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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중 부역혐의자들은 자기들이 죽는 줄도 모른 채 괭이와 삽을 들고 군인들의 인솔로 '골(골짜기)'로 가고 있다. 이들은 자기 무덤을 판 다음 그 자리에서 곧장 처형되었다. (대구 근교,1951. 4.).
 한국전쟁 중 부역혐의자들은 자기들이 죽는 줄도 모른 채 괭이와 삽을 들고 군인들의 인솔로 '골(골짜기)'로 가고 있다. 이들은 자기 무덤을 판 다음 그 자리에서 곧장 처형되었다. (대구 근교,1951. 4.).
ⓒ NARA, 이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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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골로 가다

이별

1950년 9월 26일, 최순희가 추풍령 외딴집에서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보니까 곁에 준기가 보이지 않았다. 순희는 준기가 뒷간에 간 줄 알고 한참 기다렸으나 끝내 깜깜 무소식이었다. 날이 훤히 밝아도 준기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순희는 그 순간 아찔했다. 뭔가 섬뜩한 예감에 쌀자루를 열어보자 편지가 나왔다. 순희는 편지를 훑어본 뒤 후딱 밖으로 나갔으나 준기의 종적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순희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동안 동행하며 의지했던 준기가 종적도 없이 사라지다니….  순희는 앞이 까마득했다.

'삶과 죽음이 한순간에 바뀌는 전쟁터에서 순희 누이를 뜻밖에 만나 행복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이제 제가 순희 누이 곁을 떠나는 게 진정 사랑하는 길로 여겨집니다. …'

순희는 편지의 글귀를 곱씹을수록 준기의 진정성이 묻어났다.

'그래, 무사히 탈출하여 굳세게 살면서 그를 기다리는 게 그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야.'
 추풍령 역의 급수대로 아직도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2013. 7. 30.)
 추풍령 역의 급수대로 아직도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2013. 7. 30.)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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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희는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면서 낭떠러지에서 떨어진 아득한 절망감에서, 그와 이별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아나는 희망의, 긍정의 길로 생각을 바꿨다. 순희는 전쟁터에서 남녀 두 사람이 함께 도망가는 것보다 여자 혼자 도망다닌 게 훨씬 더 수월하다는 말은 옳다고 여겼다.

순희는 할머니에게 아침밥을 얻어먹은 뒤 몸빼바지도 하나 얻어 입었다. 그때부터 순희는 철저하게 피난민으로 위장했다. 순희는 할머니에게 하직 인사했다.

"할머니, 하룻밤 신세 잘 졌습니다."
"그냥 재워준 것도 아닌데. 마, 어째든동 조심해서 잘 가라."
"예, 할머니."

북행길

마침내 순희는 혼자 북행길에 올랐다. 혹시나 도중에서 준기를 만날 수 있을까 하여, 서울 쪽으로 걸어가면서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끝내 준기는 보이지 않았다.

서울로 가는 도로 옆에 추풍령 역이 보여 들렀다. 겉보기에 역사는 멀쩡했으나 그밖에 시설들은 열차 운행중지로 어수선했다. 역사 맞은 편 기관차 급수대는 을씨년스럽게 우뚝 서있고, 서울로 가는 선로는 아득히 펼쳐졌다.

 서울로 가는 경부선 철길(2013. 7.30.)
 서울로 가는 경부선 철길(2013. 7.30.)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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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희가 추풍령을 떠난 이튿날 해거름 때에야 영동에 닿았다. 추풍령과 영동은 하루 길도 안 되지만, 길도 모르고 밤중에 산길과 들길을 걷다보니 그렇게 시간이 걸렸다. 순희는 몸과 마음이 지친 데다가 배가 고파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다. 땅거미가 어둑할 때를 기다려 영동 들머리 한 주막집에 들렸다.

"밥 좀 주세요."

순희는 주막 문을 두드리며 나직이 말했다. 곧 방문이 열리더니 늙은 주모가 순희의 몰골을 훑으며 밀했다.

