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 아이가 "까악! 아빠! 나, 합격했어!" 눈물을 흘리며 학교 홈페이지 모니터에 '합격을 축하합니다'라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나도 눈물이 났다. 딸 아이가 1년 동안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 뒤 둘째도 같은 함성을 질렀다. 이제, 막내 하나만 남았다. 주위에서는 재수하지 않고, 대학에 척척 붙으니 좋겠다며, 그 비결을 알려달라고 했다. 조금은 밉상스런 말일지 모르겠지만, 비결은 없었다. 그냥, 아이들을 믿어주었을 뿐이다. 더 밉상스러운 말을 하자면, "공부 그만하고 잠자라"가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이다.
아이들은 나의 말을 늘 의심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세상 근심 다 걸머진 듯 살 거면서'가 아이들의 생각이었다. 아이들의 참고서를 간혹 보면서 투덜거린다. "세상에, 이런 것을 배운단 말이야? 이 어려운 것을? 살면서 쓸데도 없는 것들을?" 하면서 제도교육의 허구성을 마구 설파하면 아이들은 조금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저렇게 제도교육에 대해 불신하는 아버진데 설마 떨어진다고 뭐라 하진 않겠지?' 하는 생각도 한편에는 있었단다.
아무튼, 그렇게 위로 두 딸이 대학시험에 합격하였으므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 당시 막내가 중1이었으니까, 아직도 많이 남았고, 혹시라도 입시제도 확 바뀌어서 원하는 사람은 모두 원하는 대학에서 받아주는 제도가 도입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도 품어보았다.
그런데 2년 전,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를 큰딸에게서 들었다. 대학 2학년을 마친 딸이 휴학하고 1년 만 공부를 더 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소위 '명문대' 군에 속하는 학교에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편입보다는 차라리 시험을 보는 편이 나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래, 그까짓 거 해 보자. 그런데 아빠보다는 네가 고생이 심할 텐데.""아빠, 고마워, 4학기 등록금 그거 내가 다 갚아줄게."딸아이는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책상에만 앉아있었다. 나가는 시간도 아낀다고 필요한 책들은 모두 인터넷으로 구매하였다. 특별히 외출할 때는 군에 입대한 남자친구가 휴가를 나올 때뿐이었다. 남자친구는 소위 '명문대'에 다니는 친구였다.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놈이 여자친구 잡아 두려고 꼬드긴 것이구나!'
그러나 사랑의 힘만으로 이 나라에서 대학입시공부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북하면, 가장 돌아가기 싫은 시절이 고3 시절(수험생)이라고 하겠는가? 아무튼, 큰딸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 합격증을 받았다. 그 '아무튼'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말 못할 사연들과 수험생으로서의 고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설렁설렁 공부에 대해서 관대한 집안임에도 어떤 결과가 나왔느냐까지 무심할 수 없는 집안이었으므로.
큰딸은 다시 1년을 공부하면서 대학에 다닐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 나이가 되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빠와의 관계도 얼마나 살가워졌는지 모른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여전히 나도 나의 입장을 아이들에게 투영했던 것 같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일, 아이가 가고 싶은 대학을 선택하게 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대리자로 아이들을 희생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큰딸의 소중한 인생, 2년을 잡아먹었는지도 모르겠다.
30여년 전, 내가 대학합격증을 받았을 때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 같았다. 그러나 80년대 초반의 시대 상황은 대학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삶을 강요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딸들의 대학생활을 보면 시샘이 나기도 한다.
하소연처럼 '공부만 해도 되니 얼마나 좋니?' 하면, 뭔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라고 반문한다. 그래도 그때는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하기 쉬웠지 않았냐고 한다. 그때는 대학등록금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 가능했으니 좋은 시절이 아니었냐고 한다. 나는 궁색하게 그때는 그때대로, 지금은 지금 대로, 청춘이니까 좋은 것 아니냐고 한다.
나도 작년에 늦깎이 공부를 시작할 뻔했다. 학위를 위한 공부는 다시는 하지 않겠다던 다짐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놈의 '박사학위'라는 것이 발목을 잡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흔들렸었다. 결국,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공부를 시작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도 없었다. 학위와 관계없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 된다고 위로하며 관심 분야의 전문서적을 한아름 사서 책상에 올려두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대학'이라는 관문이 통과제의적인 것이 되어있다. 어찌 되었든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무엇이든 이룰 생각을 하지 말라고 횡포를 부린다. 그 와중에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도 추억이 되어버렸다. 돈이 없으면 대학도 못 가는 시대, 대학에 못 가면 온갖 불합리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시대, 대학을 졸업해도 든든한 줄이 없으면 취업도 하기 어려운 시대, 그런 시대임에도 우리는 여전히 대학에 목을 매고 살아간다. 마치 대학이 무슨 알라딘의 '마술 램프'라도 되는 것처럼. 그 주술에 걸려버린 대한민국, 거기에서 수험생도 가족들도 행복할 수가 없다.
또다시 입시의 계절이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을까? 다양한 인격체들이 획일화된 시험문제를 풀고, 거기에 합격한 이들만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환상을 심어준 입시제도는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그렇게 비인간적임에도 우리가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욕심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입시가 뭐길래?' 대한민국에서 입시란, 자신의 꿈을 난도질당할 수 있는 칼날이다. 그 망나니 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너무 가까이에서 바라보다 제 목이 베일 수 있는 형틀이다. 그 형틀을 위태위태 통과한 이들은 이젠 시퍼런 작두 날에서 무당처럼 뛰길 강요당한다. 이런 난장의 굿판에 빠져들지 말고, 보기만 해도 좋은 청춘을 만끽하며 자기 안에 들어 있는 끼를 마음껏 발산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 이것도 허황한 꿈일까?
입시에 목매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으면 답은 뜻밖에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까 싶다. 만일 목을 매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든다면,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공부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자. 어차피 공부는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지, 몇 등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당락에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안다면, 이 세상은 당락에만 관심이 있다 한들, 자신에게는 떳떳하지 않겠는가? 그런 뚝심으로 살아가면 못할 일은 또 무엇이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 '입시가 뭐길래' 공모 응모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