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코리아연구원과 공동으로 2회에 걸쳐서 미국 빙행턴 대학교의 이윤경 교수와 캔사스대학교의 김창환 교수가 참여하는 '재미학자가 바라본 한국사회 진단'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로 김창환 교수의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
미국에 '국(Gook)'이라는 인종주의적 속어가 있다. 흑인을 폄하하는 표현이 '니거(Nigger)'라면, '국'은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단어다. 때로는 저질 창녀를 뜻하는 이 말은, 베트남 전쟁 시에는 베트콩을 뜻하기도 했다. 2008년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은 베트남 전쟁 당시 그를 감금했던 베트남인을 '국'으로 칭하여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반발을 샀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듯, 이 인종주의 표현은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다.최초의 유래는 필리핀 여성을 칭하던 말이었지만, 한국인들이 아메리카를 지칭하는 미국을 그들은 'Me Gook(나는국)'으로 이해했고, '국'은 니거와 유사한 욕설이 되었다.
'미국'이라는 단어와 인종주의
인종주의는 차별의 대상이 되는 인종을 폄하·경멸,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한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의 회원들이 호남인들을 모욕하며 사용하는 '홍어', '전라디언' 등의 용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역감정을 넘어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말들이다.
일베의 혐오 대상은 호남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성·북한, 외국인도 그들의 타깃이다. 진보는 이른바 '좌좀'이다. "아따 절라디언들 전부 뒤져버려야 한당께"라는 혐오스러운 글을 쓴 아이디는 '좌익효수'다. 일베 회원들은 어머니가 베트남계인 리틀 싸이 황민우군에게는 '열등인종 잡종'이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단일민족으로 국가를 구성하고 있다고 믿는 우리에게 인종주의는 낯설다. 일부에서는 설사 일베의 용어들이 인종주의적이라 할지라도 오프라인의 폭력 행사로 발전하지 않았기에 온라인 놀이문화에 불과할 뿐이라고도 한다. 박권일은 <시사인> 칼럼에서 일베를 루저로 비난하는 행위 역시 인종주의로 규정하고, 일베 현상이 자본주의의 보편현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어느 사회에나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배제가 존재하지만, 모든 사회적 배제가 인종주의는 아니다. 일베 회원을 루저라고 칭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수는 있지만, 이 비난은 인종주의와는 무관하다. 인종주의는 다른 사회적 배제와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인종주의는 다른 인종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단일민족국가인 한국에서 인종주의가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혈통이 같고, 인종이 같은 한민족 내부의 인종주의는 불가능하고, 지역감정의 정도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아일랜드인과 이탈리아인도 한때 백인이 아니었다하지만, 인종주의의 필요조건인 인종의 구분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모든 혈통적 차이가 인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구성에 따라 특정 혈통이 인종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구성된 인종은 차별과 사회적 배제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이민 역사가 짧고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아일랜드인들은 한때 '허연 검둥이(White Nigger)'로, 이탈리아인 역시 '기니아 검둥이(GuineaNigger)'로 불리며 백인이 아니라 별도의 인종으로 간주되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차이도 없는 약간의 검은 피부 그리고 영어 악센트가 이들을 인종적으로 구분하는 표식이었다. 미국에서 백인이 출신국가와 혈통적 차이를 넘어 하나의 인종이 된 건 2차 대전 이후, 경제적 부를 공유하면서부터다.
다른 인종으로 구분되다가 백인으로 편입된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인의 사례와 반대로, 하나의 인종으로 여겨지다 분리된 경우도 있다. 요즘은 당연히 아시아계로 여겨지는 인도출신 미국인들이 20세기 초에는 백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던 이들이 1920년대 아시아인에 대한 적대감이 증가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법원에 의해 백인이 아니라고 규정된다.
시민권과 사유재산권을 침해당했고, 백인과의 결혼도 금지되었다. 인구학적 분류 범주로서의 인종도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변화해, 미국 인구센서스에서 1930, 1940년대에는 인도계미국인을 별도의 인종으로, 1970년에는 백인으로, 요즘은 아시아계로 분류한다.
