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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드 툼> 중 한 장면
영화 <레드 툼> 중 한 장면 ⓒ 구자환
한국전쟁 직후 1950년 6월 25일부터 그해 9월 중순까지 불과 3개월 동안 국민보도연맹원이라 불리던 민간인들이 자국의 군인·경찰 그리고 우익청년단원에 의해 소집·연행·구금된 뒤 집단학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권은 '요시찰인'으로 감시하던 국민보도연맹원을 즉시 소집·연행·구금했다. 그리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후퇴하면서 이들을 집단학살했다. 이는 이승만 정권이 자국 민간인들을 구금하고 법적절차도 없이 살해했다는 점에서 '즉결 처형' 형식을 띤 정치적 집단학살이었다.  

10년간 영국유학 생활을 마치고 2000년 귀국한 나는 당시 막 출간된 김동춘 교수의 <전쟁과 사회>에서 보도연맹사건을 처음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첫째는 역사학을 공부했으면서도 보도연맹사건을 몰랐던 나의 무지에 부끄러웠고, 둘째는 "반만년 역사 위에 찬란하다 우리문화"라는 '조국찬가'가 너무도 부끄럽게 느껴졌던 그 순간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구자환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이 반인륜적이고 야만적인 민간인학살사건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에 대한 반성과 부끄러움을 속죄하는 심정으로 '보도연맹사건'을 다룬 다큐영화 <레드 툼>을 제작했다. 상영을 앞두고 불과 반세기 전에 벌어졌던 이 땅의 민간인 학살사건에 무지했던 우리 두 사람이 만났다. 다음은 지난 13일 구자환 감독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나 나눈 일문일답이다. 

- 영화제목이 '레드 툼'(붉은 무덤)인데 영화 줄거리는 뭔가? 그리고 제목을 영어로 지은 이유가 무엇인가?

"이 영화는 한국전쟁 당시 전국에서 억울하게 학살당한 국민보도연맹원 사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다. 아마도 대부분은 공교육에서 배우지 못했던 사건일 것이다. 처음 제목은 '빨갱이 무덤' 이었는데 주변에서 제목이 너무 강하고 대중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내가 좀 직설적 성격이라 이 제목을 버리지 못했는데 해외 상영까지 염두에 두면서 결국 영문제목으로 수정하고 '빨갱이 무덤'을 부제로 정했다." 

- 보도연맹사건을 다룬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실 내가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몰랐다. 참담하고 암울했던 사건을 몰랐다는 반성이 제작의 계기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도 고작 50여 년 전의 근현대사를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국민보도연맹사건의 경우 그 내용이 너무도 참담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는데 정작 이 사실을 아는 이 또한 너무 적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제작의 발단이었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다" 
 
 구자환 감독 인터뷰 중
구자환 감독 인터뷰 중 ⓒ 구자환
- 2004년에도 <잊어버린 이름 국민보도연맹>이란 제목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레드 툼>은 2004년 작품과 어떻게 다른가?

"2004년에 제작한 <잊어버린 이름 국민보도연맹>은 최초 취재 당시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만든 방송물이었다. 6~7개월가량 마산 일대와 함안, 산청 등 학살현장을 몇 곳을 찾아다니면서 한 유족 인터뷰와 국민보도연맹사건에 관한 기록들로 구성했다. 그런데 방송물이어서 23분 동안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적었다. 이 때문에 많은 분량의 테이프에 기록된 중요한 인터뷰를 버려야 했다. 이것이 장편을 새롭게 만든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도 시간제약은 여전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경남지역 10% 매장지만을 다룬 것 같다. 이번 영화의 기본적인 구성은 경남지역 학살지를 배경으로 한 기록이지만 유족들 사연과 목격자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 시대배경까지 일부 담았다. 그 속에서 당시 반공국가 건설과정에서 벌어진 참담했던 인권상황과 매카시즘이 빚어낸 시대참상도 드러내고 있다."

-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도 보도연맹을 사건을 부분적으로 다룬 상업영화인데 <레드 툼>과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교해서 설명하면?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보도연맹' 사건이 극중에서 잠시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가 전쟁참화 속에서 남북으로 갈린 형제우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감동을 전달한 것이라고 한다면, <레드 툼>은 참혹했던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현장을 통해 드러내거나 인터뷰를 통해 전개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자는 인물중심 극영화이지만 후자는 사건중심 다큐멘터리다. <레드 툼>은 극으로 연출된 <태극기 휘날리며>만큼 대중적인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가 적고 그래서 재미로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레드 툼>은 우리가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무심했을 비극적 역사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다." 

