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며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1957)


저는 아내와 원거리 연애를 한 뒤 결혼했습니다. 아내가 사는 곳은 광주, 저는 군산이었습니다. 상거 2시간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래도 거리와 시간이 무슨 상관이었겠습니까. 저는 아내와 한시도 떨어져 있기 싫어 조금만 시간이 나도 광주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밤늦게까지 찾집에 앉아 있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그저 그렇게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1년여를 사귀다 결혼했습니다. 그후 십여 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 부부 사이에는 딸 둘에 아들 하나가 생겼습니다. 늘 함께 하자며 죽자사자 붙어 있기만 하던 아내와 저는 이제 상대방보다는 아이들을 먼저 찾습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야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한창 연애를 할 때의 그런 뜨거움은 무리(?)입니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살아갑니다. 그런 뜨거움이 없어지면 세상 끝날 것 같은 때가 많았는데도 말입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이처럼 간사합니다. 사랑의 열정이 식고 나면 얼음보다 차가운 마음의 벽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삶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끝끝내 일어서고야 마는 게 사람입니다. 어둠과 밝음은 경계가 없습니다. 낮과 밤이 함께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또한 백지 한 장 차이입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거듭 '너'에게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1연 1행)고 말합니다.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1연 3행)고도 충고합니다.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1연 4행) 뜨는 일상의 평범한 순간이나, 삶에서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3연 1행) 들과 같은 모든 것을 보더라도,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3연 4행)을 다잡으라고 권합니다. 화자는 말합니다. '절제'(3연 6행)하라!

수영이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며 전쟁을 경험한 후 간신히 살아 돌아온 삶터는 전장보다 더한 곳이었습니다. 그 어려움과 혼란을 수영은 술로 풀어 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날에는 수영은 가족들에게 폭언을 일삼기도 했습니다. 세간살이를 던지는 일도 예사였지요. 그것은 설움과 좌절과 절망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절제'를 외치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서둘지 말라"고 힘주어 되뇌고 있습니다. 삶(生)이란 게 원래 벼랑 끝(涯)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았을까요. 그곳(벼랑)에서는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쉽게, 더 빨리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몸이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서둘지 말라"와 같은 유의 마음의 평정이 중요해지는 까닭이지요.

그새 수영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아내와 결합하고, 힘들게 닭을 키우면서 생활의 한복판에서 땀을 흘리는 기쁨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을 테지요. 평범하게 돌아가는 세상 현실 그 자체가 수영을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전쟁을 겪으며 죽음이 일상의 친구처럼 다가오던 순간을 수도 없이 겪어냈으니까요.

그런 평범한 어느 봄 밤, 잠들어 누워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수영을 그려 봅니다. 열어 놓은 문밖으로는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언덕바지 아래 비스듬히 흘러가는 한강에는 불빛 몇 점이 떨어져 어른거립니다. 포근하고 여유로운 봄 밤입니다.

그때 수영은 '절제'를 노래합니다. 그는 아마도 전날 꽤 술께나 마신 모양입니다. "술에서 깨어난"(1연 6행)이 몸이 무겁습니다. 그래도 그는 기분이 좋습니다. 무릇 모든 자식은 부모에게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시인이었던 수영에게는 영감의 샘이기도 합니다.

그런 자식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무거웠던 마음도 가붓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를 힘들게 했던, 그래서 술을 마시게 했던 일상의 일조차 거뜬히 넘길 것 같습니다. 그는 바야흐로 인생의 오묘한 진실을 깨닫는 중입니다. "빛이여 / 오오 인생이여"(2연 7, 8행)라고 영탄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지요. 그렇게 1957년을 지나는 수영은 가난했을지라도 결코 궁색하지 않았습니다. 삶에 대한 깊은 깨달음의 기쁨이 그와 함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수영#<봄 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