피부색과 혈통이 같아도 인종주의는 만들어져일베 회원과 '좌익효수' 아이디가 사용하는 표현들은 한민족 내부에서 출신 지역에 따른 인종을 만들어내고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다. 같은 민족이고, 피부색과 언어, 문화가 같지만, 호남 사투리와 이북 사투리는 인종을 사회적으로 만들어내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차이다. 그마저 불가능하면 극성스러운 신상털기로 기어코 구분을 해내고야 만다. 일베의 인종주의가 퍼지면 없던 인종도 생겨난다.
역사적 사례도 있다.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전체인구의 10%가 살해되는 인종청소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이다. 피부 색깔로 인종을 구분하는 상식과 달리 두 종족을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이 없다. 문화, 언어, 피부 색깔이 같다. 그럼에도 인종청소는 벌어졌다. 식민시대를 거치며 생겨난 후투족과 투치족을 표시하는 증명서로 인종을 구분하였다.
일베식 인종주의 조장을 염려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의 인종주의 의식이 다른 국가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워싱턴포스트에서 세계 인종주의 지도를 기사화한 적이 있다. 세계 가치관 조사(WorldValue Survey)의 "다른 인종이 이웃에 살면 그 동네에 살기가 꺼려지는가"라는 항목에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을 이용하여 작성된 이 지도에서, 대부분의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평균 교육 수준이 높고, 민주화된 국가의 인종 차별률은 10% 미만이었다. 민족의식이 유별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일본도 15%를 넘지 않았다. 단 하나 예외적인 국가가 한국, 무려 37%가 다른 인종과 같은 동네에 살기 꺼려진다고 답했다.
인종주의 의식이 세계 상위 수준인 한국필자가 세계 가치관 조사의 원자료를 이용하여 추가 분석해 보니, 50대(61%), 저학력(57%), 하위계급(56%)에서 인종차별의식이 강했고, 20대(22%), 고학력(24%), 상위계급(28%)에서 상대적으로 인종차별 의식이 낮았다. 지역별로는 서울(31%)이 상대적으로 낮았고, 지방 간 격차(충청39%, 호남 38%, 영남41%)는 적었다. 성별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 통계는 경제적 약자,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서 타인종과 섞여 살기 싫어하는 경향이 크다는 걸 보여준다.
인종주의 의식은 정치적 성향과도 연결되어 있어 보수(41%)나 중도(39%)적 성향의 사람들이 진보(18%)보다 인종차별 의식이 컸다. 이처럼 인종주의와 경제적 소외, 정치적 입장이 결합되어 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이 결합은 사회 변동기에 비극적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 비근한 예로, 독일의 스킨헤드족이 극성을 부린 시기는 통일 후, 동독지역에서다.
일베의 인종주의가 불편하지만, 폭력성이 동반되지 않았기에 아직은 괜찮다는 인식은 안일하다. 설사 극우테러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인종주의는 집단의 사회적 존엄성을 해친다. 집단의 사회적 존엄성이란 사회의 일원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일베의 언어폭력이 활동을 방해한다. 인종 혐오적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위협을 가하여 공포, 증오를 유발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배제를 초래한다. 집단 폭력이 동반되지 않아도 일베의 인종주의는 매우 나쁜 사회적 결과를 가져온다.
인종주의는 사회적으로 제재해야물리적 폭력이 동반되지 않은 인종주의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회적 제재, 다른 하나는 법적 제재다.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입장에서 사회적 제재를 선호할 수 있다. 그 사회의 여론이 인종주의에 강하게 반발할 때는 아마도 이 방법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 중에서 가장 인종주의 의식이 강하고, 국가정보기관이 노골적 인종주의 발언을 일삼는 집단과 밀착되어 있다는 강한 의심을 받고 있고, 집권당이 야당이나 이 집단과 싸우라고 비아냥거리는 국가에서 사회적 제재의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인종주의를 조장하고 특정 가능한 집단, 특히 사회적 약자의 사회적 존엄성을 해치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자와 그런 표현을 게재하는 매체에 법적 제재를 가하는 입법을 고려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창환님은 미국 캔사스대 교수입니다.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