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윽!...""왜 그래요?""목이, 목이 안돌아가, 어깨랑 등짝도 무지 아파!""에휴, 잠을 잘못 잤나보네요."아침에 한의원부터 가서 어깨와 목에 침을 맞고 왔다. 좁은 보조침대에서 자다보면 종종 어깨가 뭉치고 근육통이 심하게 와서 반복하는 일, 게다가 아침밥도 굶었다. 아내가 속이 안 좋다고 해서 밥상을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예민해지고 배고픈 짐승이 스트레스까지 받았으니 심한 말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다.
"이렇게 살기 싫어!"갑자기 튀어나온 말, 아내는 등을 돌렸다 그 말을 듣고 아내는 자기 때문이라 자책한다. 커튼을 조금 당겨 가리고 울먹거리며 아내는 내게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부부가 마주보고 누우면 그 사이가 불과 한 팔쯤의 거리지만, 등지고 돌아누우면 부부 사이의 거리가 아주 멀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지구 한 바퀴의 거리라고도 한다. 그 말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서로 앞쪽을 향해 거리를 재면 지구를 다 돌아야 비로소 만나니까.
이래저래 환자에게 한 말이 미안하기도 하고, 그냥 두면 또 종일 속을 태우고 분명 어디 한곳이 탈이 날거 같다. 그래서 돌려서 억지로 달랜다. 아쉬운 사람도 나, 미안한 사람도 나. 늘 그랬듯, 다시 말을 걸었다.
"난 니가 좋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목도 돌아가지 않고, 속은 쓰리고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어 불편하다. 또 길게 멀리까지 이러고 살 앞날을 상상하니 더 무거워진다. 5년 10년 뒤 달력까지 떠올려보니 그 긴 세월을 이런 식으로 어떻게 산담? 걱정된다. 무슨 재미, 무슨 희망으로.
간병인 보조침대가로 딱 세 뼘 / 토막침대에 몸을 누인다. / 옆으로 돌아눕다가 바닥에 쿵 / 다섯 해 결박된 인생처럼 떨어져 / 길이 160센티 보조 침상 / 누우면 발이 허공에 둥둥 / 갈 곳을 잃은 가장의 부러진 핸들처럼,자고나도 사막의길 / 눈 떠도 나쁜 꿈 깨지 않는 아침 /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가정 만세 / 아내여 파이팅 하시라 / 하나님도 부디 파이팅!(- 간병 며칠 째인지 세다가 놓친 어느 날 아침)바람피우지 못하는 남자아내의 병원 침대와 내가 눕는 낮은 보조침대는 한팔 거리쯤 떨어져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릴 때 문득 팔을 뻗어 아내의 침대로 손을 올려놓는다. 잠시 뒤 슬그머니 아내가 손을 올려놓는다. 서로 아무 말도 안했는데도...
이렇게 말없이도 마음을 알아주고 말없이도 다독여주는데 25년이 걸렸다. 이제 어떤 멋진 여인이 있다한들 과연 이 자리를 메꿀 수 있을까? 그래서 난 바람피울 엄두를 못 낸다. 다시 그러기까지 그 긴 세월을 견딜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아내가 떠나고 없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면 끔찍하다. 아프기만 하면 철렁 하고 검사만 다녀오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협심증환자처럼 숨쉬기가 뻑뻑해진다.
"깨는 꿈이 서러워...""여기도 바람 더 넣어줘요!""이건 너무 많아서 터지겠는데요?""뻥! 터졌다! ㅎㅎ""이크~ 깜짝이야!"간밤에는 꿈을 꾸었다. 소포를 보내기 위해 간 우체국에서 여직원과 예쁜 풍선들을 바람을 불어 넣었다. 그걸 손으로 누르고 묶고, 벽과 천장에 달면서 그러다 친해져서 장난도 하고 그랬다. 얼마 만에 남들과 크게 소리 내어 웃어보는 행복인지, 또 다른 어느 날은 배낭을 메고 낯선 거리를 걷다 깨어나고, 어느 날은 아이들과 음식점에서 맛있는 것을 먹다가 깨고, 또 어느 날은 열심히 일하다가 깨고.
그러나 잠이 깨면서 끝이 났다. 언제나 그렇듯 꿈에서 깨면 눈에 보이는 건 커튼으로 둘러싼 침대 하나와 그 위에 누운 아내, 병실이다. 변함없는 건 잠 깰 때 가장 먼저 느끼는 좁은 보조침대의 불편함. 아무리 길었던 꿈도 단지 하루 밤이고, 아무리 즐겁던 순간도 아침안개 같이 사라진다. 차라리 깨지 말고 꿈속에 머물고 싶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몰려온다.
