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정치학을 배우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론이 바로 '근대화 이론'이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어떻게 서양처럼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에 집중했던 것도 사실이다. 북미와 유럽의 높은 정치의식, 복지국가관 그리고 높은 소득 및 행복수준이 한국보다 높다는 것을 보면서, 선진국에 대해 상당히 부러워했다.
하지만, 독일에서 3년 동안 유학을 하면서,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복잡하고 이슈가 많은 사회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가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유학 중 아프리카 친구들을 많이 만나면서, 내가 이 지역에 있어서 무지했음을 깨닫고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객관적으로 공부할 수 기회도 많았다. 아프리카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정치지형이 복잡한 민족 구성 및 지리적 배경으로 인해 선진국보다 훨씬 복잡한지라, 한 이슈를 다룰 때 다른 국가들보다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연구하며 깨달아가고 있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접한 책이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until Yesterday)>라는 책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내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있었던 2005년에 처음 접했다. 당시 발간되었던 <문명의 붕괴(Collapse)>가 밴쿠버 거의 전 서점에서 추천도서로 소개됐는데, 나는 우선 그의 문명 3부작의 편인 <총균쇠(Guns, Germs and Steel)>을 먼저 읽은 후 <문명의 붕괴>를 탐독했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서적은 묘하게 연결된다. 첫 번째인 <총균쇠>의 주된 주제는 "왜 동양의 파푸아뉴기니가 아닌 서양의 유럽에서 근대화가 실현되었고, 그들이 왜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이다. 이 서적에서 그는 지정학적인 차이로 인한 농경 및 목축문화의 차이가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다며 진화론적 역사관을 바탕으로 분석한다. 두 번째인 <문명의 붕괴>는 "왜 모아이나 푸에들로 보니토와 같은 문명이 어떻게 몰락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자연파괴 및 기후변화 거기에 대한 대처능력의 미흡이 이러한 비극을 불러왔다고 언급하며, 현대사회도 이와 비슷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나온 세 번째 책은 문명의 생성 및 붕괴에서 더 나아가서 전통사회와 현대사회와의 조화라는 관점으로 초점을 맞춘다. 두 시리즈물의 경우 구미중심주의 및 진화론적 관점에 너무 치우쳤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는 구성주의, 즉 '역지사지'를 바탕으로 한 문화상대주의를 바탕으로 전통사회와 현대사회와의 차이점을 분석한다.
우선 서장에서 그가 언급하는 내용이 인상적인데, 서양 학문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봤을 때는 'WEIRD(희한한)'학문일 수 있다고 언급한다. 여기서 'WEIRD'의 의미는 희한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서양적(Western), 학식 있는(Educated), 산업적인(Industrial), 부자의(Rich), 민주주의적인(Democratic)의 첫 알파벳을 따서 만든 약자이기도 하다. 즉 그는 전통사회를 분석할 때 기존 서양학계의 학문적인 틀로 분석해서 이를 심도 있게 이해하지 못했음을 비판하며, 문화상대주의적 틀을 바탕으로 분석한 것이다.
