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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심도 있게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 실천하겠습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난 2012년 10월 30일. 박근혜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이 한 발언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정보방송통신(ICT)대연합회와 미래IT강국전국연합의 주최로 열린 초청 간담회에서 작심한 듯 정보통신 분야의 대선공약 카드를 제시했다. "공영방송 이사회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균형 있게 반영하고, 사장 선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선 후보가 꺼내든 공약 카드치곤 참으로 타이밍이 절묘했다. 이명박 정권 출범과 함께 시작된 끈질긴 방송장악 정책으로 방송사들마다 부작용과 후유증이 극심한 가운데 '한국 방송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정권'이란 평가가 각계에서 내려질 무렵이었다.

이명박 정부시절 방송사들은 4대강 사업 등 정부의 정책홍보와 여당후보 편들기 보도에 열을 올렸다. 방송의 공정성 사수와 정치적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최장 기간의 노조파업에도 여전히 공영 방송사들의 공공성과 공정성은 나락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그런데 "방송의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이루겠다"고 여당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들고 나섰으니 방송의 공정성과 정치적 독립을 열망하던 많은 국민들에겐 그야말로 극심한 가뭄 속의 단비보다 더 시원한 약속으로 들렸을 것이다.

KBS 노조, 방송독립 쟁취 내걸고 '총파업'

그러나 따지고 보면, MB정부의 기나긴 방송장악이 정권의 의지대로 잘 들어먹힌 이유는 간단하다. 그건 바로 친정부·여당 성향 인사들로 구성된 방송사 지배구조 때문이다. 권력의 방송장악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는 것을 집권여당 대선 후보가 모를 리 없었을 터다.

보수일색의 종합편성채널(종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양대 공영방송사인 KBS와 MBC가 MB정권 내내 '권력의 시녀' 또는 'MB씨'로 불릴 정도로 '정파성'의 수렁에 깊숙이 빠져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만신창이 된 데는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방송사 경영과 편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배구조 때문이란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그런데 이 모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듯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공약카드로 들고 나섰으니 많은 기대와 표심을 자극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탕발림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언론의 자유와 방송의 민주화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시원하게 개선할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공약을 내걸었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취임 7개월이 지나도록 묵묵부답이다.

방송의 공공성과 공정성, 정치적 독립을 주장하던 많은 방송인들이 거리로 내몰렸는가 하면 지금까지 무거운 해직의 멍에를 짊어지고 있고,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은 요원한 채 공정성 시비만 일으키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당선 이후 공약 이행에 대해 여전히 나 몰라라 외면하고 있다.

가뜩이나 KBS 노동조합이 지난 26일 '방송독립 쟁취와 임금투쟁 승리'를 내걸고 또 다시 총파업에 들어가는 등 KBS 새 노조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이행과 방송공정성특위의 활동을 촉구하는 전국언론노조의 투쟁에 참여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달 말 종료되는 '공전특위'... 한 일이 없다

게다가 박근혜표 대선 공약 중 그토록 많은 표심을 사로잡았던 '4대 중증질환 100% 지원'을 비롯한 '기초연금' 공약 파기와 '무상 보육' 공약파기를 보니,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던 공약마저 헌신짝처럼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도 그럴 것이 박근혜표 공약의 잇단 물거품 바람과 함께 지난 3월 간신히 여야 합의로 구성된 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방송공정성특위) 활동 시한이 이달 말로 종료되지만 이렇다 할 보완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대를 잔뜩 모아놓고 '공전특위'로 막을 내리게 된데 대한 실망과 불만이 이 때문에 고조되고 있다.

방송공정성특위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공청회'와 '방송의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에 관한 공청회'를 열며 공영방송의 위기를 바로 세워보려는 의지를 잠시 내비쳤지만 가시적인 성과 없이 시간만 소비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특히 새누리당 소속 위원들은 관련 공청회 때마다 대거 불참하는 등 방송의 공정성을 위한 법 개정 의지를 전혀 드러내지 않아 따가운 비판을 받아왔다.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 확보 운운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청와대나 당 수뇌부도 방관하기는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음을 드러낸 속셈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이 후보시절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공약과 '방송을 장악할 의도가 없다'는 대국민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기로 작심한 것이 아니라면 저렇게 무성의하게 임할 순 없다. 지난 정권 내내 집요하게 진행되었던 방송장악이 정권이 바뀐 지금까지도 유리하게 작용하니,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할 필요성을 더는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방송의 공정성과 제작의 자율성이 무참히 짓밟혀 지금도 고통 받고 있는 방송 종사자들, 그리고 이를 바라보아야 하는 편치 않은 국민들, 심지어 해직된 방송인들이 지금도 거리를 떠도는데 저토록 무심하게 바라만 보고 있단 말인가.

이런 상황에서 방송공정성특위가 출범과정에서부터 한계와 문제점들을 드러내 파행을 자초한 것은 당연한 귀결로 보여 진다. 더욱 얄미운 것은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워 '공전특위'를 이미 예고했다는 점이다.

방송공정성특위, 첫 단추부터 '잘못'

첫번째 단추인 특위활동 범위가 한시적 운영기간에 비해 너무 광범위하게 설정된 것부터 문제였다. 공영방송사들의 정권장악 기도를 막는다는 취지로 여야 동수로 구성된 방송공정성특위는 특위명칭에서도 잘 나타났듯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만 주력하도록 활동 범위를 신중히 제한했어야 했다.

