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얼굴을 아름답게 하는 의사다. 그런데 과연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나 아름다워지고 싶어한다.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의 얼굴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 기자 말 안면윤곽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B선생과 담소를 나누던 중이었다. 비슷한 업종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즘의 경향이라든가, 진료하면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러다가 진료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성형수술을 하고 난 뒤 경과확인을 하러 온 사람이 '수술은 잘 됐는데 예뻐지지 않았다'는 것. 분명히 본인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수술이었고, 수술 전에 나중 모습을 미리 확인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수술 전에도 원래 괜찮은 외모임에도 자신은 못생겼다고 하소연하며 병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실주름 하나도 그냥 지나치치 않는 사람들
나를 자주 찾는 L씨(여성)의 사례도 비슷하다. L씨는 정말 깨끗한 피부와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인데 항상 '얼굴이 이상하다'며 찾아오곤 한다. '피부가 뒤집혔다'고 하소연할 때는 아주 미세한 피지가 있거나, 아주 살짝 붉어진 경우였다. 최근 L씨는 '코가 이상하게 생겼다'며 타 병원에서 수차례 수술을 했고, "아직도 마음에 안 든다"며 재수술을 고려하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외모에 막연한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사람들은 L씨처럼 타인이 볼 때 괜찮은 상태임에도 자신의 외모를 과하게 평가 절하한다. 깨끗한 피부를 더럽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날렵한 코를 주먹코 내지는 들창코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이보다 젊어 보여도 나이가 들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실주름이라도 하나 발견하면 마치 다 늙어버린 것처럼 한탄도 한다. 이런 걱정이 심해지면 사람들을 피하고 직장을 그만두면서 집 안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기도. 혹은 자신의 걱정을 해결해줄 병원을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이 매력이 없다'고 믿거나, 굳이 흠을 잡을 데가 없음에도 눈에 띄는 결함이 있다고 호소하는 증상을 '신체이형장애'(추형장애)라고 한다. 전체 인구의 2% 정도가 이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대부분 정신과가 아닌 피부과·성형외과에 가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눈·코·입 따로따로 10초씩 봐보세요
1972년의 한 연구에서는 23%의 여성과 15%의 남성이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14년 후인 1986년에는 여성의 38%, 남성의 34%가 외모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3년 현재 필자가 체감하기에는 거의 50% 이상이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추형장애를 갖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형장애는 일종의 강박장애이다. 단순히 외모가 추하다고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강박적으로 그 생각에 매달려 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고민을 한다. '이 얼굴로 어떻게 밖에 나가'라고 생각하며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 증상은 타인이 봤을 때 매력적인 사람에게서도 나타난다. 일부는 스스로의 걱정이 부질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거울을 자주 볼수록 추형장애가 더 심해진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겠는가. 믿기지 않는다면 거울을 앞에 두고 자신의 얼굴을 보라. 눈만 따로 10초, 코만 따로 10초, 입만 따로 10초. 이렇게 응시하고 나서 다시 전체적으로 얼굴을 바라보자. 뭔가 달라진 것을 느낄 것이다. 이를 '게슈탈트 붕괴현상'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다른 시도를 해보자. 주전자라는 단어를 떠올려보자. 입으로 주·전·자, 주·전·자... 이렇게 여러 번 반복해보자. 여러 번 반복하면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어떤 대상에 지나치게 집중하다가 그 전체적인 개념이나 느낌을 잊어버리는 현상을 '게슈탈트 붕괴현상'이라고 한다. 추형장애가 있으면 거울을 더 자주 보게 되는데, 거울을 자주 보면 볼수록 게슈탈트 붕괴현상으로 인해 추형장애가 심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이다안타깝게도 나나 B선생 같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원래 문제가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 얼굴이 정상임에도 삐뚤어져 보이고, 비대칭으로 보여서 수술·시술을 했는데... 하고 나서도 이상해 보인다. 그러다 보니 몇 번이고 재수술을 한다.
의료인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감별해야 한다. 어느 정도는 선을 긋고, 그들이 '생각보다 멀쩡하고 괜찮다는 것'을 알려주고,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줘야 한다. 일부 의료인들이 그들의 염려에 편승해 과잉 성형을 조장하기도 한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게 오히려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