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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노동전문잡지에서 일했던 나. 지난해 가을 한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그리고 올해 봄 한 대기업의 대리점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한다. 이 글은 잠입취재기가 아니다. 한 아줌마 구직자의 취업기일 뿐이다. 또한 두 곳 모두 스스로 그만뒀기에 취업 실패기이기도 하다. 글에 나오는 인명은 모두 가명임을 밝힌다. - 기자 말

"우리도 막내 왔다."

내 사수, 혜수 언니가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넣고 있는 언니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앞 매장의 진경 언니는 아침마다 주변 매장 언니들에게 차 한 잔씩 하고 가라고 권했다.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수다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백화점 안에도 직원들끼리의 다양한 교류가 있었다. 매장 관리자인 매니저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밥을 먹으면서 서로의 고충을 주고받았다. 그 아래 둘째 언니들도 모임을 가졌다. 서로 휴무를 맞춰서 교외로 놀러 가곤 했다. 마흔이 넘은 언니들이 "강촌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는 얘기를 할 때는 꼭 MT에 다녀온 대학생들처럼 신나 있었다.

진경 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조금 늦게 출근하는 '시차' 때면 백화점에 있는 영화관에서 조조영화를 보고 오곤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일 못 한다"고 언니는 말했다. 그게 진경 언니가 10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면서 일할 수 있게 한 힘인가 보다. 그래서 그런지 언니가 "출근 시간 맞추느라 영화 끝 부분을 못 보고 나왔어"라고 말할 때는 내가 다 안타까웠다.

아침 커피타임에는 언니들이 집에서 챙겨온 고구마·떡 등도 테이블에 올라왔다. 단골들이 먹을 걸 주고 가면 서로 나눠 먹기도 했다. 고객들에게 치이면서도 직원들 사이에 오가는 정 덕분에 우리는 웃었다. 친절이 몸에 밴 언니들에게서 마음이 담긴 챙김을 받을 때면 온몸이 간질간질하고 얼굴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담겼다.

마흔을 앞둔 내가 막내?

 한국 백화점에서는 직원이 머리가 희끗할 때까지 일하는 것과 매장 안에서 판매원이 앉을 수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이뤄질까. 사진은 한 백화점 메이크업 브랜드 화장품 판매 코너의 모습.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제대로 앉아 쉴 수도 없다.
한국 백화점에서는 직원이 머리가 희끗할 때까지 일하는 것과 매장 안에서 판매원이 앉을 수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이뤄질까. 사진은 한 백화점 메이크업 브랜드 화장품 판매 코너의 모습.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제대로 앉아 쉴 수도 없다. ⓒ 김지현
그나저나 마흔이 자꾸 손짓하는 것 같아 달력 보기가 겁나는 내가 막내라니…. 백화점 직원들의 연령분포도가 이상한 것 아닐까. 백화점에서는 파는 상품에 따라 직원들의 연령대가 정해졌다.

여성복 매장의 상당수는 40~50대였다. 직원 화장실에 붙은 캐주얼 매장 '막내' 모집 공고는 '25세 이하의 여성'을 찾고 있었다. 화장품 매장도 30대가 넘으면 들어가기 힘들어 보였다.

취업 둘째 날 백화점 교육을 받을 때 옆에 앉은 40대 언니가 1층에서 일한다고 하기에 "화장품매장이요?"라고 물었다가 당치도 않은 소리한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우리 층만 보고 백화점에 중년 여성들이 많다고 착각할 뻔했다.

최근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여성의 고용률을 높이겠다고 했는데 이제 백화점에도 30대 이상 여성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나려나.

늘어나더라도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기에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정부가 말하는 대로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날까. 전일 근무를 해도 월급이 100만 원 조금 넘는데 시간제면 60~70만 원 받고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과연 그걸로 생활이 될까. 자꾸 정부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목표치 달성이라는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나는 역시 삐딱이인가 보다.

혜수 언니가 일본에 갔다가 백화점에서 받았던 인상을 얘기한 적이 있다.

