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대화국면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북한이 남북대화를 전격 제안하고, 박근혜 정부가 남북장관급 회담 개최로 북한의 제안을 적극 수용하였다. 이제 남북관계는 대화 없는 대결의 국면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대화국면으로 이동은 지난 5월 말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의 방중에서부터 포착되었다. 최룡해의 방중은 국내언론에서 저평가되었지만, 북한은 이때부터 대화를 위한 포석을 두기 시작했다. 실제로 최룡해는 중국 방문에서 6자회담의 복귀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최룡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시진핑 주석에게 전달하였다. 이 친서의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정은이 시진핑에게 친서를 보낸 것은 6월 7일 미중 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이었다.
미중 정상회담을 겨냥한 최룡해의 방중북한은 작년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를 통해서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고, 2월 달에는 3차 핵실험을 강행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압박은 더욱 강력해졌다. 3, 4월에 진행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서는 미국의 최신 무기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압박에 말 폭탄으로 맞섰다. 거친 언사로 남한을 위협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북한은 핵무기의 다종화, 경량화에 성공했다고 큰 소리를 쳤다. 북한의 이러한 전략은 소량의 핵무기로 강대국의 핵보유에 맞선다는 이른바 '최소핵억제전략'이다. 북한은 핵보유 국가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핵무기보유에 기초한 이러한 전략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서 큰 염려하였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 비핵화 ▲ 대화와 협상이라는 원칙에 따르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을 비롯한 말 폭탄 공세는 이러한 중국의 정책에도 맞지 않다. 특히 시진핑 체제가 등장과 함께 시작한 한반도 위기 상황에 대해서 중국의 지도부는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의 핵실험이 중국의 인구밀집지대인 동북 3성 인근에서 진행된 것도 중국으로서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기술적인 문제로 인한 환경오염이나 인명피해에 대한 염려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시진핑에게 북한군 최고책임자인 최룡해를 특사로 보낸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즉 북한이 취한 긴장 고조 조치에 대해 군 최고책임자를 보내서 해명한 것이다. 그리고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함으로써 6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의 입지를 넓혀준 것이다. 미국 정부나 여론은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는데 중국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기대에 맞게 시진핑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북한의 대화제의북한이 남북대화를 전격 제안한 시점은 미중 정상회담 이틀 전이다. 남북대화를 제안함으로써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관련 의제를 북한에 대한 제제가 아닌 대화제개로 굳히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진핑 역시 김정은이 최룡해를 통해서 보내온 대화재개의 의지에 대해서 신뢰감을 가지면서 미중 정상회담에 임할 것이다.
시진핑에게 보낸 김정은의 친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알려진 수준을 뛰어넘을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친서라는 최고수준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6자회담 재개 이상의 대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북한의 잇단 강경정책으로 미국 내부에서 북한에 대한 비판여론이 급속히 증대하여 대북정책 추진의 동력은 무너졌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강화되어 미국의 본토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방치할 수 만은 없다. 오랫동안 진행해 온 대북제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를 막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시진핑이 북한과 대화를 제기한다면 이는 환영할만한 것이다.
6월 8일(한국시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은 한반도 문제를 대화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북한이 남북대화를 제기한 것은 한국 정부를 배제하고 북미대화나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무시할 수 없는 한국의 위상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대화 움직임이 있을 때 한국정부가 이와 어긋나는 발언을 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지난 5월 23일 최룡해가 중국에서 6자회담 재개를 이야기하고, 동경에서는 아베의 특사로 북한을 다녀온 이지마가 북일수교협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이때 박근혜 대통령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북한의 핵과 경제 병진노선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이에 반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극심한 비방을 늘어놓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국제사회의 대화 흐름과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사이에서 괴리가 발생하고 한국정부가 배제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남북대화 제기에서 알 수 있듯이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진행하는 각종대화는 남북대화를 제외하고는 진행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북한은 이번 대화제기는 박근혜 정부를 무시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통과의례로 남북대화를 하겠다는 차원을 뛰어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화제기에는 ▲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 이산가족 상봉, ▲ 각종 민간교류 확대, ▲ 7.4 성명 기념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개성공단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는 남북관계의 현안이다. 각종 민간교류 역시 남북 당국 간 회담과 함께 남북관계를 지탱시킨 축이다. 남북대화를 위해서 이 두 가지 영역을 언급한 것은 당연하다.
눈여겨 볼만한 것은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과 7.4 공동성명 남북공동 기념을 제안했다는 점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역사적으로도 남측이 먼저 제안한 것이고, 현실적으로도 북한보다 남한이 더 요구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 효과보다는 준비의 어려움이나 부작용을 더 염려하는 상황이다. 북한이 이산가족을 먼저 제안한 것은 박근혜 정부와 대화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선도하는 남북관계 만들어야
남북 사이에서 7.4 공동성명을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에 개인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7.4 공동성명에 대해 논의하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7.4 공동성명에 대해 큰 관심을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7.4 공동성명 공동기념을 제안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대화의 상대로 분명하게 인정한 것이다. 나아가서 향후 남북관계 발전에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대화나 북미대화, 6자회담이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북한 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북한은 핵보유국가임을 선언하였지만, 국제사회는 북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핵보유국지위를 요구한다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도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북미대화, 남북대화, 6자회담과 4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를 다차원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북미대화는 6자회담과 4자회담의 촉진제가 될 것이고, 6자회담에서는 비핵화, 4자회담에서는 평화체제, 남북대화에서는 남북교류협력 문제가 다뤄질 수 있다.
남북대화에서는 남북교류협력 문제에 집중하면서 남북 사이에서 신뢰를 구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비핵화를 남북대화의 핵심의제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남북 사이의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대화가 북미대화, 6자회담, 4자회담을 조정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