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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동 나 아침 해돋이
입동 나 아침 해돋이 ⓒ 최오균

가을비가 내린 후 아침은 춥다. 앞산에 떠오르는 태양마저 춥게 느껴진다. 가을이 잊혀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벌써 입동이다. 바야흐로 찬 서리가 내리고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 오늘(7일)따라 바람도 세차다. 가을이 오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벌써 뜰 앞에 서 있는 느티나무 낙엽이 하나 둘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 긴 겨울이 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입동이 되면, 농가에서는 겨울을 앞두고 한해의 농사를 마무리한다. 이제 우리 집 텃밭도 가을걷이를 다 끝내고 배추와 무, 총각무, 쪽파, 갓, 당근, 생강만 남아 있다. 모두 김장재료다.

다음 주부터 날씨가 더 추워진다고 한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강원도 연천은 당장 내일 아침 기온이 영하일 거란다. 연천은 철원과 인접하고 있어 거의 철원 기후와 비슷하다. 그래서 추워지기 전인 입동날 김장을 담그기로 했다. 배추는 영하 8도까지, 무는 0도까지 노지에서 견딘다고는 하지만, 다음 주에 여행계획도 잡혀 있어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김장을 끝내기로 했다.

 김장을 기다리고 있는 배추
김장을 기다리고 있는 배추 ⓒ 최오균

김장을 함께 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 친구 응규 부부, 아내의 친구 J여사, S여사가 아침 일찍 도착했다.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올해는 텃밭에 250여 포기의 배추를 심었는데 작년보다 세 배 이상 되는 것 같았다. 어차피 김장은 힘든 작업이니, 네 집이 함께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완전무장을 하고 오셨네요."
"그럼요. 김장을 담그려면 이 정도는 준비를 해야지요."
"우린 김장담그기 여행을 왔어요!"

태어나서 김장을 처음 해본다는 J와 P여사는 몸뻬를 입은 채 의기양양하게 차에서 내렸다. 칼과 도마까지 가져왔다. 응규 부부는 새우젓, 찹쌀, 새우, 굴, 고춧가루 등 김장재료 일체를 싣고 왔다. 소금은 지난주에 전남 진도가 고향인 친구가 한 포대 보내왔고, 새우젓은 부안 곰소 젓갈을 주문하여 택배로 이미 받아 놓았다. 고추는 지난 달 지리산 여행을 갔을 때 구례 혜경이 엄마네 집에서 20근을 사 두었다.

땅을 파고 김장을 저장할 김치독을 다섯 개나(배추김치 2개, 동치미 1개, 총각무김치 1개, 생배추 저장용 1개) 이미 묻어 두었다. 작년보다 땅을 더 깊이 파고 눈을 방지하기 위해 천막도 쳤다. 나무 서까래를 이용하여 인디언 집처럼 천막을 치고 그 위에 억새로 마름을 엮어 둘러쳤다.

 김치저장용 천막집. 땅 속에 항아리를 묻어 저온냉장고 역할을 한다
김치저장용 천막집. 땅 속에 항아리를 묻어 저온냉장고 역할을 한다 ⓒ 최오균

"와아~ 천막집 하나 끝내주네요!"
"사람이 들어가 잠을 자도 되겠네요."
"이래봬도 집이 한 채랍니다. 하하."

천막을 짓는 작업은 지난 주에 응규와 함께 했는데, 엉성하지만 꽤 멋진 천막집이 탄생했다. 천막 안쪽 벽은 비닐로 한 번 두르고, 겉은 억새마름을 엮어서 둘러치고 새끼를 꼬아서 단단하게 감아 고정했다. 바닥에는 흙이 붙지 않도록 솔잎을 따다가 깔았다.

 천막 바닥에 솔잎을 깔아 두어 솔잎향기가 난다
천막 바닥에 솔잎을 깔아 두어 솔잎향기가 난다 ⓒ 최오균

"흠흠, 솔잎 냄새 하나 죽여주네요!"
"아마 피톤치드가 펑펑 쏟아지는 천연 김치저장고는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을 걸."

새끼까지 꼬아가며 천막을 치는 데 마치 서바이벌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몽골 여행 할 때에 순록을 몰고 다니는 유목민들이 천막을 치는 방법을 유심히 봐 둔 적이 있었다. 그들은 긴 나무로 먼저 삼각대를 만들고 기둥을 세워 순식간에 이동식 집을 지었다.

마치 인디언들의 집인 티피(Tepee)와 비슷한 천막집이 지어졌다. 아무튼 이만하면 훌륭한 천연김치 저장고다. 이제 텃밭에 있는 배추와 무를 뽑아 김장을 담그기만 하면 된다. 아내, J와 S여사, 응규 부인이 한손에 칼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광주리를 끼고 용감하게 텃밭으로 진군했다. 그 모습이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김치부대 같았다.

