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수정: 28일 오후 1시 59분]

"요즘 새로 나온 책들은 없네요?"
"출판사들이 동네서점에는 신간을 빨리 안 보내줘요. 인터넷서점이나, 대형서점에 먼저 들어가죠. 들어온다고 해도 잘 팔리지도 않고…. 우리는 중고등학생 참고서나, 도서·문화상품권, 여성 월간지를 주로 팔아요. 아마 다른 동네서점들도 비슷할 거예요."

며칠 전, 집 근처 동네서점을 찾았다가 그곳 주인과 나눈 대화다. 그의 말처럼, 중·고등학생 참고서와 여성 월간지가 잘 보이는 위치의 서가를 차지하고 있었다. 문학이나 사회과학 등 다른 종류의 책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표지가 누렇게 변색됐을 정도로 오래된 책들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구석진 서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인이 신간이라며 꺼내준 몇 권의 책은 모두 발행일이 한 달쯤 지나 있었다.

서점이 사라지는 추세도 날로 뚜렷해지는 중이다. 한국출판인회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서점은 1994년 5683곳에서 2003년 2247곳, 2011년 1752곳으로 줄었다. 특히 지역을 대표하는 중소서점들은 자취를 감췄다. 서울만 하더라도, 영등포문고·세종문고·두레문고 등이 문을 닫았다. 올해 초에는 신림동 고시촌을 상징하던 35년 역사의 광장서적도 폐업했다.

책 시장은 자연스레 인터넷서점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들은 빠른 신간입고와 배송, 다양한 할인제도를 무기로 삼았다. 특히 교보문고·알라딘·YES24·인터파크 등 주요 인터넷서점이 책 판매를 좌우하는 실정이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인터넷서점 시장점유율을 2011년 36.8% 수준으로 추산했다.

한때 인터넷서점의 대항마로 여겨졌던, 규모 500평 이상의 대형서점도 기세가 한풀 꺾였다. 전국서점조합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전국에 43곳이 있던 대형서점은 2011년 35곳으로 줄었다. 대형서점 역시 막대한 자본을 앞세운 인터넷서점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책을 손으로 만지고, 넘겨보며 구입을 결정하기가 점차 어려워지는 실정이다(관련기사 : 벼랑 끝 몰린 동네서점... "도서정가제 확립해야").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인터넷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가는지 여부가 책 판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됐다. 최근 일부 출판사에서 불거졌던 '사재기 논란'이 비롯된 까닭이다. 신간을 낸 출판사가 인터넷서점 사재기를 통해, 책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집어넣어왔다는 것이다. 사재기 논란에서 언급된 책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쓴이들의 작품이었다. 이쯤이면, '서점의 위기', 나아가 '책의 위기'를 고민할 때다.

일본 서점인들의 분투기

 <서점은 죽지 않는다> 책표지.
<서점은 죽지 않는다> 책표지. ⓒ 시대의창
"계속해서 서점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런 사람들이 시작하는 서점이 만약 전국에 1천 곳 정도 생긴다면 세상이 바뀔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재미있잖아요. 제가 그런 네트워크를 만들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해보지 않으면 바뀌는 게 없지 않을까요?"(<서점은 죽지 않는다> 여는 글에서)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시대의창 펴냄)은 서점인의 분투기를 그려낸 책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중소서점에서 근무했던, 그리고 다시 중소서점에 도전하려는 서점인 8명의 목소리가 담겼다. 저자는 11년 동안 일본의 출판 전문 주간지에서 기자로 일했던 사람이다.

책 속에서 서점인들은 한 목소리로 "책은 공공재"라고 말한다. 때문에 그들은 서점이 '장사꾼'이 아니라, '장인'에 의해 움직여져야 한다고 믿는다. 서가를 꾸밀 때, '잘 팔리는 책'보다는 '잘 팔리게 만들고 싶은 책'을 앞세우는 서점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까닭이다. 베스트셀러로 수렴되는 책 시장의 분위기를 뒤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 책 시장에서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재기 논란'에서 확인된 것처럼, 베스트셀러 위주의 판매가 전체 시장을 좀먹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한정된 책만이 사람들에게 읽히고, 나머지 책들은 고사하는 현실을 타개해야만 한다.

서점인들은 하나의 해결책으로 지역의 중소서점들이 지닌 역할을 되짚는다. '지역적 특성'이나 '서점만의 차별성'을 만드는 서가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중심의 서가 구성을 벗어나자는 의미다.

