본 도쿄다. 주인공인 탐정소설 작가 마쓰시타 겐조는 우연한 기회에 아마추어 마술협회에서 개최하는 신작 마술 발표회에 초대받는다.
그 발표회에서 선보이는 마술 중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처형'이라는 마술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로 프랑스 혁명 당시 기요틴에서 사형당한 인물이다. 마술에서는 무대 위에 기요틴이 세워지고 마리 앙투아네트로 분장한 여성이 기요틴에 목을 넣는다. 하나, 둘, 셋, 날이 내려오고... 목이 단두대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다.
생각만해도 살이 떨리는 마술이다. 마쓰시타 겐조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서 이 발표회에 참석하고 대기실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로 분장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 유리코를 만나게 된다. 유리코는 이 마술의 트릭에 대해서 마쓰시타에게 이야기하면서 트릭에 사용될 인형머리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마술은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누군가가 대기실에 놓여있던 인형머리를 가지고 달아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이 있는 대기실에서, 자물쇠로 잠긴 유리 상자안에 놓인 인형머리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연쇄살인이 벌어지기 시작하고, 범인은 살인 전에 무슨 신호처럼 인형을 죽여서 경고한다.
인형이 살해당하는 이유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작은 인형이라면 몰라도, 진짜 사람처럼 사람 크기로 만들어 놓은 인형을 보면 무섭다는 느낌이 든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 밤이 되면 아무도 없는 공간을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해가 뜨면 다시 자기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상상이 되는 것이다.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에는 마술에 관계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에서 한 명은 실제로 아무 장치도 되어있지 않은 인형이 걸어다니게 하는 마술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런만큼 작품에서는 마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마술의 원리 중 하나는 바로 미스디렉션(miss direction)이다.
마술사가 오른손을 내밀면 관객들은 그의 왼손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른손은 바로 관객들의 주의를 끌려고 하는 미스디렉션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오른손에 집중하는 순간 마술사는 왼손으로 트릭을 꾸며서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추리소설도 마찬가지다. 추리작가들은 미스디렉션으로 독자들의 눈을 속인다. 독자들은 작가가 던진 엉뚱한 단서를 따라다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진상을 깨닫게 된다. 범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범인은 현장에 수많은 미스디렉션을 남겨두어서 수사진의 눈을 흐리게 만든다.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에서 올바른 디렉션 중 하나는 바로 인형의 죽음이다. 목이 잘린채 발견되는 기괴한 모습의 인형. 작품을 다 읽고나면 당분간 인형은 쳐다보기도 싫어질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 김선영 옮김. 검은숲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