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
새누리당에서 '지역감정 조장'이 사라져가는 듯했다. 각종 선거에서 새누리당 표가 가장 적게 나오는 지역이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호남에 들인 공은 상당했다. 효과가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새누리당은 대선캠프에 '100% 국민 대통합위원회'를 차려 호남 출신 인사를 상당수 영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고 반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 '새누리당의 지역감정 조장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올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19일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서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권 과장은 광주의 경찰이냐, 대한민국의 경찰이냐"라고 물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 책임자였던 경찰 수사과정에서 상부의 '수사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에게 던진 질의다.
1993년 탈북해 남한 생활을 시작한 조 의원이 한국 경찰이 지방자치경찰과 중앙경찰이 독립돼 있다고 잘못 알고 물어봤을 리는 없다. 조 의원의 의도는 권 과장이 광주 출신이란 점, 광주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야당 후보에 몰표를 줬다는 점을 끄집어 내 '야당 승리를 위해 수사외압을 폭로한 것 아니냐'고 물은 것으로 봐야 한다. '광주의 딸이 한 폭로를 믿을 수 있느냐'고 주장하는, 명백히 특정지역 출신을 모욕한 질의인 것이다.
편견·차별에 맞서야 할 탈북자 출신 국회의원조 의원은 북한 정무원 건설부장(건설교통부 장관)의 아들로 남산학교·김일성종합대를 나와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교수가 됐고, 중국 텐진 난카이대에서 교환교수 생활을 하다가 탈북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통일교육원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조명철 의원이 19대 총선 비례대표명부에서 당선이 확실한 4번을 받은 것은 탈북민에 대한 새누리당의 배려로 평가됐다. 2만4000여 명의 탈북 시민들의 정착을 돕고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의원 300석 중의 한 자리를 할애했다고 할 수 있는 것.
조명철 의원은 지난 15일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이 총 정원의 일정 비율을 탈북자로 채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북한 출신임이 드러나면 차별이 시작되는 사회의 현실을 개선해보자는 일환으로 발의된 법안이다.
이런 점에서 국회의원 300명 중 누구보다도 출신에 따른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할 사람이 바로 조명철 의원이다. 그런 그가 국정조사 증인의 출신지를 거론하며 증인의 진정성을 문제 삼은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본분과 임무를 망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탈북자에 대한 편견 강화하는 국회의원조 의원은 선출직은 아니지만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면서 탈북민 사회에서 점점 그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 6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에는 탈북자 몫으로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장이 대통합위원으로 임명됐다. 이 인사에는 조 의원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관련 기사:
"청와대가 2~3시간 주며 인사 추천 요구").
이처럼 탈북자 사회를 대표하는 중요 인물로 자리잡고 있는 조 의원이 심각한 지역 차별적 인식을 드러낸 것은 탈북자들 사이에 비슷한 인식이 퍼져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들게 하는 대목이다. 조 의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탈북민 사회 전반을 향해서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탈북자가 보기에도 조 의원의 '광주 경찰' 발언은 문제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한에 온 지 20년 이상된 한 탈북자는 "(조 의원이) 남한의 민주주의 확립 과정을 이해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여로 모로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조 의원이 북한에서도 엘리트 출신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김일성 일가에 충성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던 사람들이 월남해서는 낡은 이념논쟁의 도구로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하고 있지 않으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 의원이 정말로 광주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새누리당의 초선 의원으로서 단순히 국정조사의 초점을 흐리려는 '과잉 충성'의 일환으로 지역 차별 발언을 했는지, 그 의도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가뜩이나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일베' 같은 무리들이 문제시되는 상황이다. '탈북자 국회의원 1호'가 '일베'와 비슷한 지역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며 오히려 탈북자들에 대한 남한 사회의 편견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면 '탈북자 몫 국회의원'이 과연 탈북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