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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전교조 관계자들이 '전교조 노동조합 설립취소에 대한 정부의 개입 중단'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말살 전교조 탄압 규탄 및 총력 투쟁 선포 전교조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참교육'이 적혀 있는 전교조 로고가 보인다.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전교조 관계자들이 '전교조 노동조합 설립취소에 대한 정부의 개입 중단'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말살 전교조 탄압 규탄 및 총력 투쟁 선포 전교조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참교육'이 적혀 있는 전교조 로고가 보인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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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과 고용노동부(아래 고용부) 사이에 전운이 짙어지고 있습니다. 23일, 고용부는 30여일의 유예 기간을 주면서 전교조가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조합 규약을 개정하여 해직자가 조합에 가입하거나 활동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라고 규약개정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고용부는 전교조가 이를 따르지 않으면 노동조합법에 따라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전교조는 합법노조에서 법외노조가 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전교조는 제가 가입해 있는 노동조합이기도 합니다. '전운(戰雲)'이라는 말이 상투적인 비유어로만 다가오지 않는 까닭입니다. 제가 있는 학교의 동료 조합원 중에는 벌써부터 조합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6만여명에 이르는 조직이 고작 9명(정부가 파악한 해직자 조합원 수) 때문에 법외노조가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토해내기도 합니다. 해직자가 9명이든 단 1명이든 노조가 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고당한 조합원을 지키는 건 상식일테니 이들 동료들의 걱정과 울분은 지극히 정당합니다.

그런데도 고용부는 전교조에게 일방적으로 '협박 통보'를 했습니다. 보수적인 박근혜 정권의 강경 노선을 단순한 엄포로만 보지 않는 분위기가 팽패한 이유입니다. 대통령 자신이 소위 '원칙'을 중시하는 분이시니 철저한 '법치주의'는 당연히 첫손에 꼽아야 할 통치 철학일 것입니다. 박 대통령께서는 앞으로 더 강하게 '법치주의'를 강조하면서 '법'과 '원칙'에 따른 '마이 웨이'를 외치실 것입니다. 그래야 최근에 주요 대선 공약을 철회하면서 훼손한 자신의 '원칙 정치인' 이미지를 복원할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도 무섭습니다. '공안' 이력으로 똘똘 뭉친 김기춘 비서실장과 황교안 법무장관 등 핵심 참모들의 면면은 날카롭기만 합니다. 김 실장은 1989년 서경원 의원 방북 사건 당시 '좌익 발본색원'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문제의 사건을 총지휘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청와대와 검찰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황교안 법무장관 역시 검사 재직 당시 공안 이외 업무는 거의 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대표적인 '공안 검사' 출신입니다. 

전교조는 지금 1999년의 합법화 이후 14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전교조 전북지부 군산지회의 지회장은 내부 통신망으로 보낸 한 메시지에 '전교조에 폭탄이 떨어졌다'는 말로 눈앞의 위기감을 토로했습니다. 지금 전교조 본부와 지부, 지회 등 각 조직 단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회의 앞에는 거의 예외 없이 '비상'이라는 말이 따라붙어 있습니다. '비상중집회의', '비상지부집행위상집위회' 등처럼 말입니다. 24일 오후 전교조 본부에서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총력 투쟁'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지금 전교조는 말만의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비상(非常)한 전쟁'은 무엇 때문에 벌어졌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법 때문입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르면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교원노조법에서도 해직 교원은 조합원이 될 수 없다고 적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해직 교원들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습니다. 사실 어떤 노조가 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고된 조합원을 내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법 이전에 도덕·윤리적으로도 맞지 않습니다.

해고자를 노조에서 배제하라니... 그건 시정잡배의 무리

반전교조 세력들은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교조가 초법·불법·탈법 단체가 아니니 법을 지키고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구슬립니다. 법을 위반하는 내부 규약을 버리지 않으면 법외노조는 당연하다느니 하며 불뚝성을 내기도 합니다. 위법 상태를 시정하지 않는 조직에게 무슨 '법적 혜택'을 주느냐며 고용부의 강경 드라이브를 부추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민주 법치 국가에서 법을 지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법도 법다워야 합니다. 법이 상식에 반하고 민주주의의 일반 원칙이나 국제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신중하게 따져봐야 할 일입니다. 해고자의 조합원 인정 여부는 노조의 자주적인 결정 권한입니다. 국내의 대다수 노동조합은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합니다. 프랑스와 독일, 일본, 미국 등 서구 선진국들의 교원노조는 해고자는 물론이고 학생, 퇴직자 등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놓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하의 국가인권위원회도 2010년에 일시적인 실업자와 해고자 등도 노조법상 '근로자' 범위에 포함시키고,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부정하는 노조법상의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문제가 되는 규약은 전교조 합법화 이후 14여년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역대 정부가 왜 그랬을까요.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근본적인 원칙들을 전혀 모른 체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사랑하는 이 나라의 보수들에게 지난 3월에 나온 국제노동기구(ILO)의 긴급 개입 사항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ILO는 긴급 개입 조치를 통해, 첫째로 대한민국 정부의 전교조 설립 등록 취소와 규약 개정 위협에 대한 즉각 중지를 요구했습니다. 둘째로 국제 노동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노동조합 관련 법령을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와 전문가위원회의 권고에 맞게 수정하도록 요구했습니다.

