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를 위해 사표를 던지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사표를 부추긴 최고의 명언은 신입사원 교육 때 한 임원이 했던 말이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하고 후회하라." 약 4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냈다. 2012년 7월부터 올 4월까지 200일간 5대륙 22개국을 여행했다. 그 여행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본다. - 기자말
케이프타운을 떠나 20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도착한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 이제부터 본격적인 리얼 아프리카다.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행인 수 만큼이나 많은 빈트후크는 수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여러가지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렌터카를 빌려 떠난 스와콥문드에 이르는 길은 오로지 황량한 자갈벌판과 누런 풀에 덮인 돌덩어리들 뿐이다. 남아공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색깔의 나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도착한 스와콥문드에는 또 다시 시원한 대서양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사실 스와콥문드를 찾은 이유는 바다가 아니라, 영국 <BBC>가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보아야 할 100곳'에 이름을 올린 나미브 사막 때문이다. 이 푸른 바다와 아프리카 대륙 사이를 가로지르는 나미브 사막은 길이 1600km로 적도 이남의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건조한 지역에 속한다. 이런 나미브 사막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나가 이렇게 푸른 바다를 끼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특별함을 오래 눈여겨 보았던 유럽의 여러 여행사들은 스와콥문드에 사무실을 열고 사막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바로 샌드보딩. 샌드보딩은 우리에게 익숙한 스노우 보드를 들고 사막 언덕에 올라 타는 스포츠로, 이 경이로운 사막을 즐기는 색다른 방법이다.
고작 1분의 스릴을 위해 발목까지 푹푹빠지는 작열의 사막을 오르는 사람들을 보고있자면 신화 속에서 끊임없이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Sisyphus)가 연상되지만, 그래도 즐겁다. 어떤 방법을 택하든, 시속 70km에 이르는 샌드보딩은 이 아름다운 사막을 즐기는 가장 멋진 방법임이 틀림없다.
붉은 사막이여! 아름답게!나미브 사막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그 색깔이다. 지구상에 있는 여러 개의 사막 중에서도 유일하게 나미브 사막에서만 발견되는 붉은 사막, 소서스블레이. 그렇지만 그 붉은 사막을 보러 떠나는 길은 사막을 걷는 일 못지 않게 고되고 힘들었다.
스와콥문드에서 소서스블레이까지는 지도상으로 405km 정도. 도심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아니니 여유있게 가도 5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스와콥문드를 벗어난 지 30분도 되지 않아 나타난 무지막지한 비포장 자갈도로는 405km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고 한 시간을 달려도 지나가는 차 한 대 만나기 힘든 이 곳은 리얼 사막이다.
잠시 차를 멈추고 시선을 돌려보니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도 않았는데 수평선 위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달이 떠올랐다. 지구 어디서든 달은 떠오르겠지만 사막 위에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는 이 순간만큼은 어린 왕자가 불시착한 소설 속 장면같다.
결국 완전히 해가 지고서야 도착해 소서스블레이에 들어갈 수 없었던 나는 차에서 밤을 맞았다. 세기도 전에 현기증부터 느껴질 정도로 수많은 밤하늘의 별은 낮 동안의 수고를 덜어주는 작은 선물이었을까.
차에서의 노숙은 피곤하다기 보다는 아프다. 그렇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사막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조금도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새벽에 문을 열자마자 입장한 소서스블레이 공원에 들어서자 드디어 그토록 기다렸던 포장도로가 펼쳐졌다. 그 길을 따라 45km를 달리면 만나는 첫 번째 붉은 모래언덕 듄45.
듄 45의 높이는 고작 150m지만 한 걸음을 오르면 다시 한 걸음 미끄러지는 이곳을 오르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올라선 그 언덕에서 끝없이 펼처진 사막 너머를 바라보고 있으니 천근만근인 다리를 잊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날씨가 흐려 눈부신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온 태양빛을 받아 붉게 빛나는 이 아름다운 사막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도 행복했다. 저 사막 너머에 푸른 바다가 있을 것이라 누가 생각하겠는가.
지나가는 투어가이드의 이야기에 따르면 소서스블레이의 모래가 붉은 이유는 철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래 속에 포함된 철분이 산화되면서 색이 바래 붉게 보이는 것.
듄 45를 지나쳐서 조금 더 달리다보면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일반 차량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사막을 걷거나 공원에서 제공하는 유료 셔틀을 타거나.
셔틀을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은 데드블레이. 사막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둥근 평지인 이곳은 아주 오래 전 물이 고여 있다가 물의 흐름이 바뀌고 사막화 되면서 생명이 말라죽어 만들어진 곳이다.
머릿속에서 아무리 '여기는 아프리카다'라고 되뇌 보지만, 발을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낯설다. 과연 이곳에 물이 있었단 말인가. 이를 증명하듯 숯처럼 까맣게 타버린 나무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지만 여전히 믿기 힘들었다. 자연이 보여주는 경이로움이란.
셔틀을 타고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 소서스블레이. 이 삭막한 사막에서 유일하게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고인 물은 이곳에 사는 야생동물들의 오아시스가 되고 유일한 녹음의 젖줄이다.
간밤의 피로와 듄45의 영향인지 피로로 찌든 다리를 생각해서 소서스블레이 언덕은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날린 고운 모래가 물가에 흩뿌려지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동시에 묘한 세기말의 기분을 느꼈다.
소서스블레이를 끝으로 셔틀을 타고 다시 주차장으로 빠져나왔다. 뜨거운 사막의 열기가 남아서인지 다시 혹독한 비포장 길을 뚫고 빈트후크로 가야할 생각에서인지 잠시 아찔했다. 그야말로 외계의 것이라야 더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을 지닌 소서스블레이는 바람에 의해 매일매일 조금씩 바뀌고 있단다. 과연 다음에 찾아올 때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라는 생각에 다시 심장이 뛴다.
아아… 붉은 사막이여, 아름답게.
간략 여행정보 |
소서스블레이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빈트후크나 스와콥문드에서 출발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렌터카로 직접 가거나. 투어의 경우 며칠이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보통은 하루에 우리돈 10만 원 정도며 교통편과 세끼 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어느 방법을 택하더라도 400km에 달하는 긴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불편함은 피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첫 날은 소서스블레이 공원입구 도착으로 일정이 종료되고 둘째날 새벽에 듄45에 올라 일출을 보면서 본격적으로 관광이 시작된다. 소서스블레이 공원 내에서도 데드블레이와 소서스블레이로 가는 길은 일반차량 출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유료 셔틀을 이용해야만 한다.(셔틀비 10USD)
스와콥문드에서만 가능한 샌드보딩은 스와콥문드 시내에 있는 수많은 투어회사 어디서든 신청이 가능하며 오전에 근처 사막으로 출발해서 보딩을 하고 점심식사 후 바로 돌아오는 코스로 이루어지며 가격은 약 4만 원 정도(2012년 7월 기준, 점심식사 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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