"하하, 여장군님들 잘들 해보세요."
"호호, 여부가 있나요."
"그럼 지금부터 배추 캐기를 시작합시다."
"오케이~"

 배추를 캐내기 시작하는 김장부대(?)
배추를 캐내기 시작하는 김장부대(?) ⓒ 최오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사실 가정주부들에게 김장은 1년 중에 가장 힘들고 골치 아픈 큰 행사다. 그런데 J여사는 작년까지 친정 어머니가 담가준 김치를 먹어왔고, S여사는 마트에서 사 먹었다고 한다. 그러니 김장을 담그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들이다. 김장을 하는데 고춧가루와 소금 등 양념이 이 얼마나 들어가는 줄도 몰랐다. 양념은 아내가 다 주문해서 마련했다.

"자, 이렇게 배추 뿌리를 칼로 자르고 노랗게 변한 겉잎은 뜯어내어 이랑에 놓아두세요. 배추에 흙이 묻지 않도록 잘 털어 주셔야 합니다."

 배추캐기
배추캐기 ⓒ 최오균

농사일에 베테랑인 응규가 시범을 보여주자, 배추를 처음 잘라보는 J여사가 "저도 TV에서 보았어요, 요렇게 배추 폭을 젖혀서 칼로 베어내던데요"라며 배추 한 포기를 베어냈다.

"네, 바로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응규와 나는 잘린 배추 폭을 광주리에 담아서 수도가로 옮겼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일이란 이렇게 손발이 맞으면 피곤한 줄 모르는 것이다.

"엄마야, 나 몰라!"
"아니 뭔 일이지요?"
"벌레, 벌레가 손에 잡혔어요."

J여사가 배추를 베다가 질겁하며 도망을 쳤다.

"벌레 먹은 배추가 진짜 무공해 배추랍니다."
"그런 줄은 알지만 손에서 뭔가 물컹하게 잡혀서 보니, 나 몰라!"

그렇게 250여 포기의 배추를 순식간에 벴다. 사실 난 배추에 많은 정성을 들였다. 해땅물자연농장에서 농사 실습을 받으며 파종에서부터, 육묘, 이식, 정식을 거쳐 물을 주고 벌레를 잡고… 모든 작업을 내 손으로 하고 정성을 들여 키운 배추다.

그런데다가 정식을 하고 난 지 일주일 만에 절반은 고라니가 먹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할 수 없이 모종을 사다가 다시 심기도 했는데, 그래서 절반은 포기가 들지 않고 아직도 덜 자란 상태다. 그러나 지난 주에 몇 포기를 뽑아 김치를 담가 먹어봤는데, 맛이 매우 고소하고 담백했다.

화학비료를 일체 치지 않고, 농약을 물론 제초제도 전혀 치지 않는 그야말로 무공해 유기농 배추라서 그럴까? 배추 결이 촘촘하고 입에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노란 배추 속보다 푸른색소가 훨씬 많다.

 소금에 절이기
소금에 절이기 ⓒ 최오균

배추를 옮겨 흘러내리는 물로 씻어 소금에 절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배추를 다듬어 포기를 두 조각으로 내주면, 두 사람이 서서 물에 깨끗이 씻었다. 씻은 배추를 소금물에 헹궈 주면 마지막으로 소금에 절이는 작업을 했다.

일을 나누어서 하니 진도가 척척 잘 나갔다. 소금에 절이는 작업까지 끝내고 나니 12시가 훌쩍 넘어갔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무와 파, 갓을 다듬고, 찹쌀로 죽을 쑤었다. 그리고 두 파트로 나누어 J, S여사는 거실에서 파, 무, 갓 등 양념을 썰고, 나머지는 절인배추를 물로 헹구기 시작했다.

 절인 배추 씻어내기
절인 배추 씻어내기 ⓒ 최오균

"이거 김치공장 하나 차려도 되겠네."
"호호, 그럼 내년엔 아예 찰라표 김치공장을 하나 차리지요."
"그거 멋진 아이디어네!"

일몰이 황홀하게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초승달이 하늘에 걸리고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밤 8시가 지나갔다. 저녁을 먹고 헹군 배추가 물이 빠질 때까지 3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고무통에 넣고 나니 가을밤이 깊어져 갔다.

 초승달과 금성. 밤늦게까지 김장담그기 작업을 했다,
초승달과 금성. 밤늦게까지 김장담그기 작업을 했다, ⓒ 최오균

"오늘 김장여행은 어땠나요?"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정말인가요?"
"그럼요. 이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정말 환상적인 김장담그기 1박 2일 여행 팀이네요. 하하."

그렇다. 인생은 여행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은 여행의 연속이 아니던가. 이제 배추를 양념에 버무리는 작업이 남아 있다. 작년에는 아내와 둘이서 김장을 했는데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여럿이 함께 작업을 하니 즐겁고 신바람이 난다. 네 집이 함께 하는 작은 김장 공동체의 김장여행은 내일도 계속 된다. 


#김장 담그기#베추캐기#김치담그기 여행#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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