'혹시 이 재미없는 현실이 꿈이 아닐까? 밤마다 진짜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그렇게 믿기엔 너무 생생하다. 이 현실이, 하여 대낮에도 사라지지 않는 꿈을 그리기로 했다. 아픈 아내가 나아져서 일어나 앉은 모습을 그리고, 아이들이 잘 견디고 좋은 어른이 되는 모습을 그린다. 어느 날엔가 훤한 대낮에도 사라지지 않고 현실로 눈앞에 있을 그 꿈 하나를!
병원에서 하는 살림살이
"병원보다 좋은 나들이, 소풍이 필요해"
"야~ 좋다!""엉엉, 살 것 같다. 진짜 눈물 날 것 같아 여보!""그래도 울지는 마, 소풍 나와서 울면 그렇잖아? 맛있는 거 사줄게, 뚝!"3일간의 국립암센터 출퇴근 주사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길을 돌았다. '자유로'를 따라 통일전망대와 임진각을 갔다 왔다. 한강의 전망이 참 좋다. 오랜만의 병원 바깥 나들이, 따뜻한 햇살과 계절을 따라 변한 창밖 거리 풍경을 보면서 아내가 좋아했다. 퉁퉁 붓고 시리고 아픈 통증을 몸에 품고 팔다리에 끌고 가는 길인데도.
통일전망대 주차장에서 닭꼬치 한 줄과 어묵 조금을 사서 차안에서 점심 겸 먹었다. 12년이나 된 오래 된 LPG 고물 승용차이지만 우리에겐 전세 항공기보다 값지고 아파트보다 좋은 꼭 필요한 보금자리임을 다시 느낀다. 우리 두 사람의 안락한 쉼터, 때론 울고 웃을 수 있는 마음 편한 공간으로,
이제는 집이 되어버린 재활병원으로 돌아오자마자 기다리는 건 온갖 살림살이 잔일들, 아침 일찍 서둘러 나가느라 미처 설거지도 못한 그릇들과 벗어 놓은 환자복, 아직 먹지 못한 약봉지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따로 끓인 누룽지 밥그릇, 과일 그릇 등이 예전 기억은 꿈도 꾸지 말라며 눈 부릅뜨고 나를 반긴다.
'아~ 옛날이여' 새삼 이 노래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온다. 아내가 아프기 전에는 나들이를 다녀오면 당연한 듯 나는 다리 쭉 뻗고 뒹굴어도 되었다. 세상 많은 남자들이 못되게도 그러듯, 그래도 아내는 내게 '운전하느라 힘들었으니 쉬어요!'라고 했었다. 그 말에 나는 의기양양하면서 쉬었다. 그때는 참 못나게도.
열심히 치우고 닦고 약 먹이고 나니 목욕을 시킬 시간, 혼자 할 수 있다면 뭔 힘이 들까만, 아내를 씻기고 땀으로 범벅이 된 나도 씻고 다시 침대로 돌아오니 그냥 녹초가 되어 쭉! 뻗는다. 더구나 삼일 동안이나 암센터를 오가고, 세 시간 가까이 앉아서 버틴 게 많이 고단했나보다.
예전에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고 자신 없는 게 뭐냐고 누가 물으면 음식 만들고 설거지 하는 것! 이라고 30초도 안 걸리고 대답했다. 오죽하면 지금의 나를 보면서 아내가 '당신 살림하는 주부 다되었네!' 라며 실실 웃을까? 내가 '이 놈의 일 끝도 없네!' 라고 하는 말을 바로 받아서!
"해도 해도 끝도 없고 표도 안 나는 살림, 이 살림을 20년이 넘도록 아내는 군소리 없이 해냈다. 오직 가족이라는 하나의 면죄부 뒤에 숨어서 우리는 모른 체 하고!"
어느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다. '선택이란 버림의 결과다!'라고,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무엇을 버리는 말과 다름없다는 것! 아내는 나를 선택하고, 이어서 우리 아이들을 선택했다. 자신의 편안함과 한가로움을 다 버리고, 그러니 아내는 마지막엔 행복하고 웃어야할 자격이 있다.
아무래도 그 보상을 해주어야할 사람 목록의 첫 번째에 내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애쓰고 노력한다. 때론 참고, 그런데 슬슬 공치사가 듣고 싶어진다. 아내는 안 그랬는데!
"여보, 부디 이 한마디만 해줘요! '당신 참 수고 많이 했고, 덕분에 행복했었어!' 라고..." 덧붙이는 글 | 2010년 2월 이후 재활병원과 주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던 시기의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