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해본 사람만 안다. 보통 소설을 읽고 난 후에, 영화로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 있다. 그 책이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손아람 작가의 <소수의견>은 내게 그런 책이었다. 책을 읽은 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다. 내가 시나리오라도 써보고 싶다고. 이건 꼭 영화화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소수의견>이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혼자 신나다 못해 설레기까지 했다. 현재 <소수의견>은 윤계상·유해진·김옥빈 주연으로 촬영을 모두 끝냈다고 한다. 여러 언론에 따르면 후반 작업을 거친 후 개봉시기를 조율한다고 하는데, 아마 내년 상반기 개봉이 유력할 것 같다. 다른 역할은 몰라도 유해진이 연기하는 '대석'은 정말 기대가 된다.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비중은 아니지만 사이사이 웃음을 이끌어내는 윤활유 같은 인물이다.
개봉이 확실시된 지금, 한없이 기대만 되기보다는 우려도 있다. 영화가 소설을 얼마나 담아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단지 용산참사를 모티프로 했다는 사실만으로, 한 포털에서 개봉 전 평점이 바닥을 치고 있다. '빨갱이'라는 단어를 섞으며 다소 격한 반응을 보이는 댓글도 있다. 과한 반응이다. 그들은 소설을 읽기나 했을까.
사실 이미 작년에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개의 문>이 개봉했다. 아무래도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제작됐기에 좀 딱딱함이 없지 않았다. 물론 제작 목적에 충실하게 공권력의 탈을 쓴 국가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소설은 픽션의 묘미를 잘 살려냈다. 특히 법정싸움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전개와 현실세계에 있을 법한 부조리한 인간상에 대한 묘사는 일품이다.
소설은 한 변호사로부터 시작한다. 사회의 상위층에 포진하고 있는 법조인이지만, 그 법조인 내에서도 계층 피라미드는 존재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위 향판이라 불리는 정점에서부터 내려간 피라미드의 최하층에 위치한 변호사다.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나이가 어린 것도, 연수원 성적이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정의감에 불타는 소명의식을 가진 법조인도 아니다. 차라리 그래서 더 사실적 아니겠는가.
모두가 내 위에 있었다. 그 사이에서도 더 낮은 곳과 높은 곳이 있다면, 가장 높은 곳에는 원생 여섯 명당 한 명의 비율을 유지하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출신이 자리한다. 하지만 그들이 천장은 아니다. 예를 들어 수강생들이 지금 강의 중인 염만수 교수로부터 불과 10미터 뒤에 앉아 있지만 그의 코르덴바지 뒷주머니에 선명하게 수놓인 'Havard University'라는 고유명사로부터는 한평생을 뒤처졌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소수의견> 본문에서)시위 중인 철거민, 그들을 일방적으로 짓밟는 경찰. 여기까지는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소설은 경찰이 죽는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아버지의 부정(父情). 철거민들의 희생과 징악으로 사건을 전개시켰다면 소설은 평범함의 극치였을 것이다. 아버지를 지키기 위한 아들, 그 아들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 그리고 또 다른 희생자, 젊은 청년…. 모든 것들을 야기했지만 정당성 확보에만 골몰하는 국가.
스토리 전개에서 얻는 재미 외에도 한 등장인물을 읽는 재미도 있다. 바로 이주민이라는 등장인물이다. 그는 잘생긴 동안외모를 지닌 서울대 형법교수다.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실에 존재하는 이주민을 떠올릴 수 있다. 바로 조국 교수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혹시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걱정이 조금 있다. 한 번 만나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멋대로 이렇게 생각해도 될까. 하지만 이주민이라는 인물은 너무나 멋지게 그려지기 때문에 용서해주시리라 믿는다. 시위현장에서 전경들에게 일갈하는 그의 연설은 소설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통쾌하다.
그는 거리를 두고 연단을 마주하고 있는 의경 부대를 향해 법의 집행자들이 불법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법과 법의 정신을 이야기했고, 법이란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범주라고 말했다. 법의 정신을 훼손하는 어떤 명령도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단언했다. 여러분에게 권리가 있어요. 법보다 앞선 것이 법의 이름으로 부정당할 때 법을 실현하는 유일한 행동은 바로 불복종입니다.(<소수의견> 본문에서)앞서 언급했지만 소설은 법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고차원의 법리대결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의 수준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정도다. 딱 그 정도다. 심지어 감성적이기까지 하다. 증인으로 법정에 선 전경의 아버지를 매섭게 몰아붙이는 여검사의 등 뒤에 대고 자신의 아들이 살인자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아버지의 절규는 처절하다. 이 아버지 역할은 <도가니>의 교장, 장광이 맡았다. 개인적으로 꼽는 최고의 장면인데, 어떻게 살릴지 기대가 된다.
"피고인의 정당방위가 성립하려면 참고인의 아들이 위법행위를 했어야 합니다. 즉 참고인의 아들이 피고인의 아들을 위법하게 폭행해서 사망에 이르게 했을 경우에만 피고인의 정당방위가 성립한단 말이죠."(중략)김희택의 아버지는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검사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울먹이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제 아들이 그 아이를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만족합니까?(<소수의견> 본문에서)전반적으로 느슨한 전개의 소설이다. 긴박하고 치열한 구성을 보이는 소설보다는 틈을 보이며 읽는 이에게 생각하기를 권하는 쪽을 택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생각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실적인,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는 마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더라도 결코 소설 같은 이야기로 치부해버릴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참, 한 가지는 좀 생각해봐야겠다. 이주민이 시위현장에서 경찰에게 폭행당한 후의 장면. 만약 현실 세계에서 형법학 교수가 그의 '전공영토 치하에서 실무를 보는 경찰'에게 얻어 터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결코 이 소설에서처럼 일들이 흘러가지는 않을 것만 같다. 그러고 보면, 지금 사회는 소설보다 소설 같은 세상일까?
영화를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미리 소설을 읽어두시길.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들녘 펴냄, 2010.04,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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