ILO가 이렇게 '긴급 개입'이라는 비상한 방식으로 끼어든 배경이 있습니다. 부당하게 해직된 조합원을 노조에서 배제하라는 명령은 노동자의 세 권리 중 맨 앞자리에 놓이는 단결권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가 '조합원 자격 제한 규정을 폐지하라'는, ILO 결사의자유위원회의 권고를 계속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ILO의 권고를 무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규약개정 시정명령이 전가의 보도처럼 말 안 듣는 노조를 길들이는데 효과적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규약개정 시정명령은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공무원노조, 건설노조, 운수노조 등을 옥죄는 수단이 되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들 노조는 이 지극히 '한국적인(?)'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우리는 해고가 곧 살인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20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쌍용차 사태를 들지 않아도 되겠지요. 이런 시대에 법의 이름으로 해고자를 조합에서 배제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그 어느 노조가 순순히 따르겠습니까. 그런 노조가 있다면 그것은 노조가 아니라 파렴치한 시정잡배의 무리일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반전교조 세력들은 전교조의 '위법적인' 규약을 시정하라는 정부의 명령이 적법하다는 게 대법원도 확인한 사실이라며 전교조를 을러댑니다. 전교조가 2010년에 정부의 규약개정 명령에 대한 취소청구 소송을 한 데 대하여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까지 기각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법치주의니 대법원의 판결이니 하면서 '법대로'를 외치는 이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법'이 만능이자 진실이며 민주주의 국가의 최후 보루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맹목적인 법치주의는 망나니가 휘두르는 칼일 뿐

1933년 1월 30일, 히틀러는 43세의 나이로 독일 총통 자리에 오릅니다. 히틀러는 취임 직후 일 주일이 지나기 전에 국회에서 '긴급명령'을 통과시킵니다. 히틀러는 이 '합법적인' 명령으로 공산당이 소유한 모든 빌딩과 출판사들을 몰수하고, 평화주의 단체들을 해산시킵니다.

취임 한 달이 되기 전인 2월 27일, 조작된 것으로 보이는 방화 사건이 국회에서 일어납니다. 이때 힌덴부르크(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제2대 대통령) 대통령을 방문하던 히틀러의 손에는 또 다른, 하지만 처음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긴급명령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 긴급명령에는 민족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모든 기본권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영장 없는 체포를 가능하게 한 보호구금(Protective Custody) 제도, 항구적인 비상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법치주의 포기 등의 내용도 실려 있었습니다. '법'의 이름으로 '법'을 부정하는 이 카오스적인 모순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히틀러가 긴급명령이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손에 쥔 이유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히틀러는 '합법적인' 법의 이름으로 독일 제국, 나아가 유럽 전역에서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등을 박멸하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600여 만 명의 유태인을 포함하여 최대 1100만 명에 달하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학살자가 증명합니다. 히틀러가 긴급명령이라는 '법'의 이름으로 공산당과 노동조합 등 반대 세력을 완전히 격퇴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3개월도 되지 않았습니다.

'고작' 2013년 대한민국의 민주 정부가 내린 규약개정 시정명령 하나를, '무려' 저 먼 야만적인 과거의 이국 땅에서 광기 어린 독재자 히틀러가 휘두른 무자비한 긴급명령에 빗대는 것이냐고 나무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법대로'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탄압의 사례는 대한민국에도 많습니다.

저는 '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법치주의'라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비극적인 파국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독재로 신음하던 박정희의 유신 시대와 전두환의 제5공화국 시기에 얼마나 맹목적인 '법치주의'가 판을 쳤는지 환기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법은 결코 만능이 아닙니다. 법의 이름으로 나오는 '유죄'와 '무죄'가 절대 불변의 진리인 것도 아닙니다. 법은 소위 법률 전문가라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의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대단히 유동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1심의 유죄가 2심에서는 무죄가 되고, 법률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해석에 따른 과거의 사형 판결이 현재의 또 다른 전문가들 손에서는 무고한 판결로 뒤바뀌기도 하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법치주의는 망나니가 휘두르는 칼일 뿐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정녕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역사 앞에서 '불법적인 법치주의'의 '죄'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교조#법외노조#규약개정 시정명령#고용노동부#박근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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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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