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굴을 아름답게 하는 의사다. 그런데 과연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어한다.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얼굴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진료를 하면서 난감한 순간이 가끔씩 있다. 20대 중반의 A양이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그는 상당히 젊은 나이임에도 표정을 지을 때 생기는 눈가와 이마의 주름을 걱정하며 보툴리늄 톡신(일명 보톡스) 주입을 원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를 더욱 당혹스럽게 했다.
"무조건 오래가게, 세게 해주세요."표정이 어색해질까봐 우려하던 나와 한참 동안 승강이를 벌이던 환자, 결국 자연스럽게 시술을 하고 다음에 경과를 지켜보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얼굴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기관이다. 얼굴은 감정을 나타낸다. 무의식적으로 감정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의식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얼굴에 있는 다양한 근육을 이용해 표정을 만들어 감정을 표현한다.
타인의 표정을 읽는 것은 그 표정에 감정을 이입해 당사자의 반응을 이해하고 뒤이은 행동을 예측하기 위함이다. 웃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 것이라고 짐작한다. 반대로 화가 난 사람을 만나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 뒤따른다. 그래서 긍정적인 표정을 지을 때의 얼굴과 비슷하게 생길수록 '좋은 인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문화나 인종이 달라도 인류 공통으로 나타난다. 말이 다른 나라를 가도 기분이 좋으면 웃고, 화가 나면 찡그린다. 그래서 다행히도,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얼굴 표정은 보편적이다. 인종·문화·국경을 넘어 전세계를 하나로 엮는 그물이다.
표정 없는 아름다움, 과연 가치 있을까
<얼굴의 심리학>을 쓴 폴 에크만은 원래문화에 따라 표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표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나는 표정이 보편적이라는 다윈의 주장이 틀렸음을 밝혀낼 작정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표정이 인류 공통의 현상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얼굴의 움직임이 어떤 근육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자신의 얼굴에 바늘을 꽂아 전지자극을 줘서 표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얼굴 지도', '얼굴 움직임 해독법'을 창시했다.
그를 모델로 한 미국 드라마 <라이 투 미>에서는 보툴리늄 톡신에 얽힌 에피소드를 풀어낸 적이 있다. 내용인즉슨, 10대 여학생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와중에 피해자의 어머니가 유력한 용의자가 된다. 딸이 죽었음에도 슬픈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이 그 원인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보툴리늄 톡신으로 인해 표정 자체가 없어진 것이었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표정이 없어진 사람들이 간간히 눈에 보인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혹은 어려보이고 싶은 배우들의 욕망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표정을 통해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배우들에게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참으로 안타깝다.
인간은 매우 정교한 안면 인식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끼리 얼굴이 조금만 달라도 잘 구별한다. 그래서 보툴리늄 톡신을 맞고 나서 미세하게 표정이 달라져도, 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때 느끼는 위화감은 거부감으로 이어진다.
애초에 이런 시술을 하는 목적은 더 호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시술로 인해 거부감을 느낀다면 본연의 목적을 벗어난 것이다. 보툴리늄 톡신을 맞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배우들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은 구조적인 아름다움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품이라도 살아있는 사람만 못하다. 사람은 표정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교류하기 때문이다. 표정은 얼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