"내가 백화점에서 일하니까 일본 백화점은 어떤가 궁금해서 가봤어. 매장에 들어가니까 의자에 앉아있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일어서서 응대를 하더라고. '아, 여기는 나이 들어도 일할 수 있구나,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

대학 졸업반 때 결혼해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야 사회생활을 시작한 혜수 언니. 지인이 백화점 일을 권했다고 한다. 별 경력이 없어도 할 수 있다고. 10년 넘게 일했고 자기 매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판매의 베테랑이다. 그러나 50대의 그가 2년 가까이 일을 쉬고 다시 일을 구할 때는 이력서를 낼 곳이 많지 않았단다. 백화점에서도 부인복 브랜드나 가능했지만 그마저도 일자리가 가물에 콩 나듯 했다.

게다가 캐주얼 브랜드와 명품만 판매했던 혜수 언니에게 마담 스타일은 자기 취향이 아니었다. 취업 포털에 캐주얼 브랜드의 채용공고가 뜨면 이력서를 보내는 대신 전화를 걸었다. 매장 매니저가 나이를 물으면 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나이는 많지만 만나 보면 마음에 드실 거예요." 그렇게 해서 면접을 보게 되면 정말로 매니저가 흔쾌히 출근하라고 했단다.

자기 일에 대한 자긍심이 없이는 부리기 힘든 배짱이다. 그만큼 언니는 일을 잘했다. 그런데도 언니는 자신의 나이를 부담스러워했다. 나만 보면 말했다. "너는 젊으니까 뭐든 할 수 있어." 그 말 뒤에는 '나는 이제 나이 들어서 안 되지만…'이 생략돼 있었다. 누구보다 판매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언니에게서 듣기에는 서글픈 말이었다. 그때마다 상상했다. 돋보기 안경을 걸친 채 매장에 앉아 있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혜수 언니를…. 그런데 한국 백화점에서는 직원이 머리가 희끗할 때까지 일하는 것과 매장 안에서 판매원이 앉을 수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빨리 이뤄질까라는 궁금증이 발동했다.

백화점에서는 '모니터링'이 일상

 백화점 본사와 외부 기관에서 주기적으로 고객 응대 모니터링을 했다. 전화 모니터링 기간도 따로 있었다.
백화점 본사와 외부 기관에서 주기적으로 고객 응대 모니터링을 했다. 전화 모니터링 기간도 따로 있었다. ⓒ 오마이뉴스

백화점의 입장은 백화점 교육을 받으면서 짐작할 수 있었다. 강사인 서비스 리더는 근무 중 '대기자세 바로 하기'를 강조했다. 손님이 없을 때도 등을 벽에 기대거나 매장 내 의자에 앉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점원들끼리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서비스 모니터링의 지적사항이 됐다.

백화점에서는 모니터링이 일상이었다. 백화점 본사와 외부 기관에서 주기적으로 고객 응대 모니터링을 했다. 전화 모니터링 기간도 따로 있었다. 모니터링에서는 지점뿐 아니라 각 팀별 서비스 등수가 나왔다. 1등 A점 여성복팀, 2등 B점 스포츠웨어팀 식으로 전국 200개가 넘는 팀들의 등수가 죽 나열됐고 우리팀 담당 대리는 조회 시간마다 우리 팀의 등수를 말하면서 분발을 독려했다. 이러니 모니터링 기간이 아니더라도 서비스 리더들은 상시적으로 매장 직원들을 점검했다. 이름표를 안 달고 있거나 매장에서 커피 등 음식을 먹다가 걸리면 이름을 적어갔다. 이름이 적힌 직원들은 아침 출근시간에 직원 통로 앞에서 인사를 하는 벌칙(?)을 수행해야 했다.

첫째 날 중·고등학교의 선도부를 떠올린 건 과한 연상작용이 아니었던 게다. 고백하자면 나도 중학교 때 선도부를 했다. 학업 성적에 따른 선생님의 간택이었다. 워낙 모범생(?)이었던지라 선생님이 책상 검사를 하라고 시키면 꼼꼼하게 친구들의 책상 서랍을 뒤졌다. 그러다 한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그 친구는 나를 '인간 같지도 않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딴에는 열심히 뒤지는 척하면서 문제 되는 게 있으면 슬쩍 감쳐주려고 했던 건데 그 친구의 눈은 '네가 학생이야? 선생이야?'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친구는 학생과 교사 사이에 낀 채 허우적대던 나를 간파하고 있었던 게다.