"식은 밥밖에 없슈."
"괜찮아요."
"그러면 들어와유."

순희가 집안을 살핀 뒤 얼른 들어갔다.

"그래두 국까지 식은 걸 줄 수야 없지유."

주모는 부엌으로 가더니 국솥에 불을 지폈다. 얼른 순희도 부엌으로 가 아궁이에 불을 때며 산길을 걷느라 굳은 몸을 녹였다. 국솥이 끓자 주모는 국자로 뚝배기에 국 한 그릇을 담고는 식은 보리밥 한 덩이를 넣어주었다. 순희는 그 국밥을 환장한 사람처럼 후딱 먹었다.

"많이 굶은 모양이네유."

순희는 입안에 밥을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국밥 한 뚝배기를 후딱 먹은 순희가 두어 차례 숨을 쉰 뒤 말했다.

"할머니, 이제 살겠어요. 제가 부엌일 도와 드릴 테니 여기서 한 이틀 쉬어가게 해 주세요."
"난리 중인데다가 명절 뒤끝이라 장날 손님도 없지만 그래유. 마침 내일이 영동 장이네유."
"고맙습니다. 할머니."

 오늘의 충북 영동장터(2013. 7. 30.).
 오늘의 충북 영동장터(2013. 7. 30.).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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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장

이튿날 새벽에 일어난 순희는 할머니 국밥 만드는 일을 도왔다. 순희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쇠고기를 넣은 국솥에 간장을 붓고 무를 쓴 것을 넣은 다음 고춧가루와 파 쓴 것을 듬뿍 넣었다. 

"아주 손이 야무지네유. 난리 끝날 때까지 그만 우리 집에 살아유."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기다릴 겁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유."

그날 파장 무렵 순희는 영동 장에 나갔다. 비상금을 꺼내 운동화도 새로 사고 곡식도 두 되 산 뒤 자루에 담았다. 그런 다음 포목점에 가서 광목 두어 마도 끊었다. 서울로 가는 도중, 잠잘 때 그 광목을 홑이불로 덮기 위함이었다. 그날 밤 주막에서 하룻밤 더 신세를 진 뒤 이튿날 새벽 다시 북행길에 올랐다.

영동을 떠나 사흘 동안 산길, 들길을 걸은 끝에 심천, 이원, 옥천을 거쳐 대전에 이르렀다. 대전은 이미 국군과 유엔군이 진주하고 있었다. 순희는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강행군을 한 탓으로 대전에 이르렀을 때는 완전히 지쳐 그의 몰골은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순희는 더 이상 산을 타고 북상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몸은 이미 망가졌다. 순희는 배고픔을 더 참을 수 없어 대전에서는 아무 집 대문이나 두들겨 밥을 얻어먹거나 빈집이나 창고에서 잠을 잤다.

순희는 더 이상 걸어 북상하기를 포기한 채 열차를 타고자 대전 역으로 갔다. 대전 역은 전란으로 완전 폐허였다. 그때까지도 서울 영등포로 가는 열차는 운행되지 않았다. 군인과 역원들이 열차운행 재개를 위해선지 대전 역 안팎을 치우느라 한창 바쁘게 움직였다.

순희가 어수선한 대전역 광장을 막 벗어나는데 '헌병'이라는 완장을 차고 'MP'라고 새긴 헬멧을 쓴 군인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 소리에 놀라 순희는 냅다 도망쳤다. 그런데 헌병은 굳이 순희를 뒤쫓지 않았다. 아마도 순희를 보고 분 호루라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제 풀에 놀란 순희는 가슴을 쓸어내린 뒤 하는 수 없이 다시 서울방향으로 걸었다.

