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인도의 생태철학자 '사티쉬 쿠마르(Satish Kumar)'는 세계 강대국의 핵 정책을 몸으로 항의하면서, 인도에서부터 미국까지 2년 반 동안 걸어서 순례를 했습니다. 녹색연합은 이 정신을 계승해 1998년부터 녹색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올해는 '비무장지대'로 발걸음을 옮겨 한국전쟁의 참상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강원도 철원을 시작으로 남북 긴장의 역사인 서해 5도의 최북단 백령도까지, 정전협정 60년의 역사를 지금 만나러 갑니다. 순례는 5월 22일부터 5월 31일까지 9박 10일간 진행됩니다. [편집자말]
 한발 한발 생생한 내용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한발 한발 생생한 내용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 녹색연합

한창 여러 가지 활동을 해야 할 5월, 녹색연합은 사무실 문을 잠시 걸어 잠그고 "녹색순례"를 떠났습니다. 사티쉬 쿠마르의 평화행진에서 비롯된 녹색순례는 1998년부터 시작된 녹색연합의 전통이자 독특한 활동 중 하나입니다.

2013년, 16번째 녹색순례는 정전 60주년을 맞아 비무장지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실제 폭 2km로 존재하는 비무장지대는 밟을 수 없어 강원도 철원부터 인천 백령도까지 민간인 통제선에 인접한 마을 소식과 자연을 거치며 보고, 듣고, 느끼고, 만졌던 것들에 대한 내용들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새소리를 들으며 숲이나 논 옆을 보면 빨간색 역삼각형 모양의 “지뢰”표시가 있습니다. 절로 움찔하게 되는 긴장감이 생깁니다.
새소리를 들으며 숲이나 논 옆을 보면 빨간색 역삼각형 모양의 “지뢰”표시가 있습니다. 절로 움찔하게 되는 긴장감이 생깁니다. ⓒ 녹색연합

 지뢰표시 외에도 지뢰 안내판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지뢰표시 외에도 지뢰 안내판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녹색연합

첫날(22일), 철의 삼각지대로 진입하여 철새마을까지 녹색연합 순례단이 평야지대 철원에 진입했습니다. 철원은 남방한계선 인근에 마을이 형성돼 있어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남방한계선을 가까이 볼 수 있습니다. 토성초등학교에서 간단한 발대식을 하고, 이번 녹색순례 테마인 "너와 나 사이의 비무장지대"의 의미를 되새기며 도로로 나섰습니다.

464번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한창 모내기를 하기 위해 물을 대놓은 논이나 이미 일렬종대로 모내기를 해둔 논을 볼 수 있습니다.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물과 푸르른 풀들을 보면 벌써 여름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낮이 되면서 본격적인 더위와 접하게 되었습니다. 입이 바싹 마르다 못해 입안과 치아가 붙고, 땀이 비오듯 내렸습니다. 도로의 지열 때문인지 배낭이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첫 번째 관문인 도창리 초소까지는 참 멀게 느껴지더군요. 걷고 또 걸으며 마을 언저리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도보로는 쉽게 통과할 수 없는 초소에 다다랐습니다. 긴장감을 안고 초소 앞에서 기다렸다가 통과 허가를 받고 민간인통제구역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민간인 통제구역이라고 해도 특별히 철책이 있거나 하지 않아 크게 실감나지는 않습니다. 차량의 수가 많지 않고, 걷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고 나서야 무언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도창리와 정연리를 지나 이길리 초소에 도착해 또 한 번의 절차를 거칩니다. 도창리 초소에 보고했던 내용을 다시 한 번 보고하고, 혹시 초소 전방 풍경을 촬영하지 않았는지 휴대폰과 사진기를 일일이 체크하고 나서야 초소를 지날 수 있었습니다. 잠깐잠깐 주는 긴장으로 인해 '이곳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이고, 민간인 통제구역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곳은 민간인 통제구역!

 남한에서 두 번째로 큰 토교저수지입니다. 둑에 올라 처음 봤을 때 너무 넓어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남한에서 두 번째로 큰 토교저수지입니다. 둑에 올라 처음 봤을 때 너무 넓어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 녹색연합

농로를 따라 촘촘히 박힌 모를 보고, 더러는 비료를 뿌려 구수한 냄새가 나는 곳을 지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둑이 보였습니다. 토교저수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토교저수지는 제 2땅굴에 인접한 곳에 있는 면적 338.85ha에 달하는  남한에서 두번째로 큰 저수지 입니다. 이곳에 9월 초부터 쇠기러기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2500마리 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 두루미 300마리 이상, 재두루미와 흰꼬리수리, 독수리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날아듭니다. 두루미는 뒤엎지 않은 밭에 남은 낱알을 먹고, 토교저수지에서 몸을 단장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두루미를 찍을 수 없어 예전 두루미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멸종위기종인 두루미의 30%가 토교저수지에 와서 월동 준비를 합니다.
지금은 두루미를 찍을 수 없어 예전 두루미를 촬영한 사진입니다. 멸종위기종인 두루미의 30%가 토교저수지에 와서 월동 준비를 합니다. ⓒ 녹색연합

저수지 둑방을 지나는데 토교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던 민간인 2명이 적발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현재 토교저수지에는 블루길, 배스 등이 서식하고 있는데 군사보호지역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사실상 낚시는 금지 되어 있습니다.

 민간인통제선 안 통제시간과 함께, 수고하셨습니다.
민간인통제선 안 통제시간과 함께, 수고하셨습니다. ⓒ 녹색연합

저수지를 지나 드디어 첫날 순례의 종착지인 양지리에 도착하였습니다. 양지리는 태양이 잘 드는 마을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오성산부터, 오성산 반대편 마을 끝까지 4계절간의 해를 또렷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숙소인 양지리 노인정 앞에 모여계신 마을 주민들은 순례단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고, 마을 소개와 함께 양지리에서 30,40년이상 거주하면서 겪었던 지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결혼하러 왔는데 입주증 발급이 늦어 애를 먹거나, 허리 펼 새 없이 한 달 내내 손수 모를 심을 만큼 바빴던 시절 이야기, 과거 대남방송과 대북방송이 마을까지 들렸고, 매일 밤 군인들이 집으로 찾아와 점호를 하고, 명절에 친지들이 집으로 와도 예정된 방문시간을 넘길 수 없었던 기억까지. 남북간의 대치상황이 일상이 되어 이런저런 일들이 힘들거나 무섭지 않다는 담담한 말이 귓가에 남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자희 녹색연합 활동가 입니다.



#비무장지대#녹색순례#두루미
댓글

녹색연합은 성장제일주의와 개발패러다임의 20세기를 마감하고, 인간과 자연이 지구별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초록 세상의 21세기를 열어가고자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