이를테면 광장서적은 1980년대만 하더라도, 사회과학 책을 취급하는 전문서점 역할을 담당했다. 광장서적의 최고 전성기였다. 반면에 광장서적의 쇠퇴는 주변의 흔한 '고시서점'의 일원이 되면서부터다. 지역서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터넷서점만이 아니라, 주변의 서점과도 다른 역할을 찾아내야 한다는 반면교사다.

'시험 준비실'로 전락한 도서관도 문제

"도서관을 왜 이렇게 재미없게 만들었는지 전부터 쭉 불만스러웠어요. 어린이 책은 기본서를 갖춰야 하는 분야이다 보니 그럭저럭 되어 있어요. 책 읽어주기도 잘하고 있고. 그건 좋지만 중학생 이상, 특히 성인을 위한 제대로 된 도서관이 없습니다. 책을 지역 주민들에게 전하거나, 주민들을 즐겁게 해주겠다는 의지가 없어요. 또 책의 매력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본문 155쪽)

책에서 서점인들이 '제대로 된 도서관'을 말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책을 대여하는 도서관과 책을 판매하는 도서관은 언뜻 상반된 역할처럼 보인다. 서점인들은 '책 읽는 문화'를 만드는 공간으로 도서관에 주목한다. 그 사회가 얼마만큼 책 읽기에 충실한지, 도서관을 보면 가늠할 수 있다는 것. 책 읽는 문화가 건강한 사회에서라면, 서점도 건강한 구조를 지닌다는 논리다.

굳이 책에서 일본 도서관의 사례를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충분하다. 한국 도서관의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도서관들은 '시험 준비실'로 전락했다. 이는 지성의 전당인 대학교의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 사람보다는, 각종 문제지를 펼쳐놓고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책 읽는 문화에도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책의 미래를 결정할, 어린이들의 책 읽기 문화도 심상치 않다. 한국출판연구소의 '어린이의 독서 및 도서관 이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취학 어린이에게 선호도가 높은 책은 '학습 만화'였다. 이는 책 읽기를 학습과 연결 짓는 우리사회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많이 판매된다는 책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은 더 분명해진다. 논술, 영어, 창의력 등의 학습효과를 내세우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소설을 읽더라도 'OO대학교 선정 필독도서'를 읽는다. 심지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자기 계발 도서'가 주목받는 게 우리사회의 현실이다.

최근 논란이 됐던, 'KBS 어린이 독서왕 대회'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책을 읽히고, 일제고사 형식의 시험을 치르겠다는 발상이 놀랍다. 그것도 공영방송에 의해서 말이다. 반대 여론으로 대회 자체가 철회되기는 했지만, 어린이 책 읽기 문화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서점으로 돌아가서, 손으로 책을 펼치자

 <서점은 죽지 않는다>에서 서점인들은 "종이를 묶고, 문자의 아름다움과 표지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있고, 감촉이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제본된 물건"이 책이라고 표현한다.
<서점은 죽지 않는다>에서 서점인들은 "종이를 묶고, 문자의 아름다움과 표지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있고, 감촉이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제본된 물건"이 책이라고 표현한다. ⓒ sxc
"서점 일을 하는 사람은 '서점의 주력 상품은 그것을 읽는 사람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는 책이다' '우리는 다른 상품이 아닌 책을 판매한다'고 다시금 목소리를 크게 냈으면 좋겠다."(본문 249쪽)

서점의 위기가 찾아온 근본적인 까닭은 책의 위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1년에 성인 연간 독서량을 약 9.9권으로 집계했다. 가구당 월평균 책 구입비는 2만 원 수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책을 찾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익숙해졌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서 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에서 서점인들은 책을 하나의 종합예술이라고 말한다.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종이를 묶고, 문자의 아름다움과 표지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있고, 감촉이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그렇게 제본된 물건"이 책이 지니는 의미다. 책에 담겨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실재하는 대상으로서의 그 가치를 말하는 것일 터다.

최근 우리 사회에도 사재기 논란과 도서정가제 갈등을 비롯해 책 시장의 어려움으로 인한 문제들로 시끌벅적하다. 위기의 원인이 분명한 만큼 해결책도 분명하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 일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작지만, 자신만의 특색 있는 서가를 갖춘 중소서점들이 남아있다. 그곳에 찾아가, 직접 손으로 책을 펼쳐보면 좋겠다.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가 전하려는 메시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제본된 종이책이 아니면 존재 의의를 뿌리째 잃어버리는 것은 서점밖에 없습니다."(본문 298쪽)

덧붙이는 글 | <서점은 죽지 않는다>.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시대의창 펴냄, 2013년 04월, 1만 5천원.



서점은 죽지 않는다 - 종이책의 미래를 짊어진 서점 장인들의 분투기

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시대의창(2013)


#<서점은 죽지 않는다>#서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