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집트를 떠난다. 역사책을 통해 수십 년간 품어왔던 수많은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걸렸던 시간은 2주. 그 마지막은 사막의 때를 씻어준 아름다운 홍해가 차지했지만 나는 어쩐지 사막 가운데 서있던 그 엄청난 신전들이 그리워졌다.
이집트의 서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지는 않지만 홍해를 끼고 마주한 요르단에는 바로 그 갈증을 풀어줄 또 하나의 고대 도시가 있다.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이기에 항구로 가는 미니버스에 오르는 발걸음은 마냥 가벼웠던 것 같다. 물론 정원을 한참 초과해 내리지도 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목적지를 지나치기 전까지는.
나와 마찬가지로 요르단으로 향하는 중국인을 만나 이제까지 서로의 여행에 대해 정신 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창 밖으로 바다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모르고 넋을 놓고 있었던 것. 결국 우리는 목적지를 지나쳤고, 몸뚱이만 한 짐을 든 채 어딘지도 모르는 휑한 곳에서 한참을 헤매느라 탈진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누웨이바(Nuweiba) 항구에 도착했다. 요르단 아카바로 가는 배 시간이 한참 뒤 오후인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이미 혼잡하기 짝이 없는 누웨이바 항구에 도착해서 표를 사려고 하는데,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쳤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서로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카바 티켓을 수없이 외쳤음에도 매표원은 고개를 저으며 "Wait! Wait!(기다려요, 기다려!)"라고 말했다.
바로 위에 붙어있는 시간표에는 분명 오후 2시라고 적혀있었지만 그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그래, 여기는 아직 이집트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밀려드는 불안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오후 2시 출발 예정이었던 페리는 4시가 돼서야 탑승 수속을 시작했고 요르단의 아카바(Akaba)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해가 진 오후 8시였다. 최종 목적지인 와디무사 마을의 숙소까지는 다시 버스를 타고 두어 시간을 가야 하지만 몇몇 여행자들과 뭉쳐서 승합택시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택시기사는 우리의 목적지를 묻는 대신 "발렌타인?"이라고 물었고 우리는 모두 고객을 끄덕였다.
"근데, 여기가 되게 유명한가봐?""하하. 이봐 친구. 물론 나는 요르단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 없지만 발렌타인은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일 걸?"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페트라를 보기 위해 전세계의 여행자가 찾는 이 작은 마을 와디무사는 '발렌타인 인'이라는 여행자 숙소로 매우 유명하다. 입맛에 맞는 음식과 합리적인 가격을 찾기 쉽지 않은 중동의 요르단에서 드물게 저녁을 뷔페식으로 제공하고 매일 저녁 페트라가 무대로 등장하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배>를 틀어 여행자들에게 예습을 시킨다. 내가 도착했을 때도 발렌타인 인의 거실에서는 인디아나 존스가 한창 재생 중이었지만 이 특별할 것 없는 숙소가 비슷비슷한 수십 개의 숙소 중에 유독 유명세를 치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1층의 한 켠에는 각 나라별 방명록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페트라 얘기 외에도 웬만한 한국의 막장드라마를 뛰어넘는 뒷얘기들이 난무했다. 비슷한 숙소가 많던 와디무사에서 저녁뷔페와 <인디아나 존스> 영화 상영으로 인기를 끈 건 사실이지만 예전 주인이 한 여자 여행객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고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큰 죗값을 치르지 않고 감옥에서 나온 뒤 지금의 여자주인이 이름을 바꿔 대신 운영하고 있다는 것.
그 외에도 숙소에서 제공하는 유료 서비스들을 이용하지 않으면 엄청난 모욕을 주고 불친절하게 군다는 갖가지 욕들이 가득 적혀 있는 그 방명록이 버젓이 숙소의 기념물처럼 남아있는 건 아마도 여주인이 한국어를 전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내막을 알고 난 뒤 같이 택시를 타고 온 독일 친구들에게 얘기를 했더니 그들은 짐짓 놀라며 뒷걸음을 쳤다.
"진짜? 그게 사실이야?""모르겠어. 풍문인 거 같기도 하지만 2007년도에 여기 왔던 사람이 썼던데? 그 뒤로도 악평이 가득해.""근데 발렌타인이 정신나간 여자같다는 악평은 독일 책에도 가득했어.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숙소의 뒷얘기에 놀라면서도 수년 째 그런 이야기들을 방명록을 통해 옮겨온 한국인에게 더 놀란 듯했다. 결국 발렌타인 인은 수많은 여행객이 주인인 발렌타인과 불화를 일으키고 기분이 상한 채 와디무사를 떠나기도 하고 혹은 뷔페 음식과 인디아나 존스를 보며 옛 추억에 빠지기도 하는 곳이지만, 이곳이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숙소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는 듯하다.