문화상대주의를 바탕으로 그는 전통사회와 현대사회를 대인관계, 무역, 전쟁 및 분쟁, 양육 및 노인부양, 위험요소, 종교, 언어 및 보건 등의 각 이슈별로 비교해서 분석했다. 내용이 상당히 방대한지라 지면에 다 말하긴 그렇지만, 그 중 일부 인상적인 내용들을 요약한다. 다른 요소들도 많이 있으니 책을 직접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1. 전쟁의 경우, 전통사회에서는 소규모 집단 간의 갈등에서 유래되며, 국지전인 경우가 많다. 반면 현대사회의 경우 더 범위가 큰 국가 간의 정치적 갈등이 원인이 되고, 전면적인 경우가 많다. 현대사회의 경우 핵과 화학무기와 같은 대단위 살상무기가 동원되어서 처참한 것이 사실이지만, 인구 대비 사망률은 전통사회 전쟁이 훨씬 높은 편이다.2. 형사 및 민사재판의 경우, 전통사회에서는 마을의 지도자급이 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재판절차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분쟁당사자를 화해시킬 의무도 있다.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전문적인 판사와 변호사가 주가 되는데, 분쟁당사자들의 경우 재판 이후에 완전 남남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3. 육아의 경우, 전통사회의 모유수유기간이 현대사회에 비해 훨씬 길다. 또한 아이와의 신체적 접촉도 유모차를 쓰는 현대사회에 비해 높은 편이다. 흥미로운 것은 전통사회의 경우 아이들이 장난감을 각종 자연지물을 이용하여 스스로 만드는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장난감 가게에서 구입하는 식이다.4. 노인부양의 경우, 전통사회에서는 노인의 경력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성향을 지니지만, 현대사회의 경우 노인 스스로가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5. 전통사회에서는 부러지는 나무 및 사자 및 악어와의 조우와 같은 변화무쌍한 자연적 요인을 위험요소로 인식하지만, 현대사회의 경우 주로 교통사고 및 기계와 관련된 것들이 대다수다.6. 언어의 경우 전통사회는 여러 부족들 간의 접촉이 있어, 다국어에 능한 사람들이 많다. 이는 부족들별로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며, 부족 간 혼인이 활발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경우에는 사회통합을 위해 주로 한 가지 언어로 소통된다. 그래서 이민자 가정의 경우 이들의 언어가 무시되는 대신 해당 사회에서 쓰는 언어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사회의 공용어 정책은 오히려 소수언어의 사멸을 불러왔다. 각 분야별로 분석한 후, 그는 전통사회의 장점을 현대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그는 전통사회의 회귀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현대사회가 집단 간 갈등이 수시로 발생하는 전통사회와 비교해서 안정적인 편이고, 그 자신도 미국사회에 맞게 이미 적응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책 말미에 그는 파푸아뉴기니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미국인 선교사 자녀의 말을 인용하는데, 미국의 경우 너무 개인주의적이고, 삶이 전부 제각각이지만, 전통사회의 경우에는 사회구성원과의 조화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전통사회에서 나타나는 공동체 의식의 존재, 세밀한 중재처리 및 어렸을 때부터 배우는 독립성 등은 현대사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연구는 그가 언급한 전통사회 및 현대사회의 문화가 혼재되어서 나타나는 우리나라에도 큰 의미가 있다.다만 아쉬운 것은 그의 연구의 경우 전통사회를 현재까지 미미하게나마 남아있는 원시수렵사회로 한정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연구의 틀이 양 극단을 비교함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가 미국 출신이기에 문명권도 주로 구미지역 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아시아의 혼재된 문화를 말하려면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예로 들어 동양의 경우 중앙집권화된 국가라는 개념이 서양의 로마와 비교하여 더 일찍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또한 중세시대의 경우 서양은 여러 독립된 봉건영주들을 바탕으로 정치판이 짜인 반면, 동양의 경우 강력한 중앙권력을 바탕으로 한 황제 및 왕을 중심으로 정치판이 짜였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보완연구도 필요하다. 종교의 경우에도 유럽은 로마제국 분열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중앙집권적 교황체제 및 일원화된 가톨릭 체제로 운영되었다. 반면 동양의 경우, 중앙권력이 종교를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이용했지만, 유럽처럼 중앙집권적인 구조는 아니었으며, 다양한 종교가 공존한 체계였다. 이러한 인문학적 요소로 인해 서양 및 동양문명권을 다 같은 문명권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다이아몬드의 문명에 대한 학문적 업적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받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번 시리즈의 경우에는 전통사회를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연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통사회에 대한 연구가 미국에 비해 아직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인 백만명 시대를 경험하고 있어서 문화비교연구는 통합정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문학적 과제이다. 한국 및 아시아 인류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문화비교연구가 이번 다이아몬드의 저서를 통해 더욱 활발해지고 세계 인류사 연구에 큰 기여를 하길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어제까지의 세계> 제레드 다이아몬드 저/강주헌 역 | 김영사 | 2013년 0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