'고객감동 실현'에 앞장서야 하는 서비스 리더들에게도 그런 고충이 있을 거다. 백화점에는 '서비스 리더'라 불리는 고객만족서비스(CS)를 담당하는 정직원들이 있었다. 또 매장 매니저들이 돌아가면서 몇 개월씩 서비스 리더를 맡기도 했다. 둘 다 담당 팀의 서비스 모니터링 성적에 민감했다. 팀의 서비스 등수에 그들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 번은 한 서비스 리더가 아르바이트 언니를 혼내는 걸 본 적이 있다. 그 알바 언니는 미스터리 쇼퍼(손님으로 가장해 매장을 방문하고 서비스를 평가하는 사람)가 왔을 때 그가 요구하는 상품을 바로 꺼내주지 못해 점수를 깎였다고 한다. 하필이면 알바 언니가 그 매장에 처음 간 날이었다. 매장들이 최소의 인원들로만 운영되고 있어서 매장 직원들이 휴무에 들어가면 대신 나와서 일을 해주는 알바들이 있었다. 대부분 백화점에서 일한 경력은 있지만 다시 취직하기에는 나이가 많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메뚜기 뛰듯 여러 매장을 돌면서 일해 일당을 받고 있었다. 그야말로 비정규직이다. 하지만 서비스 모니터링의 칼날은 그들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30대의 서비스 리더가 쉰을 바라보는 알바 언니에게 말했다.

"백화점 일, 하루 이틀 해요? 이럴 거면 나오지 마세요."

그렇게 그 언니는 개점 준비로 바쁜 직원들이 오가는 통로에서 공개적으로 혼나고 있었다.

흔치 않은 경우일 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한편, 나는 멋진 서비스 리더도 만났다. 앞 매장 매니저인 도영 언니가 서비스 리더가 되고 처음 조회를 주재하면서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 백화점에서는 팀 담당대리가 1주일에 2~3회, 서비스 리더가 1회씩 직원들을 모아놓고 조회를 열어 공지사항 등을 알렸다. 정직원 서비스 리더들의 교육도 종종 이뤄졌다).

도영 매니저가 말했다.

"매니저들끼리 돌아가면서 맡는 서비스 리더를 이번엔 제가 맡게 됐습니다. 서비스 리더라고 하면 저는 돌아다니면서 뭐 눈에 거슬리는 거 없나 찾고 직원들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괜히 찜찜해서 절 피해 다니고 그럴 텐데 그렇게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세요. 직원들의 고충도 전하는 서비스 리더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실제로 도영 언니는 조회 때 직원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사무실에 가서 따지기도 했다. 나는 시원시원한 목소리의 도영 언니가 조회하는 날을 은근히 기다렸다.

솔 음계로 "안녕하십시까?" 연습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던 서비스 강사. 하지만 그는 인사 시범 때 목소리를 바로 솔음으로 올렸다.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던 서비스 강사. 하지만 그는 인사 시범 때 목소리를 바로 솔음으로 올렸다. ⓒ 오마이뉴스

백화점 교육 때 만난 서비스 리더는 매력적인 저음의 소유자였다. 서비스 교육이라고 해서 목소리 톤을 높여 "안녕하십니까?"를 외쳐야 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서비스 강사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한 후 교육을 시작했다. 그런데 실제 인사 시범에 들어가자 그는 바로 목소리를 솔음으로 올렸다. '아, 백화점에서 일하려면 저 멋진 저음을 감춰야 하는구나' 내 목소리가 아닌데도 아쉬웠다.

강사의 목소리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곧바로 인사 실전에 들어갔다. 옆 사람과 몇 번 인사연습을 한 후 몇 명씩 앞에 나가 인사 시범을 보였다. 손을 앞으로 모으고 나만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교육생들을 바라보면서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를 외쳤다. 긴장되고 몸이 떨렸다.

이 일은 늘 이런 긴장감을 지닌 채 해야 하는 일인가 보다. 그제야 서비스맨이 됐다는 실감이 났다. 과연 나는 모니터링이란 장애물을 잘 피해 갈 수 있을까. 공개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아직 입에 익지 않는 '고객님'이란 단어를 계속 입속으로 되뇌었다.

(* 다음에 계속)


#백화점 판매직#명품#서비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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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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