그런데 무거운 짐을 제대로 풀지 못할 시간임에도 'SO(종합유선방송)-PP(보도전문채널)의 공정한 시장 점유를 위한 장치 마련'과 '방송의 제작·보도·편성 자율성 확보 방안'을 함께 묶어 풀어보려 했던 것이 오히려 화근을 자초한 양태다. 한 마리도 버거운 판에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다 모두 다 놓친 꼴이다.

"세 차례의 공청회 중 방송공정성특위 소속 여야 의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인원들이 함께 참여한 공청회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는 언론노조 산하 국회 방송공정성특위 모니터단의 보고서 내용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누구보다 앞장설 것으로 기대됐던 새누리당의 경우 출석률이 '최악'이었다고 한다. 9명의 특위 위원들 중 절반도 참석하지 않았거나 참석하더라도 잠깐 앉아있다 퇴장하는 일이 다반사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의지가 빈약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와중에 보수 종편의 '5·18 민주운동의 왜곡'과 방통위원장의 '종편 봐주기', 'KBS 수신료 인상 펌프질' 발언 등이 방송공정성특위의 공전을 도운 연막제로 작용했다. 공영방송의 왜곡된 지배구조 때문에 발생한 MBC 김재철사장 파문과 KBS를 중심으로 한 공영방송의 불공정 편파보도로 원성이 끊이지 않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은 것도 특위 공전을 도운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해고된 언론인들(18명)과 많은 징계 언론인들(449명)의 원상회복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특위가 형식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해 주었다.

방송공정성특위를 성과 없이 무기력하게 만든 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6개월간 한시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당초 계획이 무리였다는 것이다. 이 정도 기간으로 정권 차원의 방송장악 기도를 막을 수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방안 외에 SO-PP의 공정한 시장 점유를 위한 장치와 방송의 제작·보도·편성 자율성 확보 방안까지 동시에 마련하겠다고 장담했으니 결과적으로 성과를 내는 쪽보다는 형식을 갖추는데 급급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없이 민주주주의 회복 어렵다

그동안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놓고 유야무야된 특위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다가 정부와 여당의 입김에 끌려 다니다 결국 엉뚱한 결과를 낳은 뼈아픈 사례도 있다. 4년 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시 국회에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100일간 가동됐지만 무기력하게 휩쓸려 다니다가 결국 정부와 여당의 뜻대로 미디어법안이 날치기 통과되지 않았던가.

국내 언론계의 생태계를 파괴할 종편의 탄생이 뻔히 예고됐었지만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그런 정권의 묵인 하에 이뤄진 여당의 독선과 아집, 여기에 야당의 무기력까지 어우러진 총체적 부실정치에 한숨과 무력감을 토로할 날을 앞으로도 얼마나 더 겪어야할지 걱정이다.

청와대는 "미래부는 방송 공정성·중립성을 절대 훼손하지 않겠다"며 배수진을 치고 있지만 방송공정성특위를 무력화 시킨 여당은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은커녕 권력의 방송장악 수혜를 계속 누리겠다는 속셈을 드러냈다. 특위 종료 시한이 임박하자 그 때서야 부랴부랴 특위 연장에 대한 논의가 거론됐지만 6개월의 활동기간 동안 뚜렷한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특위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특위 위원장을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맡아오다 불과 한달만인 지난 5월 당 원내대표에 선출돼 겸임이 힘들어지게 되면서 위원장이 이상민 민주당 의원으로 교체되는 등 민주당 주도의 특위활동이어서 다소 기대를 모았지만, 결과는 실망 그 자체다. 여기에는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문제가 정치공방의 장으로 변질된 점도 특위가 성과를 못 낸 한 원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방송의 미래와 언론의 자유, 더 나아가 국가의 민주주의와 첨예하게 얽힌 과제다. 현행 공영방송사 지배구조로는 그 어떤 민주언론도, 공정방송도 기대하기 힘들다. MBC 지배주주인 방문진 구조가 여당 추천 이사 6명, 야당 추천 이사 3명으로 구성된 상황에서는 정부 또는 여당 뜻에 반하거나 비판적인 어떤 개혁적인 인물도 사장에 선임될 수 없다.

친여 성향 인물이 다수인 KBS 이사회도 마찬가지다. 11명의 이사들 중 무려 7명이 여당 추천 인사들로 구성돼 있는데다 KBS 이사 선임 및 관리·감독 권한까지 지니고 있는 방송통신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땅에 떨어진 공영방송 위상을 바로 세우기 어렵다. 쓰러져 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바로 세울 수 없는 것과도 등치한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권력의 시녀인 채로는 건강한 언론환경, 성숙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다.

아직 기회는 있다. 남은 며칠 동안이라도 공정방송을 보장하기 위한 합의를 여야가 이루면 가능할 수 있다. 누구보다 야당인 민주당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방송공정성 특위가 여야 동수인 데다 위원장을 민주당이 맡고 있는 만큼, '야당이 힘이 없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야 말로 야당의 정체성과 공영방송·민주언론 수호를 위한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민주당이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 하는 이유다.


#공영방송 지배구조#방송공정성특위#종편#방문진#KBS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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