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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국정원은 프락치를 거액 매수하여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간 통합진보당(진보당)을 사찰하도록 했다. ... 내란음모죄라고 하는데 이는 국기문란, 헌정파괴 국정원의 연이은 헌정 유린사건, 정당 사찰 사건이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책임져야 하며, 이에 대해 우린 끝까지 책임 물을 것이다."  9월 1일 이상규 의원 기자회견

진보당 이상규 의원은 1일 기자회견을 통하여 국정원 프락치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정국을 강타한 국정원의 내란예비음모죄 압수수색이 녹취록의 등장과 프락치 거액 매수 주장으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전에도 일부 언론에서 내부 동조자의 존재가 기사화되기는 했지만 프락치 주장이 나오기는 처음이다.

내란예비음모사건 녹취록의 출처가 내부협력자, 그것도 거액에 매수된 국정원 프락치인 것이 사실이라면 33년 만에 부활한 내란예비음모죄 사건에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다.

프락치에 의한 불법적인 감청?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내곡동 국정원 앞에서 열린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에 참석해 자신을 비롯한 당직자들의 '내란예비음모' 혐의 수사에 대해 국정원이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며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 국정원 해체 외치는 이석기 의원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3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내곡동 국정원 앞에서 열린 '국정원 내란음모 조작, 공안탄압 규탄대회'에 참석해 자신을 비롯한 당직자들의 '내란예비음모' 혐의 수사에 대해 국정원이 내란음모 사건을 조작하고 있다며 국정원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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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이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바로 녹취록의 존재다. 국민들도 국정원이 공개한 이 녹취록의 내용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녹취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던 진보당은 짜깁기에 의한 날조, 왜곡이라며 원본 녹음기록과 동영상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이 녹취록의 존재와 출처는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상규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하여 해당 녹취록은 내부 조력자 또는 프락치에 의한 불법 녹음 또는 도촬(도둑 촬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여전히 합법적인 감청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거액매수설도 부정한다.

언론에 공개된 진보당 내부의 국정원 조력자는 과거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진보당 전신)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으며, 국정원이 관련자들을 압수수색하고 체포한 이후 갑자기 행방을 감췄다고 한다. 진보당에 따르면 국정원에 매수돼 가족 전체가 해외로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정원 주장처럼 영장을 바탕으로 한 감청이라고 하더라도 3년 동안이나 합법 정당을 감청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충격적이다. 또, 감청의 근거가 되는 통신비밀보호법 조항이 2010년에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2011년 12월 31일 이후 효력이 중단되었다는 점에서 녹취록의 법적 증거능력을 두고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내란예비음모 사건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진보당은 즉각 이를 공안탄압이고 조작이라고 규탄하고 당을 투쟁본부로 전환했다. 지난 8월 31일 3천여 명이 국정원 앞에서 대규모 항의집회에 참여했고, 저녁에는 촛불집회에 대거 참석했다.

지난 8월 30일에는 녹취록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경기도당 간부들을 중심으로 기자회견을 하기도 하고, 저녁에는 이석기 의원이 의원실 복도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9월 1일에는 이상규 의원이 다시 의원실 복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원을 돕는 내부 조력자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아직까지는 제기되는 의혹을 해소해줬다고 보기 힘들다. 더 적극적이고 정확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특히, 녹취록과 5월 12일 모임 사실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해명해야 하며, 프락치 존재 여부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진보당, 국민 앞에 사실관계 먼저 정확히 밝혀야

이번 사건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탄압하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반박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더라도 내란죄를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악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 형법에 내란죄를 갖고 있지 않은 나라는 없다. 진보당 입장에서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혐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보장이라는 근거로 그 혐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수 있지만, 내란죄 부분만큼은 분명한 사실관계로 반박해야한다.

국민에게는 이 녹취록의 증거능력만큼이나 녹취록 발언들의 내용과 진위가 중요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1급비밀인 남북정상회담록을 왜곡해 공개해버린 것에서 알 수 있듯 국정원은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녹취전문과 녹음기록, 동영상자료를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NLL정상회담록은 직접 당사자인 노무현 대통령이 고인이 된 상황에서 내용을 반박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웠다. 이 문제가 진실공방이 되는 순간, 각종 자료를 가지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볼 수 있는 청와대와 국정원, 새누리당에 비해 반대편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5월 경기동부연합이 결성한 지하조직 'RO(Revolutionaary Organization)'로 모임을 개최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시설의 모습.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이 의원 사무실과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다음 날인 29일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지난 5월 경기동부연합이 결성한 지하조직 'RO(Revolutionaary Organization)'로 모임을 개최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종교시설의 모습.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이 의원 사무실과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선 다음 날인 29일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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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사건은 아무리 국정원이 감청이니 압수수색을 했지만 진보당과 이석기 의원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5월12일 모임도 100일 전 일이기 때문에 그날 일에 대한 복기가 가능하다. 행사가 열린 서울 합정동의 종교시설은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등이 강연 또는 교육 장소로 자주 이용하는, 외부에 완전히 노출된 공간이다. "요즘에는 내란 모의도 강당에서 하나? 그것도 서울 한복판의 완전히 공개된 장소에서?"라는 반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날 모임의 성격만 정리되어도 국정원 주장의 상당수는 근거를 잃는다. 국정원은 이 모임을 RO(Revolutionary Organisation) 비밀 회합 또는 경기동부연합의 민혁당 재건 모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진보당은 경기도당의 공식적이고 통상적인 당원교육모임이며, 이석기 의원은 단순히 정세 강연을 하는 강사로 참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식적인 교육이라면 강사에게 분임토론에서 제기된 개인의견까지 책임지라고 할 수 없다. 나아가 분임토론에서 나온 개인 의견을 그 집단의 의견으로 환원할 수도 없다. 이렇게 되면 집단적 결의가 필요한 내란음모로 규정한 쪽이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당의 공식행사라면 이를 증명하는 자료 즉, 행사 안내 공지(이메일 안내나 문자 메시지)도 괜찮고, 아니면 경기도당 사업계획서의 교육 계획, 사후 또는 사업보고서도 괜찮다. 이날 장소대여료 같은 행사비 지급 영수증이나 계좌이체 내역도 괜찮다. 하다 못해 그날 분임토론 자료를 정리해 놓은 것이 있다면 좋은 자료가 될 수 있다.

