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옆 전화벨이 계속 울려댔다. 휴대전화뿐 아니라 사무실 전화까지... 박사·교수 등 호칭도 다양하다. 그는 기자에게 연거푸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곤 말을 이어간다. 말투도 거침없다. 김광두(65) 국가미래연구원장이다. 그는 요즘 시쳇말로 '잘나가는' 사람이다. 재계를 비롯해 각종 단체에서 그에게 강연을 요청한다. 그와 밥 한끼 먹기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모든 강연 요청을 들어줄 수도 없다. 김 원장은 "일주일에 1~2곳 정도를 선별해서 하고있다"고 했다. 이어 "맨날 같은 이야기(창조경제)만 하면 나도 지겹다"고 웃는다. 성격에 따라 좀더 다른 이야기를 들고 나간다고 한다. <오마이뉴스>와 만난 지난 22일에도 서울 강남서 강연을 마치고 왔다. 예정보다 길어지면서 기자와의 만남도 늦춰졌다.
기다리는 동안 그의 연구실 책장을 들여다봤다. 경제학자답게 경제관련 서적과 자료 등이 빼곡하다. 특히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대중소기업 문제 등이 담긴 책들이 많이 띄었다. 진보진영 학자들이 쓴 책들도 꽤 있었다. 그가 들어왔다. '현 정부 들어 장관 등 공인 빼고 자연인 가운데 가장 바쁘신것 같다'고 인삿말을 건넸다.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 지난 주 창조경제 세미나에서 잠깐 뵙고...(관련기사 : "삼성도 휴대폰만 팔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그랬지. 그때 이야기를 다 해가지고... 정치 이야기는 빼고 합시다. 내가 잘 모르니까. 그런데 왜 자꾸 언론에서 내 이름을 (주요 장관이나 기관장 후보에) 올려요?"
- 제가 드려야 할 질문인데요."(웃으면서) 아니 언론에서 자꾸 내 이름을 올리니까. 난 정말 관심 없는데..."
"내가 국정개입? 오히려 요즘 사람들 만나기 더 어려워"'정말 관심 없을까'라는 생각과 질문, 답은 그와의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름은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언론 지면에 항상 오르내렸다. 경제 주요부처 장관 후보자에서부터 최근엔 주요 금융기관장에 이르기까지. 덩달아 이곳 미래연구원도 주목 대상이다. 상근 연구원조차 아직 갖춰지지 않은 갓 만들어진 민간연구단체지만 이미 현 정부 주요 장관과 청와대 수석들을 배출시켰다.
- 연구원이 생각보다 작습니다. 원장 방도 따로 없는것 같고요."그렇죠. 다 자원봉사로 도와주고 있어요. 그래도 각종 서류나 관리를 위해 여직원을 두고 있고... 앞으로 제대로 된 싱크탱크(think-tank)를 만들어 볼 생각이에요. 여러 선생들과 정책 등 우리 모습 보여주고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볼 생각입니다."
- 정책을 준비하는 분들이라고 하셨는데."예전에 미래연 만들때부터 만났던 각계 전문가들이 있어요. 주로 교수분들인데, 그외 다른 회원분들도 계시지요(현재 그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회원만 200여 명이라고 했다)."
- 이번 정부 조각과정에서 연구원출신 인사들이 대거 들어갔는데, 혹시 예상은."(고개를 흔들며) 예상은 무슨. 이제 우리가 선진국처럼 전문성을 지닌 독립적 연구기관들이 필요하죠. 미국의 대표적인 헤리티지재단이나 브루킹스연구소 등이 그렇잖아요. 현 정부 입장에서 우리 연구원의 인력들이 자신들의 국정철학에 맞다고 생각하면 데려다 쓰는거예요. 대신 연구원은 반드시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물론 정권이 바뀌면 우리쪽 사람들은 안 쓸수도 있겠지만..."
- 말씀대로라면 좋겠지만, 여야 정치권에선 원장을 비롯해 연구원의 국정개입을 우려하는 것도 아시죠."알지. 그게 바로 선입견이에요. 과거에 그런식으로 해왔으니까. 아마 '내가 우리쪽 사람들이 청와대와 장관에 들어갔으니까, 서로 자기들끼리 정보 공유하고, 로비하고 할 것이다'고 하겠지."