- <레드 툼>을 통해서 구 감독님이 표현하고 추구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은 억울하게 학살된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알리는 것이 주목적이다. 인터뷰에서 반복되어 나오듯이 희생자들 대부분이 이념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에 농사만 지었던 분들이 대부분이다. 이 속에는 당시 지식인들도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다. 저는 영화를 통해 국민보도연맹학살사건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념논쟁을 벗어나 인간존엄성을 훼손했던 시대의 비극을 사실 그대로 기록해 두고 싶었다. 이 속에서 해방 이후 1950년대 미소 냉전시대 매카시즘으로 빚어진 시대참상도 동시에 기록하고 싶었다."

"지금도 유족들은 빨갱이로 몰려 피해를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영화 <레드 툼> 중 한 장면
영화 <레드 툼> 중 한 장면 ⓒ 구자환
- 노무현 정부 시절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보도연맹사건 당시 학살장소에 대한 일부 유해를 발굴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와서는 학살지 유해가 그대로 방치되었다.

"실제 전국에 분포된 학살지는 너무 방대해서 내가 모두 알 수 없다. 단지 노무현 정부 시절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짧은 기간 동안 진실규명을 통해 확인한 자료를 통해서만 대략 알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정확하지 않다. 피해자 수도 연구자에 따라 최소 23만에서 많게는 45만까지 추정될 뿐 정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여전히 발굴하지 못했거나 드러나지 않은 학살매장지가 전국적으로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과 아직도 피해사실을 밝히지 않은 유족도 있다는 것이다. 이분들은 지금도 과거 참상에 의한 트라우마(trauma)로 빨갱이로 몰려 피해를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 현재 구 감독님이 파악한 전국 학살 장소 현황과 보존 상태는 어떤가?

"전국 학살 장소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서 경남지역에 한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옳을 것 같은데, 아마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 2012년 경남대 박물관에서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집단희생사건 유해매장지 조사사업을 벌였는데, 이 조사과정에서도 새로운 매장지가 많이 드러났다. 이 조사에는 국민보도연맹사건뿐만 아니라 좌익에 의한 학살사건 희생자, 형무소 재소자 사건, 미군폭격사건 등 5개 분류로 나누어 조사를 했는데 경남도내 18개 시군에서 모두 134개 매장지 또는 추정지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수치라고는 할 수 없다. 집단학살 경우에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이 있을 수 있고, 개별 희생자 경우는 그 수도 많고 구체적인 장소도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매장지가 개발로 인해 사라진 곳이 너무 많다. 특히 경남 김해 경우가 그렇고 신도시가 들어선 곳은 모두 훼손되었다. 다행한 것은 아직도 계곡이나 산속에 존재하는 학살 매장지는 자연훼손이 된 것 이외에 여전히 보존되고 있다."

- <레드 툼> 제작을 위해 많은 학살피해자 유족, 학자, 전문가 등과 인터뷰를 했던 것으로 안다. 얼마나 많은 분들과 인터뷰를 했고 인터뷰 중 잊히지 않는 몇몇 증언을 소개하면?

"어쩌다 보니까 첫 촬영부터 기간이 10여 년이 지나버렸는데 인터뷰한 분들의 숫자는 정리하지 못했다. 제작과정에서 프리뷰 노트를 작성하게 되는데 국민보도연맹 관련된 것만 A4 용지로 160페이지다. 인터뷰 중에는 '일본도로 목이 베여 죽었다'는 증언과, '살아 있는 사람을 묻어야 했다' 또는 '사람 목숨이 짐승보다 못했다'는 증언 등 참혹한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또, 영화에는 삭제되었지만, 당시 서북청년단에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빼앗긴 채 외국으로 피신해 살아가는 유족의 사연, 그리고 젊은 여성과 학생을 참혹하게 학살했다는 증언들이 기억에 남는다. 현 시대에는 상상조차하기 힘든 만행이었다."

"학살 가해자나 후손은 여전히 권력층으로 존재하고 있다"

- 한국 수구정치인들 중에서는 "과거를 잊고 미래로 가자"라고 외치는 인사들이 있다. 이런 수구정치인들에게 우리 국민, 특히 젊은 세대들이 왜 보도연맹사건을 알아야 하고 <레드 툼> 같은 영화들을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하면?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친일로 점철된 역사에서 매국행위를 한 인사들이 제대로 처벌받은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매국행위를 덮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던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을 반공이란 이념논리로 매장하고 사회적으로 숙청하면서 반공국가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참혹한 학살의 가해자들 역시 법적처벌이나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국민보도연맹사건도 결국 반공국가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탈법적 상태에서 무자비한 학살을 저지른 가해자나 그 후손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권력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해자들 다수가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고, 후손들은 다수가 후광으로 경제적 기반과 함께 사회지도층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진정으로 화해와 용서를 구하려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먼저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극악한 행위에 대해서는 마땅히 처벌도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누구 한 명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민주주의사회에서 마땅히 지켜져야 할 법질서에 의해 처벌된 사람도 없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피해자들을 여전히 이념논리로 핍박하고 매도하면서 '과거를 잊고 가자'는 것은 자신들의 범죄행위와 추악했던 과거를 감추거나 면죄부를 받으려는 의도라고 본다.

