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이 13일 사퇴했다. 앞서 1시간 전 법무부는 혼외자식 논란을 이유로 채 총장을 감찰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가 혼외자식 논란을 불러일으킨 지 딱 일주일만의 일이다.
표면적인 전후사정은 이렇다. 혼외자식 논란으로 공직자의 도덕성에 논란이 일었고, 이를 감찰하려 하자 공직자가 자진사퇴했다는 식이다. 마치 공직자가 자질부족으로 낙마한 듯한 인상이다. 여기까지만 보도한다면 반쪽짜리 보도다.
공직자의 혼외자식 논란은 전에도 있었다. 2009년 당시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단순 논란을 넘어 친자확인 소송에 패소했다. 혼외자식 여부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곧바로 야당과 시민사회의 사퇴요구가 빗발쳤다. 그러나 그는 2011년 5월까지 환경부 장관직에서 4대강 사업에 적극 협조하며 공직에 머물렀다.
결국 사상 초유의 "법무부 검찰총장 감찰지시"의 '다른 배경'이 핵심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있다. 6월 초 검찰 특별수사팀이 국정원 댓글 사건에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수사를 주장했다. 채 총장은 이에 동의했고, 황 장관은 반대했다. 결과적으로는 국정원 댓글사건에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고, 원 전 원장은 불구속 기소됐다.
일각에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기소가 야당의 장외투쟁을 가능케 했고, 청와대를 수세에 몰리게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정원 선거법 적용 갈등, 배후설일뿐?
이런 뒷 배경까지 심층보도한 것은 방송 3사 메인뉴스 중 SBS <8시뉴스> 뿐이었다.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도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 언급은 했지만 설명이 부족했다.
KBS는 이날 두 번째 꼭지로 "사상 초유 법무부 검찰총장 '감찰'…배경은?"을 배치했다. 기사에서는 채 총장의 혼외자식 논란이 "(해당) 학생의 학적부와 사진까지 나돌" 정도로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 조직이 술렁이면서 총장의 직무수행이 차질을 빚고 있었다"는 법무부의 판단도 덧붙였다.
<조선일보> 보도 직후 검찰 고위 간부들이 모여 대응을 논의했고, 채 총장이 정정보도 요구 등 강력대응에 나설 때도 검찰 내부 인사들과 협의를 거쳤다는 전날의 보도가 무색할 정도다.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법무부와 검찰의 견해차가 초유의 감찰 지시를 불렀다는 견해는 배후설로 일축했다.
다음으로 배치된 "검찰 조직 큰 충격…정치권 '사퇴 유감'" 기사에서 기자는 "총장 사퇴를 둘러싼 각종 배후설도 떠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가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온 이후 채 총장에 대한 반감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SBS가 "채동욱 총장 사퇴, '국정원 수사'가 촉발점"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반대했던 법무부와 찬성했던 검찰의 갈등을 상세히 보도한 것과 차이가 있다. SBS는 "채동욱 총장 163일 만에 낙마…검찰 '술렁'"에서 법무부가 검찰의 강한 거부에도 검찰총장의 감찰 소식을 일방적으로 언론에 알렸다는 점도 지적했다.
조선일보 보도는 당연한 검증?
MBC<뉴스데스크>의 관련보도는 더 편파적이다. MBC는 3번째 꼭지기사 "채동욱, 취임부터 사퇴까지… 법무부와 '국정원 댓글' 갈등"로 국정원 사건을 언급했다.
기자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양심상 도저히 선거법을 적용할 수 없다'며 선거 개입은 아니라는 입장을 피력했고, 채동욱 총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봐야한다'는 쪽에 섰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양심상 도저히"라는 황 장관의 주관적 견해를 앞쪽에서 강조해, 마치 그것이 법조인 다수의 견해인 것처럼 들린다. 같은 보도에서 기자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조선일보>의 혼외아들 의혹보도가 나오자,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당연한 검증이라는 조선일보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검찰 안팎에서는 법무부와 국정원과의 갈등으로 정부 내에서 총장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풍문이 떠도는 가운데 <조선일보>와의 일주일의 공방 끝에 연달아 4번째 임기를 채우지 못한 총장으로 기록됐습니다."①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 보도가 나왔다. ② 공직자의 도덕성에 대한 당연한 검증이다(조선일보의 주장). ③ 안팎에서 총장의 입지가 흔들린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④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나눠보면 결국 채 총장이 혼외아들 논란으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고, 이 때문에 사퇴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두 리포팅의 공통점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발언과 <조선일보>의 입장만 부각해 보도했다는 점이다. 여지없는 편파보도다. 그나마 스스로 '선거법 적용 불가', '인권침해든 뭐든 당연한 검증'이라 직접 주장하지 않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