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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유한 노예> 겉표지
 <부유한 노예> 겉표지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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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류는 비약적인 기술 발전을 이룩했다. 이런 힘찬 전진은 모든 분야에서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양질의 제품, 더욱 값싼 상품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그에 걸맞게 통신, 운송, 정보 처리 관련 신기술도 이제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더 좋은 조건의 거래를 더 쉽게 찾을 수 있고, 또 그렇게 찾은 조건으로 즉시 이동하거나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의 발달은 판매자 사이의 경쟁을 격화시켰다. 여러 방면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뒤따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조직이 비용 절감, 부가가치 창조, 신상품 개발 등의 면에서 꾸준히 머리를 싸매야만 한다. 이런 현상은 결국 생산성의 향상으로 귀결된다. 모든 면에서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싼 상품과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있다.

단편적으로만 본다면 이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분명히 커다란 이익이 되는 것만 같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우리 모두는 사회에서 구매자의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판매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구매자로서의 우리는 더 좋은 조건으로 소비생활을 영위할 수 있지만 판매자로서의 우리는 기존의 고객을 유지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고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이 둘은 반대급부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은 더욱더 필사적인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이다.

고속 성장경제, 그 풍요의 환상 속에 감추어진 냉혹한 현실

<부유한 노예>의 저자 라이시 교수는 이런 현상을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신경제의 발전 속도가 더욱 빨라지면 손실과 혜택 모두가 증가한다. 간단히 말하면 문명의 발달이 주는 혜택들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 부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필사적인 삶, 불안감, 빈부격차, 사회적 분화 양상의 심화라는 비용을 주고 신경제의 혜택을 구입하고 있다는 말이다.

판매자로서의 우리는 살아남아 계속 사업을 번창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비용을 절감하고 가치를 부가해야 한다. 그것도 경쟁사보다 더 빨리 해야만 한다. 절대 한숨 돌릴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로 한숨 돌리면서 쉴 수 있는 순간에 경쟁자들이 재빨리 추격해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인텔 CEO를 역임했던 앤디 그로브는 이런 세태를 '편집증 환자만이 신경제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며 비판했다.

사실 현대사회에서 우리 스스로의 자유를 크게 위협하는 것은 탄압정치를 일삼는 정권의 과도한 통제가 아니라, 구매자가 자신을 더 만족시키는 상품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시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장인 셈이다. 사람 사이의 따스한 신의는 사라지고 냉혈한 같은 과다경쟁이 그 틈을 메우고 있다.

여기까지 읽고, '에이 난 사업주가 아니라 근로자인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경쟁체계는 회사의 구성원에도 똑같은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한 지역에 대기업의 본사나 공장이 들어서면 지역의 경제가 살아나고 지역사회가 되살아나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 기업은 이윤을 위해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모든 기업들이 노동 유연성이라는 명목으로 인원을 쉽게 감축할 수 있고, 작업은 외주를 주며, 얼마든지 여러 지역으로 분산시킬 수 있다. 기업과 근로자, 그리고 지역사회의 유대 관계 또한 느슨해진 것이다.

착하디착하기만 한 사람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구조적 문제를 탓하지 않는다. 수입의 전망이 불투명하고 일자리도 전보다 더 불안한 상태, 그리고 매달 들어오는 소득까지 불규칙적이라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데에 바쁘다. 더 열심히, 더 많은 시간, 그리고 더 집중해서 일에 몰두할 뿐이다.

'낙오할 수 없다'는 부담감은 다른 여러 형태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한 달간 휴가를 가기로 했다가 결국은 휴가 계획을 취소해버린다. 휴가 기간 중에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고객을 경쟁사에게 빼앗길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볼까 고민하다가 그것 역시 포기한다. 그 그룹 내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 싫어서다. 또 일을 일찍 끝내고 갈 경우, 자신이 사무실에 없는 동안 매우 중요한 회의가 열릴 수도 있다. 전체 경쟁 환경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새로운 소프트웨어에 대한 정보를 자신만 모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새로운 고객을 만날 기회도 없어지게 된다. (175쪽)

먹고 살기 위해,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노예화 되어 버린 사람들의 문제는 비단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가족의 해체 현상을 불러온다. 과거에는 가족이란 단어에서 한 지붕 아래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에게 헌신적인 구성원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과연 지금도 그럴까. 쉽게 긍정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의 정서가 변한 것은 아니다. 아니, 도리어 사람들은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전과 같은 가족의 개념을 해체시켜놓은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일의 구성방식이나 보상 방법에서의 변화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만남은 점점 더 일시적인 모습을 띠고 있고, 같이 보내는 시간은 줄어든다. 부부는 아이를 덜 낳고 있으며, 배우자 사이의 경제적인 뒷받침은 사라져가고 있다. 관심과 보살핌마저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가족이란 의미가 미래에는 정반대의 뜻을 지닐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런 결과를 의도적으로 계획한 사람은 없다. 자기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각 개인이 내린 결정들이 함께 모여 산출된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상황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노예도, 분류과정의 포로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한다면, 한 시민으로서 갖는 의무는 경제적인 유용성의 단계를 뛰어넘어야 하고, 그에 맞게 우리 자신을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신경제의 다른 면에서처럼 이런 면에서도 우리에게 선택권은 있다. (301쪽)

당신은 어떤 가치에 한 표 던질 것인가?

덧붙이는 글 | <부유한 노예>, 로버트 라이시 지음, 오성호 옮김, 김영사 펴냄, 2001.10, 12,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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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노예

로버트 라이시 지음, 오성호 옮김, 김영사(2001)


#부유한 노예#로버트 라이시#오성호#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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