이런 내용들만 구체적으로 공개한다면 국정원의 RO 비밀모임 시나리오는 힘을 잃게 된다. 그렇게 해야 조작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생기고 국민들도 믿어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정원과 진보당의 공수 자리는 쉽게 역전될 수 있다.

언론이 국정원 받아쓰기 보도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이 제대로 해명을 하지 않으니 언론이 받아쓸 곳이 국정원 밖에 없는 면이 있다. 지금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의 말 한 마디를 따기 위해 혈안이다. 지금 분위기라면 이석기 의원이 10시간을 기자회견을 한다고 해도, 진보당이 하루 10번 기자회견을 해도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고, 기자들은 키보드를 두드릴 것이다.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은 좀 더 적극적으로 카메라 앞에 나설 필요가 있다.

진보당을 지지하지 않는 일반 국민들의 시각도 이 사건을 국정원 댓글 사건의 물타기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보수라고 자처하는 표청원 전 경찰대 교수도 이를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억울하다, 공안탄압"이라는 말만 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엄중하고, 사태가 심각하다.

이석기 의원·진보당, 카메라 앞에 나와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언뜻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작은 것들이 몇 개만 모이면 큰 사건이 될 수 있다.  국민들이 놀란 것은 130명의 모임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총기 확보 발언이나, 혜화전화국, 성남 IDC, 평택 유류고 등의 파괴와 같은 디테일들이다. 말도 안 되는 이민위천(以民爲天) 액자나 적기가(赤旗歌) 제창 같은 디테일들이 언론보도를 통하여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을 악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12일 이른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모임에 참석했던 통합진보당원인 김미라 성남 분당구 위원장, 백현종 부천 원미갑 위원장, 신정숙 중앙당 대의원, 정용준 안산 상록갑 사무국장, 최영희 고양 일산시 위원장이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월 12일 모임은 RO회합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이 소집한 정세교육과 토론 자리였고 RO라는 조직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으로 국정원이 지어냈다"며 "그날 모임이 무슨 '조직 회합'이었다는 국정원 주장은 터무니 없는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회견을 마친 이들이 홍성규 대변인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 궁지 몰린 진보당원, "RO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 지난 5월 12일 이른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 모임에 참석했던 통합진보당원인 김미라 성남 분당구 위원장, 백현종 부천 원미갑 위원장, 신정숙 중앙당 대의원, 정용준 안산 상록갑 사무국장, 최영희 고양 일산시 위원장이 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월 12일 모임은 RO회합이 아니라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이 소집한 정세교육과 토론 자리였고 RO라는 조직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으로 국정원이 지어냈다"며 "그날 모임이 무슨 '조직 회합'이었다는 국정원 주장은 터무니 없는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회견을 마친 이들이 홍성규 대변인과 함께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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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이 무시하고 있는 작은 사실관계부터 국민들의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해명하기 싫어도 공당이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법정에서의 입증 책임은 분명히 검찰과 국정원에 있지만 국민적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은 국회의원과 공당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석기 의원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1억4천만원 돈 다발도 해명하는 것이 옳다. 이 정도의 거금이 일반 가정집에 현금으로 보관되어 있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고, 장롱이 아니라 신발장에 한화와 함께 달러에 루블화까지 들어 있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보수언론은 이 돈의 출처를 북에서 온 공작금으로 보고 수사를 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이석기 의원 측은 전세보증금으로 돌려줄 돈이라고 해명하고 있는데 이 정도 전세보증금을 계좌이체가 아닌 현금으로 주는 경우도 드물고, 달러나 루블화로 준다는 것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어렵다. 이 돈의 출처나 성격을 증명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아 보인다. 전세보증금이라면 전세계약서나 등기부, 통장 사본이나 계약당사자의 서면확인서라도 공개하면 금방 풀리는 일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언론보도와 국정원의 피의사실 흘리기에 대해서는 당 차원의 강력한 문제 제기와 더불어 법적 대응도 필요하다. 이런 조그마한 사실 관계의 반박만으로도 국정원의 의도적 언론플레이는 어느 정도 무력화할 수 있다.

이정희 진보당 대표는 국정원 앞에서 열린 국정원 규탄 집회에서 "진보당은 사실의 힘을 믿고 왜곡된 여론재판을 헤쳐나가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이 카메라 앞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사실관계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해명해야 한다. 그것이 이 사건을 떠나 공당이 취해야 할 국민에 대한 올바른 자세다.


태그:#이석기, #내란죄, #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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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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