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좀 독재를 해야합니다!""아멘, 아멘"연단에 선 김영진 원미동교회 원로목사가 '독재의 필요성'을 내뱉자 서울 강남구 나들목교회 대강당에 모인 이들이 "아멘"으로 답했다. 김 목사 뒤엔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이 인쇄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고, 앞엔 박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과 함께 무궁화 조화가 여러 송이 놓여 있었다.
박 전 대통령 사망 34주기(1979년 10월 26일)를 하루 앞둔 25일, 강남에 위치한 나들목교회에서 '제1회 박정희대통령 추모예배'가 열렸다. 오후 7시부터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이날 추모예배에는 500여 명(주최 측 추산)의 사람이 모였다.
대부분 중장년층이었다. 참석자들의 손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려진 주보와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썼다는 '신앙전력화' 휘호(박 전 대통령은 1976년 신앙전력화(信仰戰力化)라는 친필 휘호를 군부대마다 하달해 군종 목사를 통해 장병들의 신앙부흥에 공헌했다고 한다)가 인쇄된 고급 종이가 들려 있었다. 반면 성경책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이전까지 불교계에서 박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종교행사를 꾸준히 해왔지만 기독교계에서 이러한 추모예배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날 추모예배엔 스님 10여 명도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박정희 대통령 추모예배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박원영 나들목교회 목사는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처음으로 (박 전 대통령) 추모예배를 드린다"며 "박 전 대통령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삶과 정치사상을 추억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엔 박 전 대통령의 딸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도 참석했다. 나들목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진 박씨는 영정 사진과 가장 가까운 맨 앞자리에 앉았다. 박씨 옆엔 그의 남편인 신동욱 전 백석대 교수가 자리했다.
"조국 근대화 깃발 흔든 님의 손 보입니다"현재 국가기록원에 기록된 박 전 대통령의 공식 종교는 불교다. 하지만 위원회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을 "기독교인으로서 새롭게 평가한다"고 말했다. 박원영 목사는 "(박 전 대통령은) 어릴 적부터 구미의 상모교회 주일학교에 출석해 신앙생활을 했으며 복음을 전파하는 데 공헌했다"며 설교를 시작했다. 그는 20분 가까이 설교를 하며 박 전 대통령을 추켜세웠다.
이날 추모예배는 예배라기 보다 박 전 대통령을 '칭송'하기 위한 자리에 가까웠다. 묵상기도를 시작으로 성경봉독과 설교까지 30분이 채 안 걸렸다. 이후 일정은 '박정희 대통령님의 한국교회발전 공헌업적소개', 추모헌시, 5명의 추모사, 박근령씨의 인사말 등으로 채워졌다. 묵상기도 이후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기도 했고, 마지막엔 박 전 대통령이 작사·작곡했다는 '나의 조국'이란 노래를 합창하기도 했다.
"폐허가 된 조국, 자원·자본·기술도 없었던 조국에 근대화 깃발 흔든 님(박 전 대통령 지칭)의 손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세우려던, 멋진 대한민국을 물려주려던 님의 심장의 고동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 유재관 성광침례교회 목사의 추모헌시"돌이켜보건대 가장 가난했던 국가의 대통령으로 취임해 새마을운동을 펼쳐 암담했던 농촌을 일깨우고 농공이 함께 발전하는 데 노력을 하셨습니다. 농촌의 꼬불꼬불한 농지를 보신 후 바둑판 같은 농지정리의 필요성을 아시고 식량생산 7개년 계획을…." - 정진웅 미소금융부산 대표의 추모사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격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성보경 21세기선진포럼 총재는 "위대한 대통령 박정희가 간지 어언 34년, 정말 아깝고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고 각하(박 전 대통령 지칭)가 생각했던 나라가 돼 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한배 광은교회 목사도 "박 전 대통령은 국민에게 희망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긍정적 사고를 심어줬다"며 "박 전 대통령의 딸이 그 정신을 이어받아 대통령이 됐으니 희망을 주는 지도자, 국민들에게 뭐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령 "아버지 다시 평가해 줘 감사"
이날 추모예배에 참석한 박근령씨는 연단에 올라 "아버지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주고, 조명해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린다. 매우 감격 어린 날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씨는 "박근혜 대통령 5년의 국정이 아버지가 살아생전 다 못한 부분을 이어서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자리를 여러분이 만들어 주셨다"며 허리를 숙였다.
박씨는 추모예배가 끝난 이후 취재진의 질문에 "잘 써주세요"라며 웃으며 답변을 하기도 했다. 취재진이 "박근혜 대통령이 이 추모예배가 열린 것을 알고 있나"라고 묻자 박씨는 "알고 계세요. 좋아하실 거라고 전해 들었어요"라고 대답했다.
추모예배 말미, 참석자들은 박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 앞에 무궁화 조화를 헌화하기도 했다. 박근령씨를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헌화에 참여했다. 꽃을 놓은 후 긴 시간 묵념을 한 참가자도 있었고, "위대한 대통령님 감사합니다"라고 영정사진 앞에서 외치는 이도 있었다.
자신을 종교인이 아니라고 소개한 강아무개씨(서울 강남구)는 "헌화를 하며 마음이 울컥했다"며 "어려운 나라를 이렇게 잘 살게 해준 대통령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강씨는 "노력, 성실, 근면이 몸에 배어 있는 게 박 전 대통령"이라며 "박근혜 대통령도 그걸 그대로 이어받아 국정을 잘 이끌어 나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배에 참석한 홍아무개씨(경기도 평택, 50대)는 "어렸을 적 생각해보면 박 전 대통령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며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 안 되면 어쩌나'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홍씨도 앞서 김영진 목사와 비슷하게 박 전 대통령의 독재를 정당화했다. 기자가 "박 전 대통령이 독재를 한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묻자 홍씨는 "우리나라는 박 전 대통령 같은 사람의 독재가 좀 필요했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기자에게 "그 자리에 가면 다 그렇게 되지 않겠어요?"라고 되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