나는 최소한 이런 불행한 과거를 드러내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만으로도 용서를 비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공교육에서도 몇 문장으로 끝이 난다. 이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은 암울했던 근현대사를 모른 채 살아간다. 불행하게도 이런 말을 하면 극우는 바로 '빨갱이'라고 탄압한다. 나는 과거를 알지 못하면 현재 서 있는 자리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자신의 성장과정을 모른다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해 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보도연맹사건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왜 죽임을 당해야만 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대로 인식한다면 같은 유형의 참혹한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영화 <레드 툼> 중 한 장면
영화 <레드 툼> 중 한 장면 ⓒ 진실화해위원회
 
"유족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줘서 고맙다' 했다"

- <레드 툼>을 제작하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2012년 경남지역 유해매장지 조사원으로 활동하면서 깜짝 놀랐다. 제작비를 확보하지 못해 그동안 미루어 왔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목격자들이 세상을 떠나고, 배우자 등 유족들은 노쇠해져서 기억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스태프 구성하려는 것을 포기하고 휴직계를 내고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밀양송전탑 공사가 재개되면서 (그 취재를 하느라) 결국 촬영을 멈추어야 했다.

이런 현상은 계속 반복되었는데 취재와 동시에 촬영하고, 구성을 하다 보니 감정곡선이 끓어지고 집중이 되지 않아 힘들어 했다. 구성단계에서는 웃지 못 할 일들도 많았다. 고정된 유리문을 열린 것으로 착각하고 급히 들어가려다 이마와 충돌해 부어오르기도 했고, 방충망을 보고도 그대로 뚫고 들어가는 어이없는 일들도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신이 나간 것이다. 편집단계에서는 1400여 개가 넘는 자막을 넣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아직도 영화에서 보완하고 싶은 아쉬운 장면과 내용이 있는데 혼자 촬영, 구성, 편집을 하고 동시에 기자 노릇까지 하다 보니 시간도 없고, 지쳐서 결국 포기했다."

- 그런 여러 어려움 중에서 그래도 <레드 툼>을 만들면서 큰 보람을 느낀 순간도 간혹 있었을 텐데?

"부산국제영화제에 맞춰서 쫓기듯 편집하고 출품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다. 사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그 만큼 실망했다. 정확히 3일 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했다. 그리고 서울독립영화제에도 출품을 했는데, 결과를 기다리면서 은근히 두려웠다. 상업영화와는 달리 독립영화는 영화제에서 탈락하면 사실상 영화를 알릴 방법이 없다. 영화제에서 입선한다고 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잔뜩 걱정하고 움츠려 있다가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메일을 확인하고서야 살았다 싶었다. 시사회에 참석한 유족들이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줘서 고맙다고 했는데, 사실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출연한 분들이 이야기한 것이다." 

- <워낭소리> 후 독립영화가 어려움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한류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독립영화에 대한 후원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독립영화 활성화 정책과 관련하여 정부에 제안하고 싶은 사항은?

"내가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고 평소에는 영화보다 취재에 매달리다 보니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정책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중앙정책에 대해서라기보다 지역의 문화지원정책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이번 영화를 제작하면서 느낀 것인데, 나는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문화에 대해 정치적, 사회적 잣대로 재단하고 지원을 결정하는 것에 분노한다. 이런 사람은 문화 부서를 담당할 자격이 없다. 불행히도 이런 몰지각한 문화인식이 내가 활동하는 지역에서 존재한다. 지원정책에 앞서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먼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 <레드 툼>은 CGV 압구정 무비꼴라쥬관 4관과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에서 아래와 같이 모두 3회 상영한다. 상영시간(97분 35초).

11.29(금) 20:30, 12.04(수) 13:40 압구정 CGV4,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30길 45
12.02(월) 12:40 인디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1-153 가든플레이스 2층
(상영 이후 매번 구자환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다.)

* 구자환 감독은 1967년 태어났다. 경남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고 현재 (사)한국독립영화협회 다큐멘터리 분과와 경남영화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민중의 소리> 경남본부 기자다. 2003년 단편 다큐 <선구자는 없다>, 2004년 단편 다큐 <잊어버린 이름 국민보도연맹>, 2005년 단편 다큐 <아스팔트 농사> 2006년 단편 다큐 <사랑의 쌀독>, 2007년 장편 다큐 <회색도시>, 2010년 단편 다큐 <경남다문화가족친정나들이> 단편 다큐 <보더리스 아트(Borderless Art)>를 연출했다.

#구자환#래드 툼#학살#김성수 #진실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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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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