- 실제로 그런 전례가 많았으니까요."잘 알겠지만 이제 그런 게 가능한 세상이 아니에요. 요즘은 무슨 말이나 어디 가서 행동 잘못하면 금방 인터넷에 다 뜨잖아. 오히려 내가 '후원' 이라는 말 자체를 꺼내기가 어려워. 예전 사람들은 내가 그냥 대기업·금융기관 찾아가서 손 내밀면 몇억 줄수도 있을 거라고 하겠지만, 큰 오산이지."
"박 대통령 소통방식 문제있다고 하면 고쳐야, 윤 장관은 지금이라도 물러나야"그가 이처럼 주목받는 인물이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경제정책이었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부터 창조경제까지 김 원장의 손길을 거쳤다. 지난 2006년 가을 남덕우 전 총리의 소개로 당시 박 의원과 공부모임을 만든 이야기도 꺼냈다.
- 연구원 이름을 박 대통령이 직접 지었나요."(끄덕이며) 박 대통령이 직접 지었어요. '국가미래연구원'이라고."
- 대통령께서 '미래'라는 말을 좋아하시나 봐요. '미래창조과학부'도 직접 현판식에 가고."(웃으면서) 그래요. 대통령이 '미래'라는 말을 참 좋아하더라고. 예전에 같이 공부할 때도 '미래'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리고 '행복'이라는 말도 하고."
- 인수위 때부터 정부 조각 과정을 보면서 여야 모두 대통령의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요."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다면 (대통령의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는 거지. 아마 (대통령) 본인도 잘 알고 계실테고. 국민들의 생각에 맞춰야하지 않을까 하는데."
이어 자신이 경험한 이른바 '박근혜 스타일'을 말했다. 박 대통령 스스로 무엇을 하든 내세우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자신의 할 일을 조용히 하면 되지, 외부에 떠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물론 주변사람들 입장에선 처신이 참 어렵다고도 했다. 그의 말이다.
"인수위가 됐든, 어디든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라고 하니까, 그쪽 일하는 사람들도 미치겠지. 밖에선 '너무 소통하지 않는것 아니냐'고 하는데, 안에선 '조용히 일만 열심히'라고 하니... 예전에 선거때 (우리가) 자신의 집 근처인 삼성동 코엑스에 가서 젊은이들하고 어울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대뜸 "그거 쇼 아니에요? 저는 싫어요"라고 딱 두마디로 잘라 말씀하시더라고. 주변사람들이 참 겸연쩍었지."- 여야 뿐 아니라 원장께서도 반대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도 결국 임명을 강행하셨는데."그건 (윤 후보자) 본인이 그만뒀어야지. 도덕성도 아니고 능력이 문제가 됐던 것인데. 능력에 문제가 된다고 하면 장관이 되더라도 관료들을 장악하기 어려워요."
- 국회에서도 윤 장관의 업무보고를 거부했다고 하네요."그러니까, 안타깝지. 여야뿐 아니라 여론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냥 '죄송하다'고 물러나면 되는데. 저는 지금이라도 물러나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청와대에서는 그러면 해수부가 너무 오래 비울 것 같고, 여성 장관이라는 상징 때문에 그냥 가는 것 같고요."
"대선 승리 예상했냐고?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 대통령을 가장 최근에 만난게 언제였나요."(잠시 생각하다가) 그러게, 언제였지? 대통령 선거 전이었지."
- 그 이후에 정말로 한번도 안 만나셨나. 전화 연락도."없었어요. 한번도. 정말."
- 만약에 지금 대통령을 만나시면 가장 먼저 해드리고 싶은 말씀은."글쎄, '건강 잘 챙기시라'고 말해야지. 말이 그렇지 굉장히 피곤하실 것이다. 청와대 안에서 매일 혼자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그럴텐데... 우리 같은 사람은 일도 하지만, 때로는 놀기도 하고, 술도 먹으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하잖아요. 절간 같은 데서 혼자 일만하고 있으면..."
