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규슈에는 규슈전력이 운영하는 원자력발전소가 2군데 있다. 사가현의 겐카이 원전과 가고시마의 센다이 원전이다. 겐카이 원전은 4기의 원전이 있고, 센다이에는 2기의 원전이 있다. '탈핵 아시아평화 일본서부지역 원전투어(이하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의 첫 번째 방문 예정지는 겐카이 원전.
후쿠오카에서 겐카이 원전까지의 거리는 50km 남짓.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거리다. 겐카이 원전 1호기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노후 원전으로, 만일 일본에서 다시 원전사고가 일어난다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꼽히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겐카이 원전 3호기는 MOX 연료를 사용하는 플루서멀이다. MOX 연료는 사용한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서 우라늄과 혼합한 연료다. 때문에 MOX 연료를 사용하는 원전은 그만큼 더 사고날 확률이 높아 위험하다는 것이 핵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 때문에 '겐카이 원발 플루서말 재판회'는 MOX 연료 사용 금지 소송을 포함해 겐카이 원전 4기 전부의 재가동을 반대하는 3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9월 30일 오후 1시 30분, 겐카이초 산업회관에서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은 겐카이 원전지역 주민들과 2시간여에 걸쳐 교류회를 가졌다. '탈핵 원전투어'에는 겐카이 원전 재가동반대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겐카이 원발 플루서말 재판회'의 이시마루 하츠미 대표와 오보 야스마사 사무국장이 함께 참가하고 있다.
교류회에 참가한 겐카이 원전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다. 이들은 겐카이 지역에 원전이 처음 들어선 1970년대부터 반대운동을 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원전반대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고, 겐카이에는 1997년까지 4기의 원전이 들어섰다. 현재 이들 원전은 전부 가동을 멈춘 상태이나, 규슈전력은 3호기와 4호기의 재가동을 신청한 상황이다.
사가현에 있는 겐카이는 현재 인구가 6천여 명 정도이며, 인구의 10%정도가 원전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 국가들이 연대를 해야 탈핵이 가능하다"교류회장에는 한국어로 쓴 '탈핵 원전투어' 한국 참가자들을 반기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겐카이 원전 지역의 주민들이 한글 현수막으로 한국 참가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한 것이다.
이 교류회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참가자 그리고 겐카이 원전 지역의 주민들은 한국의 원전과 일본 겐카이 원전 지역에 상황에 대해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교류회를 통해서 "한국과 일본 나아가서는 원전이 있는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이 연대를 해야 탈핵이 가능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최승구 NNAA-J(탈핵 아시아행동-일본) 사무국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 한국, 몽골, 대만을 방문하면서 시민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시민국제협력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원전 주변의 주민들의 연대도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탈핵 원전투어'를 계획했다"고 밝혔다.
겐카이 원전에서 13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는 한 겐카이 주민은 "겐카이 원전 반대운동의 역사는 40년이 된다"며 "원전을 유치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 1억8천만 엔의 비용이 들었는데 2천만 엔의 비리가 불거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40여 년 전에 겐카이 지역은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이었다. 외지로부터 사람들이 들어온 것은 결국 경제적인 이득을 볼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지역유지, 전력회사가 한통속이 돼서 (원전을) 추진했다. 돈으로 주민을 움직이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지역의 교직원인데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들이 중심이 돼서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지역 사람들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긴 기간 동안 반대 운동을 했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같은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우리들의 운동에 대한 반성을 많이 했다."이 주민은 "지역 주민의 10%가 원전에서 일하고 있고 지역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원전과 관계있는 일을 하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원전 반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처한 현실에 대해 설명했다.