그새 10월로 달이 바뀌었다. 순희가 구미 형곡동 한옥 안방에서 찾아 입은 여름 무명 한복은 그새 헤지거나 찢어지고 싸늘해진 날씨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서울로 가는 도중 빈집에 들어가면 먼저 안방 벽장이나 장롱에서 몸에 맞는 긴 옷을 찾아 껴입었다. 거기다가 추풍령 할머니에게 얻어 입은 몸빼를 줄곧 입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흰 광목수건을 둘렀다. 깨진 거울로 몰골을 비춰보니 중년여인처럼 보이는 듯했다.

 전란으로 폐허가 된 대전역 플랫폼(1950. 9. 30.).
 전란으로 폐허가 된 대전역 플랫폼(1950. 9. 30.).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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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철교

더 이상 산길이나 들길을 걷기도 지친 데다가 대전에서부터는 산길도 마땅치 않았다. 순희는 더 이상 산길 들길 걷는 일을 피하고, 거기서부터는 국도를 따라 계속 북으로 걸었다. 긴장도 여러 날 하다 보니 나중에는 그만 배짱으로 변했다. 그러면서도 순희는 '까짓것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하는 오기까지도 생겨났다. 순희가 대전을 출발한 지 두어 시간 만에 회덕이란 곳이 나왔다. 거기서 마음씨 좋은 집을 만나 점심 요기를 하고 다시 두어 시간 남짓 더 걷자 신탄진이 나왔다.

가도 가도 끝없는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이른 아침 대전에서부터 계속 걸어온 데다가 그새 늦은 오후 시간이라 배도 고파 신탄진 역 앞 한 밥집에서 국밥을 청해 먹으며 서울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이 국도(17번)를 따라 곧장 올라가면 죽전이 나오고, 거기서 왼편 경부선 철길로 난 길을 따라 가면 부강이 나와유. 그 길 따라 올라가면 조치원이 나오고 1번 국도와 만날 거유. 그 길을 따라 곧장 가면 서울이유. 아마 조치원이나 천안 가면 서울 가는 차도 얻어 탈 수 있을 것이유."
"고맙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여러 손님이 묻는 길인지라 국밥집 주모는 길눈이 밝았다.

"그런데 가는 데마다 검문이 심할 거유. 우선 예서 현도교를 건너는 금강나루에도 헌병들이 쫙 깔려 북으로 올라가는 인민군들을 잡는대유."

순희는 그 말에 찔끔했지만, 자기는 서울에서 내려온 피난민이라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 뒤 언저리 지리 정보를 캐물었다. 국밥집 주모는 별 의심 없이 그곳 지리를 자세하게 가르쳐 줬다. 신탄진에서 부강으로 가자면 금강을 지나는데, 지난 7월 중순에 유엔군들이 인민군 남침을 막는다고 현도교도 신탄진 금강철교도 모두 폭파하여 이즈음은 나룻배로 건넌다는데 검문이 매우 심하다고 했다.

순희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자칫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순희는 밥값을 치른 뒤 느긋하게 쉬고는 다시 북상 길에 나섰다. 신탄진 역을 조금 지나자 곧 금강이 나오고 부서진 현도교가 보였다. 그 부서진 다리 곁 강가에는 초소가 있었고, 두어 헌병들이 검문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신탄진 금강철교가 보였다.

금강철교와 그 옆 현도교는 금강 남쪽 사람이 서울로 가자면 꼭 건너야 하는 다리였다. 강가 검문소에서 길목을 지키던 헌병은 순희를 발견하고는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 순간 순희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다시 신탄진 철교 쪽으로 도망을 쳤다. 곧 헌병은 호루라기를 부르며 소리쳤다.

"정지! 이리 와! 더 이상 도망가면 쏜다!"

순희는 그 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냅다 뛰었다. 그러자 헌병은 어깨에 멘 캐빈총을 서서 쏴 자세로 바꾼 뒤 위협사격을 했다. 그 총알이 순희의 앞뒤에 떨어졌다.

 오늘의 경부선 금강철교(신탄진, 2013. 7. 30.).
 오늘의 경부선 금강철교(신탄진, 2013. 7. 30.).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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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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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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