- 지난해 대선 때 후보캠프에서 일했는데, 승리를 예상하셨는지."난 이길 거라고 봤어요. 선거라는 것이 항상 상대적이잖아요."
- 야당 후보를 보니까 이길만 했다?"야당쪽 후보는 아직 전국적인 인물이 되기엔 경험이나 카리스마 같은 게 약하다고 생각했지. 결국 인물에서 (민주당이) 진 것 아닌가요. 그리고 민주당 내부에서의 분열도 그렇고, 다른 당하고 야권단일화 과정에서 (민주당의) 정체성도 애매하게 됐고..."
그러면서 김 원장은 국민들의 보수에 대한 불만과 비판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부패 이미지가 여전하고 정책에서 개혁적이지 못한 것을 이번 정부에서 어느 정도 바꿔 나가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그와의 이야기는 경제민주화 후퇴로 이어졌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진영에서는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김종인 전 의원을 내세웠다.
- 대선 끝나고 결국 김종인 전 의원은 사라지고 김광두 원장만 떠올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경제민주화를 반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요. 다만 경제를 보는 시각과 판단은 다를 수도 있지요. 자전거가 두 개의 바퀴가 있어야 나가잖아요. 성장과 상생이 같이 가야한다는 거예요. 문제는 지금이 어떤 상황이냐는 거고..."
"경제민주화 당연히 해야... 하지만 체력이 바닥, 수술하면 다 죽는다"- 지금이 경제위기 상황이니까."(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연구원에선 위기 국면이라고 보는 거지. 지금 통계치를 보면 고용율이 3월에 58%예요. 지난해 10월 이후 일자리가 40만 개 줄었단 말이에요. 위기 때는 부자보다 서민이 큰 타격을 입어요."
- 그런데 항상 정권초기 개혁 요구가 나올 때마다 경제위기론으로 개혁을 미뤄왔다는 지적도 있는데요."상생경제, 경제민주화는 대통령이 약속을 했잖아요. 지켜야지요. 대신 지금 우리 경제라는 환자를 수술하기에는 위험하다는 거예요. 의사도 환자의 상태를 봐가면서 수술을 결정하잖아요. 무조건 수술하면 환자는 죽어요. 어느정도 체력을 만들고 수술을 하자는 것이지."
- 얼마 전 대통령은 가수 싸이의 노래 <잰틀맨>에 빗대 창조경제를 설명하시던데요."그것도 그렇지. 어찌보면 소수 벤처의 지적재산권에 대해 대기업의 제대로 된 보상 측면도 있으니까. 결국 창조경제는 새로운 아이디어 속에 응용력과 실천이 중요해요. 대기업은 시장 지배력의 강점을 살릴 수 있고, 중소벤처는 아이디어를 통해 빠른 사업화 능력을 살리고..."
그와의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중간중간 전화 벨소리에 끊기긴 했지만 김 원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내비쳤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정권 중반이나 후반에도 봉사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지만, 그의 답은 처음 그대로였다. '박근혜 정부가 잘되려면 원장이 들어가셔서 열심히 해야는 것 아니냐'고도 물었다. 일종의 압박이었다. 그의 답은 "나는 자유롭게 살고싶고, 이것을 잃지않고 싶다"고 했다. "어디에 얽매여서 일하는 것이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인터뷰를 하느라 정오가 넘어간지 몰랐다. 그는 "말을 많이 했는데도 부족할수 있겠다"며 "궁금하면 언제든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는 지금 한국판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을 꿈꾸고 있다. 그 스스로 철저히 대기업이나 특정 사업자의 후원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1만 원에서 5만 원의 소액 후원금을 내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꾸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기자와 헤어지면서 그는 "정부를 상대로 우리 목소리도 내고, 독립적인 연구소를 열심히 만들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잘 안되면 어떻게 하시냐'고 했더니, "뭘 어떡해, 그냥 외국에 나가서 곰곰히 반성해봐야지"라고 웃으며 답한다. 김광두 원장의 도전과 바람이 그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