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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길들이면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라는 여우의 말처럼 히말라야와 한 번 관계를 맺게 되면 히말라야를 모르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여우가 밀밭에서 '어린왕자'를 떠올리듯, '설산','히말라야'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며 그 길을 걷는 상상을 하게 될 것이다.

히말라야를 찾는 사람들은 '클라이머'와 '트래커'로 구분할 수 있다. 클라이머는 6000미터 이상의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이고, 트래커는 히말라야 산기슭을 걸으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을 접하며 산을 걷는 사람들이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의 시작과 끝, 포카라

네팔에는 대표적인 3대 트래킹 지역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를 품고 있는 '쿰부 히말라야', 네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랑탕 히말라야' 그리고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히말라야'이다. 이 중에서도 많은 트래커들의 사랑을 받는 곳은 다양한 코스, 풍요로운 다랑이 논 정경, 황량한 티베트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안나푸르나이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은 세 종류로 나뉜다. 해발 4130m에 위치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걷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Annapurna Base Camp) 트래킹', 안나푸르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푼힐 트래킹', 마지막으로 2~3주간 안나푸르나의 5개 봉우리 둘레를 걷는 '안나푸르나 라운딩'이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의 시작과 끝은 설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포카라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진 포카라는 히말라야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페와 호수와 그 호수에 비친 안나푸르나의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설산을 품고있는 포카라 페와호수
▲ 페와 호수 설산을 품고있는 포카라 페와호수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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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커들은 포카라에서 트래킹 준비를 하여 안나푸르나로 떠나고 트래킹이 끝나면 회귀하는 연어처럼 포카라로 돌아온다. 포카라는 '호수'라는 뜻의 네팔어 '포카리'에서 유래된 곳이다.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과 트래커들은 휴식과 트레킹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연중 온화한 기후, 안락한 숙소 그리고 페와호수에서 바라보는 설산 모습은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트래커들은 페와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호숫가 찻집에서 휴식을 즐기고, 사랑곳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트레킹 후의 여운을 달랜다.

산과 삶이 다르지 않은 곳

안나푸르나 트래킹에서 해발 3000m까지는 마을과 주민들의 삶이 펼쳐져 있다. 밭을 갈고, 나무를 하고, 감자를 심는 삶의 모습이 산과 분리되지 않고 어우러져 있다. 마을 주민과 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걷는 우리의 모습 또한 풍경의 일부분이 아닐까.

트래커의 쉼터인 로지는 전망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자리한다. 로지에서 달밧(네팔 전통 음식)을 주문하자 샤우니(안주인)는 느릿느릿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바구니를 들고 요리에 사용할 채소를 뜯기 위해 텃밭으로 나간다. 트레커는 등산화를 벗고 휴식을 취하거나, 마을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로지 앞 공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 아이들 로지 앞 공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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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에 길들여진 우리는 히말라야의 느릿느릿한 템포에 적응하기 힘들지만 재촉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짧은 시간에 고도를 높이게 되면 자신의 몸이 외부 기압에 적응하지 못해 고산병이 찾아올 수 있다. 고산병에 걸리면 가던 길을 멈추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만 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 인생에서 '천천히'는 낙오를 의미하지만 히말라야에서는 순리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함

이번 트래킹은 푼힐을 거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여정으로 10일을 예상하고 있다. 나야풀에서 시작한 트레킹은 푼힐을 거쳐 타다파니, 촘롱,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를 지나 해발 4130미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서 마무리 된다.

안나푸르나에서는 일상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모든 것이 소중해진다. 차 한 잔, 컵라면 한 개, 따뜻한 방 등 평소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사소한 것들이 히말라야에서는 감동과 감사로 다가오는 것이다.

허술한 로지는 난방이 되지 않으며 희미하게 방을 밝히는 전기도 밤 열 시가 되면 꺼져버린다. 잠들지 못한 밤, 몇 번이고 헤드 랜턴으로 시계를 보지만, 새벽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세상에 두고 온 인연들이 생각나며 원수까지도 그리워지는 곳이 안나푸르나이다.

세상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가지고는 산을 오를 수 없다. 그동안 쌓아온 욕심을 비움으로써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한 여정인 까닭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걸어야 안나푸르나의 장엄한 설산과 순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올 것이니.

신들의 인사, "나마스테"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의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이 푼힐 전망대다. 안나푸르나에서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포카라에서 3일 정도 걸어서 다다를 수 있다.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해발 2800m의 고라파니에서 새벽에 출발해 1시간 가량 산을 오른다. 푼힐 전망대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추위와 싸우며 일출을 기다린다. 털모자를 눌러 쓰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누구 하나 웃거나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 진지한 모습은 사뭇 장엄하기까지 하다.

고라파니에서 본 안나푸르나
▲ 안나푸르나 모습 고라파니에서 본 안나푸르나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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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동쪽 하늘에서 조그만 불덩이 하나가 고개를 내밀면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태양이 빛을 발하자 마차푸차레,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등 수많은 봉우리가 깨어나고, 빛은 계곡 아래로 흘러내려와 세상을 환희로 물들인다.

푼힐 전망대에서 내려와 푼힐 전망대를 내려와 3일 동안, 일몰이 아름다운 타다파니, 안나푸르나에서 가장 큰 마을 촘롱을 거쳐 해발 3700미터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부터 4130m 고지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금방이면 닿을 듯하지만, 거리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눈앞에 선연히 보이지만 지치고 무거워진 발걸음은 같은 곳만 맴돌 뿐이다.

고개를 들면 눈 덮인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병풍처럼 버티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만년설의 수려한 풍광이 수만 년 전 멈춘 시간 속으로 발걸음을 빨아들인다. 트래킹을 시작한 곳은 세인포티아 꽃이 만개한 봄이었는데 이곳은 자국눈 내리는 겨울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앞두고...
▲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가는 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앞두고...
ⓒ 신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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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자신의 발자국 소리만 들으며 묵묵히 걷는다. 장엄한 설산 아래 가이드가 손짓으로 안나푸르나의 도착을 알리는 순간에도 트래커들은 침묵한다. 그 고요함 속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나마스테."

나마스테는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인사드립니다"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말이기에.

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에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했습니다.



태그:#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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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자발적 백수가 됨. 남은 인생은 길 위에서 살기로 결심하였지만 실행 여부는 지켜 보아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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