장미빛 신비의 도시, 페트라뭔가 찜찜한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기 때문인지 그리 편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났지만 오늘 하루 긴 일정이 예상되기에 서두르기로 했다. 간 밤에 냉동실에 넣어 놓은 1.5리터 물을 꺼내고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고 단단히 신발끈을 묵고 비장한 각오로 페트라로 가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가는 길은 여지 없는 사막이었다.
바로 그 사막 한 가운데에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서있는 대상 도시유적 페트라를 두고 영국의 시인 존 윌리엄 버건은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미빛 같은 붉은 도시'라고 노래했다. 그 외에도 세계 7대불가사의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이고 <BBC>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 중 16번째, 대통령보다는 사교계가 어울렸던 프랑스의 대통령 사르코지가 그렇게 좋아했다는 곳, 그리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배>와 <트랜스포머>의 무대가 되었던 곳 등 페트라의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다.
페트라는 단순히 유적지가 아니라 고대 나바테아인(Nabataean)이 교역을 위해 건설한 대상 도시로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이집트와 아라비아, 시리아와 페니키아 사이의 중요한 교차점으로 교역을 통해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이 고대 도시는 거대한 바위를 깎아서 만들어졌지만 지진과 홍수에 의해 침수되고 모래에 뒤덮여 1812년 첫 발견 때까지 그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고 하니 그 발견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우리 돈 9만 원에 달하는 제법 비싼 입장료를 내고 입구를 통과하니 크고 넓던 길이 점점 좁아지면서 말로만 듣던 좁은 협곡이 나타났다. 시크(As- Siq)라고 불리는 이 좁은 협곡은 지각 변동으로 거대한 바위가 갈라져 생겨난 길인데 이런 협곡에 도시로 향하는 길을 낸 것은 적으로부터 도시를 안전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2km 정도 되는 긴 협곡을 걷고 있으니 문득 어제 밤에 복습한 인디아나 존스의 장면이 떠오르면서 어디선가 '딴따단따~ 딴따다~ '하는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좁은 길이 깊어질수록 점점 어두워지면서 영화 속으로 빨려들 듯한 기분이 고조되고 협곡에 끝에 다다르자 좁은 바위 틈새로 눈부신 빛이 새어 나와 눈을 찡그리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존스 박사는 전설 속에만 등장하는 '성배'를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다가 서아시아의 오지, 이곳 페트라의 알 카즈나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성배를 찾는다. 바위틈 사이로 눈부신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알 카즈나는 실제로도 참으로 영화 같았다.
어둡고 굴곡진 협곡의 끝에 보일 듯 말 듯 오묘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알 카즈나는 마치 지금까지 걸어온 협곡이 무대의 장치가 아닌가 생각이 들만큼 크고 정교했다. 난 내 여행이 이 페트라의 발견과 함께 끝이 될 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 카메라 셔터를 마구마구 눌러댔다. 그리고 그날 나는 여행을 떠난 뒤 처음으로 앵글이 넓은 DSLR을 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높이 43m에 달하는 알 카즈나는 페트라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기둥을 세워 층층이 쌓아 올린 것이 아니고 거대 바위벽을 통째로 깎아서 만들어진 건물이다. 알 카즈나가 '보물창고'라는 뜻임을 감안하면 어쩌면 이 안에서 성배를 찾는 과정을 그린 <인디아나 존스>는 마냥 허구가 아닐지도 모른다. 거대한 벽을 깎아 만든 웅장하고 화려한 알 카즈나의 정면에는 몇 개의 둥근 기둥과 섬세한 조각 상들이 있는데 모두가 나바테안들의 신화와 죽음에 관련된 것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 보니 화려한 외벽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다. 마치 누군가가 몽땅 쓸어간 것처럼. 괜히 '보물창고'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 너머로 들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페트라 유적의 벽 여기저기에는 총탄자국이 많이 발견되었으니 나바티안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 알 카즈나 역시 도굴꾼 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내부는 텅 비었지만 알 카즈나 자체가 '보물'이니 어쩌면 창고는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페트라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등록된 것은 알 카즈나의 역할이 컷을 것이다. 1812년에 시리아를 여행 중이던 한 탐험가는 보물을 아랍인들 사이에서 보물을 숨긴 유적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아랍인으로 변장한 후 이 일대를 탐험한 끝에 이를 발견했다. 모래 속에 뒤덮여 있던 도시가 발견된 점도 드라마틱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거대한 도시 전체가 쌓아 올린 건물이 아니라 거대 바위를 깎아 만든 조각이라는 점이 가장 놀랍다. 이렇게 거대한 조각임에도 불구하고 장식은 세밀하고 정교하며 벽은 매끄럽고 모서리는 빈틈이 없다.
