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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트만두 트리뷰반 국제공항에 나왔습니다. 예정대로라면 이 시간 태국 방콕 수완나폼 공항에서 미얀마행 비행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어제 네팔 국내선의 연착으로 모든 일정이 엉켜 버렸습니다. 포기는 빠를수록 좋은 법이기에 나쁜 생각은 빨리 잊고 좋은 생각만 하기로 하였습니다.

네팔을 떠나며...

수속을 끝내고 탑승구에서 지인을 만났습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서울 인사동 모임에서 "네팔에서 뵐 수 있었으면 합니다"라는 인사말을 나누었습니다. 서로 덕담으로 나눈 말이 인연이 되어 필연처럼 우연히 만났습니다. 성지순례를 오신 지인은 인도 델리로, 저는 태국 방콕으로 짧은 만남 후 이별하였습니다.

카트만두발 방콕행 타이 항공 모습
▲ 네팔을 떠나며 카트만두발 방콕행 타이 항공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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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가 이륙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되돌아봅니다. 카트만두 도심은 공해로 찌들어 있습니다. 히말라야 하늘은 손을 대면 물이 흘러내릴 것 같이 푸르고 투명한데 카트만두 분지는 인간의 흔적만 자욱합니다. 인간보다 더 많은 신을 가진 네팔에서 신들은 공해를 피해 카트만두를 떠나 히말라야로 가 버리고 사람들만이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륙하면서 본 카트만두 시내 모습
▲ 카트만두 시내 이륙하면서 본 카트만두 시내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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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일 동안 네팔에 있었습니다. 보름 동안 안나푸르나 라운딩을 하였습니다. 트레킹이 끝난 것이 며칠 지나지 않았음에도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나와 상관없는 사람의 무용담을 듣는 것처럼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나약한 의지와 비대한 몸으로 5416m, 쏘롱라를 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폭설이 오면 산을 넘으려는 발걸음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무사히 쏘롱라를 넘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신 히말라야의 신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2001년부터 한 해 걸러 한 번씩 오고 있지만, 산길을 걷는 것은 여전히 낯설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무사히 트레킹을 끝내고 다음 여행지로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뿌듯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쏘롱라'를 넘어서 묵티나트로
▲ 5,416m 쏘롱라를 넘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고개 '쏘롱라'를 넘어서 묵티나트로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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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동남아 특유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저를 환영합니다. 방콕에 오면 저는 카오산에 있는 숙소를 이용합니다. 카오산은 동남아시아 여행의 허브(HUB)입니다. 대부분 배낭 여행자들의 출발과 마무리는 카오산에서 이루어집니다.

배낭여행의 허브 '카오산'

제가 카오산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1년 겨울이었습니다. 네팔 트레킹을 끝내고 돈무항공항(당시 방콕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에서 헤매고 있을 때 젊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인연을 맺었습니다.  

방콕 배낭 여행자 거리 밤 모습
▲ 카오산 로드 방콕 배낭 여행자 거리 밤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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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한 카오산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귀를 찢어 버릴 것 같은 고음의 음악 소리, 도로를 가득 채운 서양 젊은이들의 모습,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지 않고 벌어지는 술판 그리고 레게 머리와 국적을 알 수 없는 복장 등 모든 것이 생소하고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숙박한 한국인 숙소 모습도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골목에 자리 잡은 어설픈 숙소는 젊은 시절 여인숙이 생각나게 합니다. 도미토리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습니다. 한 방에 십여 명이 함께 거주하는 모습과 휴게실에서 젊은 청춘들이 누워 만화책을 보며 소일하는 모습에서 당혹감이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을 삽니다"
▲ 카오산에서 만 볼 수 있는 모습 "모든 것을 삽니다"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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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느낌은 하루가 지나지 않아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질서 속에서도 질서가 있고, 자유로움 속에서도 무엇을 찾아 움직이는 젊은이들의 모습에서 정형화된 여행만 즐긴 저로서는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와 술자리를 통해 진취적인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카오산은 저의 생각과 관계없이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휴식, 마사지, 숙소, 먹거리, 정보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이들과 사귈 수도 있습니다.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여행자들이 자신의 덩치만한 배낭을 메고 카오산으로 모여듭니다. 이곳에서는 배낭이 신분증입니다.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배낭 하나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카오산에 있는 저렴한 식당 모습
▲ 저렴한 식당 카오산에 있는 저렴한 식당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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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산 로드의 노천 맛사지 모습
▲ 맛사지 카오산 로드의 노천 맛사지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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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카오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있습니다. 태국에서 가장 태국적이지 못한 곳이며 태국 사람이 주인이 아닌 이방인 취급을 받는 곳입니다. 여행자들이 몰리면서 물가도 점차 비싸지고 있고요. 태국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카오산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 편안한 곳,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면 카오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2001년 겨울 이후 배낭여행의 출발과 마무리는 늘 카오산이었습니다. 몇 번 정도 이곳에 왔느냐는 것은 의미 없는 질문입니다. 이번 겨울 여행에서만 서울에서 출발하여 이곳을 거쳐 네팔에 갔으며, 미얀마 여행을 끝내면 다시 카오산에 와서 여행을 마무리할 것입니다.

새로운 인연...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이전에도 몇 번 다녀간 적이 있는 한국 식당에 갔습니다. 일 년 만에 만난 주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주인이 제가 뜻하지 않은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몇 분이 지금 카오산에 있다고 합니다. 여행을 떠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일정 때문에 여행지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방콕 카오산 로드에 있는 한국인 숙소 모습
▲ 한국인 숙소 방콕 카오산 로드에 있는 한국인 숙소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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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끝내고 숙소를 방문하니 놀라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네팔에서, 그들은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거쳐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그들도 일정이 꼬여서 예정보다 하루 늦게 방콕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인연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계획대로 여행이 진행되었다면 볼 수 없는 인연인데 말입니다.

제가 내일 미얀마로 갈 계획이라 이야기를 하니 그들도 다음 목적지가 미얀마라고 합니다. 출발일은 내일이 아닌 모래라고 합니다. "함께 가시죠!"라는 저의 제의에 위약금까지 물어가며 함께하기로 하였습니다. 여행은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인연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들과 미얀마 여행을 함께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연은 어떻게든 만나는 것 같습니다.

산을 내려와서부터는 하루하루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입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여행도 제가 생각하지 못한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기면 되는 것이겠지요.


태그:#네팔, #태국, #방콕, #카오산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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