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 좋았다.', '구관이 명관이다.' 이런 말들은 과거를 지금보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말이다.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과거를 미화하기 마련인지, 과거를 미화하는 풍조 자체가 동양과 서양에 모두 존재했다.
중국 역사가들은 과거의 훌륭한 통치를 가리켜 중국 고대의 임금인 요, 순의 정치와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요와 순의 정치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거꾸로 말하면 과거에는 훌륭한 정치가 이루어졌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회가 혼탁해졌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유학자 중에는 자신의 시대의 정치가 옛날에 비해 못함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러한 관념은 서양에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대를 금의 시대, 은의 시대, 동의 시대, 영웅의 시대, 철의 시대로 구분하면서 과거에서 철의 시대로 나아가면서 인류의 삶이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과거에 비해서 현대 사회의 우리들은 더 어렵고 힘든 삶을 살게 된 것일까, 아니면 그냥 우연히 과거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일까? 과거가 좋았다면 우리는 과거로부터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배워야 할 것이다.
<어제까지의 세계>는 과거 전통사회의 모습을 관찰해 온 저자가 그들의 사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논하는 책이다. 권장도서로 유명한 <총,균,쇠>,<문명의 붕괴>의 저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세계 각국의 전통 사회의 모습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른바 문명대연구 3부작의 완결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과거 전통사회에서도 좋은 점이 있지만 나쁜 점도 있음을 인정한다. 저자는 단순하게 옛날이 좋았다고 말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현대 서구 사회를 비판하는 것을 넘어 근대 이전의 옛 문화를 찬미하며 그때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자는 그런 의도로 책을 쓰지 않았다.
저자는 직접 뉴기니에서 살면서 전통사회의 열악했던 환경을 체험해본 사람이다. 근대 이전의 문화는 위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고통의 연속이었다. 많은 아기들이 아플 때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어린 시절에 죽었고, 몸이 다치거나 부러지면 그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로 살아야 했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문제가 많았기에, 남편을 잃은 여성이나 노인을 죽음으로 이끄는 문화권도 있었다. 식량이 부족해지면 살인이 증가했다. 식량이 풍부할 때는 먹지 않던 풀이나 나무껍질을 식량이 부족해지면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충분히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는 오늘날에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사용하려고 잉여식량을 저장하는 전통 사회는 많지 않다. 저장할 만큼 잉여식량을 생산하지 않기도 하지만, 뜨겁고 습한 기후에서는 식량이 빨리 상하기 때문이고, 유목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잉여식량을 저장하더라도 침략자들에게 빼앗길 위험이 있다. 전통 사회들은 좁은 지역에서 식량을 구하기 때문에 식량 부족에 위협받지만, 제1세계는 자국의 영토에서 생산되는 식량들을 분배하고 부족한 식량을 지극히 먼 국가에서라도 수입해 보충할 수 있다. -445P
다만, 저자는 우리가 받아들여 살고 있는 서구적인 현대 사회에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본다. 대표적인 것이 소금과 설탕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서 발생하는 질환들이다. 과거에는 소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뉴기니인 중에는 소금을 구하기 위해 식물의 껍질을 태운다음 재를 물에 섞을 정도로 힘겹게 소금을 구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설탕 역시 마찬가지여서, 과거에는 설탕을 활용한 음식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두가지 조미료가 매우 흔해서 누구나 팍팍 뿌려가며 맛을 조절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조미료를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로운 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는 사실상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문제다. 따라서 전통 사회의 식습관을 받아들여 염분과 단당이 함유된 식품을 피한다면 질병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오늘날의 사법 제도하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를 고소하고 재판을 받으면 된다. 보통 금전 배상이 결과다. 그러나 과거의 전통 사회에서는 달랐다. 전통 사회에서는 사건이 생기면 금전적 배상 대신 적절한 중재와 협상을 통해서 서로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저자는 감정의 해소와 관계의 회복을 강조하는 방식을 사법 제도에 접목하여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명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경계심이라고 한다. 전통사회의 사람들은 매우 경계심이 높은데, 이는 위험으로 인해 사망하거나 다칠 확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현대인들도 종류와 빈도는 다르지만 교통사고와 같은 일상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현대인들도 이런 위험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외에 노인을 대하는 전통 사회의 태도,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학습 과정 등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전통 사회의 특징들이 많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우리들은 테크놀로지, 정치, 군사에서 다른 사회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런 특별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전통 사회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울 것이 있고, 배운다면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현대 산업사회들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노인을 대우하며, 분쟁을 해결하고, 비전염성 질병과 그 밖의 사회적 문제를 억제하는 데는 우월한 방법을 개발해내지 못했다. 수많은 전통 사회가 이런 문제들에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며 해결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전통 사회들, 특히 뉴기니의 전통 사회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덕분인지 나 자신의 인생관이 달라졌고 한층 풍요로워졌다. 이 책을 통해서 개별 독자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가 전통 사회의 모습을 즐겁게 읽고 거기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교훈들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682P
저자는 전통 사회의 모습을 단순히 나열식으로 강의하지 않고, 다양한 전통 사회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설명한다. 이야기 중 상당수는 저자가 직접 거주하며 탐험을 시도했던 뉴기니 섬의 이야기다. 이 지역은 섬이 많고 다른 문화권과 거리를 두고 있어 전통 사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덕분에 책이 길이가 700쪽 가량이지만 읽으면서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이 책은 오늘날과 다른 옛날 전통 사회에 대해 궁금한 사람, 현대의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다른 사회에 비추어서 문제점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