발길을 돌려 알 카즈나 양쪽의 언덕을 넘으니 본격적으로 고대 도시의 모습이 나타난다. 양쪽 협곡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나바테안 대로를 기준으로 오른쪽으로는 고대 나바테안의 무덤들이, 왼쪽으론 각종 시설물들이 나타난다. 페트라가 발견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이곳에 남아있던 소규모 베두인 족은 임시 주거지로 강제 이주했다고 한다.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은 기원전 7~2 세기까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시크를 지나면서 보았던 거대 벽의 파인 자국들은 바로 이 고대도시의 세라믹 수도관 자국이라고 하는데, 페트라를 단순한 신전이 아닌 첨단 도시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덤, 극장, 목욕탕 등 도시의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던 페트라는 106년 로마에 의해 멸망되고 그 후 지진과 홍수로 도시 전체가 흙에 묻혀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이 암벽에 구멍을 뚫고 살았던 그들과 달리 지금의 베두인들은 근처 텐트를 쳐 놓고 여전히 페트라와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페트라의 발굴과 문화재 등재 과정에서 많은 노동력을 제공했을 그들은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어쩐지 괜한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흥미진진한 인구 3만의 고대도시를 사막의 햇빛 아래에서 둘러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물이 겨우 정오 밖에 안돼서 절반이나 사라졌다. 슬슬 현기증까지 날 지경이라 시원한 음료라도 시킬 요량으로 한 켠에 천막을 치고 있는 상점을 찾았다. 준비해온 샌드위치를 한참 먹고 있으니, 요란스럽게 앞을 뛰어다니던 베두인 꼬마가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아프리카를 거치면서 그 모습이 어쩐지 익숙했던 나는 남아 있는 샌드위치를 건네주었고 꼬마는 환한 미소와 함께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우리가 진 빚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을까.
나바테안 대로를 지나치면 바위길을 타고 오르는 높은 언덕이 나타나는데 계단을 따라 오르면 신전 위에 직접 올라가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절벽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어디론가로 끝없이 이어진 것 같은 계단은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절망적으로 힘들었지만 중턱에서 잠시 뒤로 돌아보니 페트라를 둘러싼 바위들이 굽이 굽이 멋진 굴곡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아직 내가 가보지 못한 저 먼 곳까지 사람과 길이 이어져 있으니 이 도시가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왜 사람들이 2~3일에 걸쳐 페트라를 관람한다고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기어코 오른 꼭대기에는 또 다른 신전인 에드 데이르(Ed Deir) 사원과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표지판이 나를 반겼다.
'The View of End of the World'이곳이 세상의 끝은 아니겠지만 올라오는 동안은 세상의 끝을 맛볼 수 있으니까. 사원 앞의 절벽에 털썩 걸터앉아 바라보는 사막의 산들은 그야말로 '세상의 끝' 같은 모습이었다. 한 켠에서는 한 무리의 염소 떼를 몰고 가는 베두인족들이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관광지,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 오래 전 로마에 의해 영광의 시대가 끝나고 몰락한 나바테아인들의 역사가 지금의 베두인들에게도 재현되는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일몰을 바라보고 내려간다고 하지만 저 멀리까지 이어진 길을 가보고 싶었던 나는 일찌감치 일어나 내려갈 길을 생각했다. 다시 이 긴 계단을 내려가야 하나 싶어 고민을 하고 있으니 한 베두인 꼬마가 반대편으로 길이 있다며 손짓을 한다. 지름길 같아 보이긴 하지만 문제는 길이 아닌 바위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는 것. 절벽에서 바라봤던 페트라 깊숙한 곳을 가기 위해선 최대한 체력안배를 해야 된다는 생각이 내내 머리 속을 맴도는 가운데 암벽타기를 통해 조금씩 내려가는 바위 곳곳에 베두인 들의 동굴 집이 있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막상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발목을 통해 전해져오는 찌릿한 통증은 물론이고 땀으로 잔뜩 찌든 옷이 몸 여기저기 엉겨 붙어 엉망이 돼버렸다. 결국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길 끝에 닿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나바테안 대로에 들어서 아까 지나친 나바테안 왕국의 무덤을 끝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상태로 다시 알 카즈나와 시크를 지나 주차장까지 가는 것도 큰 일이다.
한편 뜻하지 않게 멀리서 보는 페트라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양쪽으로 높게 솟아있는 계곡과 그 아래 위치한 왕실 무덤들과 유적지들. 수많은 신화와 영화를 품고 있는 페트라지만 흠뻑 젖은 옷과 만신창이가 된 몸이 이것이 영화가 아니고 실제였음을 일깨운다. 페트라는 자연이 만들어낸 사막과 인간이 만들어낸 놀라운 도시의 환상적인 조합이다. 해가 지면서 태양 빛이 바뀌자 도시는 서서히 장밋빛으로 물들어간다. 여행을 하면서 모래바람이 얼마나 상쾌한지를 느낄 일이 또 있을까. 여행의 매력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지만 언젠가 다시 와야겠다. 이 곳 페트라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