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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국정원)이 사용하는 예산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팟캐스트 방송국 <국민TV> 서화숙 논설위원은 '서화숙의 3분칼럼'이라는 코너에서 "(국정원이 한 행동은) 세계의 비판을 받아 마땅한 전 인류적인 범죄"라고 지적하면서 "이런 국정원 운영하자고 1조원의 세금 냅니까?"라고 일갈했다. 불법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특정 지역과 여성에 대한 비하를 일삼은 국정원에게 우리 세금을 쓸 수 있냐는 문제제기인 것이다.

국정원의 예산과 결산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있었다. 기밀이라는 이유로 국정원이 사용하는 정확한 예산과 결산이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1994년 안기부법이 개정되면서 국회 정보위원회가 신설되어 안기부의 예산과 결산을 심의하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지만 다분히 형식적으로 진행되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국정원에게는 국민혈세가 눈먼 돈?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 운영계획 지침'에 따르면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이다. 2005년 8월 10일자 <한겨레>의 기사와 2011년 12월 21일자 <한겨레> 사설을 종합하면 국정원의 예산은 기밀유지 활동이라는 것을 이유로 주로 '특수활동비' 명목에서 책정되고 지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특수활동비 명목에서 예산 약 4000억~5000억 원, 예비비 약 3000억 원, 부처 곳곳에 산재된 특수활동비 약 2000억~3000억 원으로 총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국정원이 사용하는 자금 비율은 매우 기형적인 형태를 보인다. <국가재정법> 22조에 따르면 국가재정의 경우 본예산이 있으면 사용 목적이 지정되지 않은 일반예비비는 예산 총액의 1% 정도로 책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의 경우 본예산보다 예비비 및 숨겨진 예산의 규모가 더 크다. 2010년 민주당 서갑원 의원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20개 기관에서 집행한 특수활동비의 총액은 1조 1131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중 국정원이 직접 관여한 돈은 국정원 지출 약 4419억, 국정원 예비비 약 3339억으로 총 7758억6000만 원에 달했다.

여기에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에 편성되었으나 실제로는 국정원이라고 표시된 금액도 무려 2684억 원이었다. 국정원이 사용한 금액 중 원래 책정되었던 예산에서 사용된 금액은 4419억 원인데 반해 예비비와 각 부처에 숨어있는 비용으로 사용된 금액은 6024억 원이나 된다.

국정원은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이용하여 국가 예산을 마음대로 쓰고 있다. 2004년 <경향신문> 11월 9일자 보도에 따르면 타부서의 경우 예비비가 필요하면 사유와 금액 등을 담은 명세서를 예산처에 제출해야 하지만 국정원은 이런 과정이 생략된다. 또한 예산처가 국정원 예비비의 적절성 여부를 따지거나 삭감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국정원이 '특수활동비'를 마구 써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2005년 2월 28일자 <한겨레>는 안기부 감사관실에서 근무했던 정병주씨의 증언을 실었다. 기사에 소개된 정병주씨의 증언에 따르면 "1996년 안기부 예산 5596억여 원 가운데 직원봉급과 사업비로 쓰고 남은 돈 1062억 원, 이 가운데 200억 원은 직원들 퇴직금으로 돌리고, 848억 원은 정치자금으로 빼냈으며 14억 원만 남았다고 재경원에 반납했다"고 한다. 정병주의 증언에 따르면 안기부는 당시 예산의 1/7 가량을 정치자금으로 조성했는데, 지금 국정원에 대입하면 1400억 원의 정치자금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1996년이면 국회에 정보위원회가 만들어진 다음으로 국회에서 안기부 예산에 대한 심의가 이루어질 때였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는 4대 의혹사건, 비자금 조성, 대선자금과 통치자금 논란을 부른 이른바 '안풍'사건 등 불법으로 대규모 정치자금을 조성하여 온갖 정치공작을 했던 전력이 있다. 지금 국정원은 비자금 조성이나 정치자금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국정원의 자금 운용이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에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의 국정원이 '특수활동비'를 헌정유린 행위에 사용한 것이 드러난 기사도 있다. 2013년 6월 9일 인터넷 언론 <고발뉴스>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은 인터넷 댓글을 올린 아르바이트생을 대거 고용해서 300만원씩 활동비까지 준 것으로 드러났다고 채널A에서 보도했다고 밝혔다.

어떤 감시도 없는 국정원 지출

국정원이 사용하는 자금에 대한 그 어떤 감시도 없는 것 역시 문제다. 지금 국회에서는 국정원의 예결산 심의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국정원 본예산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비공개로 예산을 심의하고 있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비비가 본예산보다 더 많으므로 예산 심의의 한계가 뚜렷하다. 그나마 진행되는 예산 심의와 결산 심의마저도 국정원 법 12조 2항에 따라 예산안에는 총액만 표시돼 있고 국회 결산심의에서도 영수증을 제출할 의무가 없어 사후 감시조차 불가능하다.

그리고 국정원 예산 자체가 2급 비밀로 규정되어, 심의는 정보위원회 회의장 안에서만 가능하고 대외비가 붙은 관련자료의 경우에는 보좌관의 도움 없이 국회의원 혼자 자료를 분석해야 한다. 2004년 <경향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예산안 심의 때도 예산총액 등 민감한 주요 수치는 아예 연필로 적어 놓거나 회의 종료와 함께 자료를 수거하기 때문에 정밀하게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국회를 통한 국정감사도 국정원을 견제하지 못한다. 2013년 7월 14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국회가 행정부를 감시하는 국정감사 역시 실시일수가 매년 평균 2~3일에 불과하고 다른 상임위와 달리 회의록이나 결과보고서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긴급한 문제 발생 시 국회에 보고하는 현안보고 역시 18대 국회에서 총 7차례만 소집됐다. 국정원은 국가 기밀이라는 이유로 정보위에 자료를 제출하는 것마저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국정원은 감사원의 감사-감찰도 받지 않는다. 감사원의 직무감찰규칙 4조 2항에 따르면 국가정보원법 제13조의 규정에 의하여 국가정보원장이 국가의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기밀 사항에 한하여 그 사유를 소명한 사항에 대해서는 감사원이 직무감찰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한 국정원의 모든 사안이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감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2003년 4월 20일자 <한겨레>는 참여연대가 2002년, 국정원 전직 직원 모임인 '양우공제회'가 강원도 원주에 있는 골프장 인수와 관련하여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국정원장이 해야 할 일"이라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국정원에게 주어진 특혜 해체해야

국회와 감사원에서 국정원의 예산과 결산 심의도 사실상 면제하고, 국정원이 마음대로 국가예산을 쓸 수 있도록 특혜를 준 것은 이른바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활동에 기밀이 요구되고 융통성이 있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난 2012년 대선과정에서 벌어진 부정선거에서 드러났듯이 국정원은 그 특혜를 이용하여 헌정을 유린하고 인권을 짓밟았다. 국민들은 헌정유린, 인권유린 하라고 1조원 이상의 세금을 국정원에 주는 것이 아니다.

국정원은 이번 사태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국내 파트 예산을 더 늘리겠다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2013년 3월 12일 <문화일보>에 따르면 국정원은 "국내 파트를 축소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올해 국내 파트 예산도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하여 국정원이 반성의 기미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얼마나 쓰는지도 불확실하고 어디에 쓰는지도 알 수 없는 국정원의 예산, 국정원은 이런 특권을 바탕으로 정치개입을 일삼았고 인권유린과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이번 기회에 감시도 받지 않고 눈먼 돈 쓰듯이 국민혈세를 탕진하는 국정원의 특혜를 없애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사회연구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예산#국민혈세#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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