"지역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원전 못 멈춰"
양재성 핵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났는데도 이러한 사건이 절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나라가 많다"며 "그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양 위원장은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엄청난 사태가 일어났는데도 원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른 나라도 해결할 수 없다"며 "원전은 기술 자체가 완전하지 않아 절대로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원전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겐카이 원전도 마찬가지다. 원전반대운동은 지역 주민들의 생각과 의식이 정말 중요하다. 겐카이 원전 지역주민 대표들과 만나게 된 것은 굉장히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한국과 일본이 국경을 넘어 원전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장영진 영광핵발전소안전성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영광은 원전부품 비리 문제 때문에 원전 6기 전부 전수검사를 할 예정"이라며 "영광은 지역에서 천주교, 원불교, 불교와 전교조, 농민회, 여성회 등 9개 단체가 '핵발전소 안전행동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고 그 힘을 바탕으로 영광군과 군의회를 설득해서 영광군민이 참여하는 범대책위원회를 구성해서 정부와 협상을 통해서 6호기의 안전성 검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장 위원장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원전은 절대로 멈출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시원 울진군의원은 "핵 폐기장을 건설하려고 할 때 입지조건이 있는데 첫 번째가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을 것, 두 번째가 인구가 적을 것 그리고 학력수준과 생활수준이 낮은 곳"이라며 "울진이 그런 입지조건에 맞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안전성과 상관없이 입지조건만 갖고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한국 사람들은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일본에 핵발전소가 많은 것은 핵발전소가 안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원전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백만분의 일이라고 자랑했던 일본에서 사고가 나면서 많은 사람들은 원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가 에너지 정책을 바꾸고 일본의 사례와 국제 연대를 통해서 핵발전소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삼척, 일본 서해안 지진 때 쓰나미 몰려와 2명 사망"이광우 삼척시의원은 "삼척은 1983년 5월 26일에 일본의 서해안 지진 때문에 쓰나미가 몰려와 당시 2명이 사망한 적이 있는 곳"이라며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고도, 삼척의 쓰나미를 경험하고도 삼척에 원전을 지으려고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핵발전소 문제는 가장 큰 민주주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작년 이맘때 삼척에서는 핵발전소를 유치하려고 했던 자치단체장을 주민소환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주민소환투표에는 삼척시, 한국수력원자력, 정부 등 국가기관이 개입해 폭력적으로 위협하면서 투표율이 25.9%가 나와 실패로 돌아갔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원전문제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원전을 없애는 것이 가장 이르다고 생각한다. 원전을 없애야 겐카이의 행복이 시작된다."김승홍 부산녹색연합 실무자는 "지금 부산에서 여론조사를 하면 고리 원전 1호기 폐쇄를 찬성하는 여론이 60%가 나온다"며 "그런데도 부산시는 굉장히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부산지역 환경단체와 지역주민들 사이는 굉장히 좋지 않다. 고리 지역에는 계속 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는데 신고리 5, 6호기 건설계획이 확정돼 공청회가 열렸다. 지역 시민단체에서 공청회에 참석해 (원전) 건설 계획을 저지하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저희들이 들어 가려고 했을 때 막아섰던 분들이 과거에 같이 고리원전 건설을 막았던 분들이었다. 그 때 저는 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무력감에 빠졌고, 그 상황에서 민주주의 운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렸는데 일본이든 한국이든 지역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정현걸 경주환경운동연합 원전·방폐장 특위위원장은 "경주 월성 원전 주변의 주민이고 반핵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조금 전에 원전 반대를 했더니 공산당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는데 저도 빨갱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공감을 나타냈다.
"월성 원전 가운데 1기가 수명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니까 유럽식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행하고 있다. 주민들이 볼 때 스트레스 테스트는 통과의례다.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주민들의 눈치를 보고 주민들을 포섭해서 연말쯤 수명연장을 밀어붙일 계획인 것 같다. 주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니 75%가 수명연장을 반대하고 있지만 설문조사와 다르게 속내는 보상금을 많이 주면 그냥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일부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한·일 주민들이 서로 연대해서 모든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
이대수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작년 10월에도 겐카이를 방문해 하루 숙박을 하면서 함께 교류회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3주 전에 인도를 방문했다. 인도에서도 한국에서처럼 원전을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지역이 있는데 원전 반대를 하면서 주민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다. 그들도 아시아에서의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아시아인으로서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한국, 일본, 대만, 인도, 말레이시아까지 아시아권에서 원자력발전소, 더 나아가 핵무기를 없애는 일을 함께 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겐카이에서 함께 만난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특히 지역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한다.""원전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아오키라고 자신을 밝힌 겐카이 주민은 "겐카이 원전에서 4km 떨어진 곳에 산다"며 "겐카이에는 원전 4기가 있는데 1호기가 40년이 지났는데 문제가 제일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원전을 재가동하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다. 원전가동과 관련해서 새 기준이 생겼는데 제일 큰 문제는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부끄럽다. 원전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날씨가 좋으면 나고야성에서 한국이 보인다. (한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만일 사고가 생기면 한국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원전 건설을 그만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한다."
또 다른 겐카이 주민은 "사가현의 지역신문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원전 재가동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며 "그 옆 지역인 가라쓰 시에서도 60% 이상이 재가동을 반대한다"고 설명했다. 겐카이와 가라쓰 주민들 25%만이 (원전 재가동을) 찬성하고 있다고 한다.
"원전은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면서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원전 노동자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아이들, 후손들을 생각해서 핵발전소를 더 이상 건설하면 안 된다."테라지마 시게히로씨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 반핵운동을 하게 된 사람들이 많다"며 "그 전에는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테라지마씨는 "일본에서는 지금 원전 재가동을 하려고 하고 있다"며 "각 지역에서 반핵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탈핵 원전투어' 한·일 참가자들은 겐카이 지역주민들의 안내로 교류회가 끝난 뒤에 겐카이 원전홍보관인 '겐카이 에너지 파크'에 들러 내부를 둘러보았다. 겐카이 원전홍보관에는 한국어로 된 안내책자가 비치되어 있어, 한국인들이 견학을 많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홍보관을 둘러본 정현걸 경주환경운동연합 원전·방폐장 특위위원장은 "엄청나게 홍보관 시설을 잘해 놨다"며 놀라움을 나타냈다.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지어진 거대한 '겐카이 에너지 파크'는 원전의 필요성과 에너지 생산 방식만 설명할 뿐 어디에도 원전의 위험을 경고하는 내용은 없었다. 겐카이 에너지 파크는 규슈전력이 겐카이 원전을 홍보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