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해 묻는다. 문제는 그럴 때 "엄마는 노동자들을 위해~" 뭐 이렇게 적당한 언어유희를 통한 포장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이미 '직업'이라는 두 글자가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실 뒤쪽에 다닥다닥 붙여놓은 '장래희망'을 보더라도 변호사, 선생님, 과학자, 요리사, 발레리나, 의사…로 넘쳐난다.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엄마가 하는 일이 제가 알고 있는 '직업'이라는 두 글자와는 동떨어져 보이리라. 하긴 내 생각에도 딱히 선명한 이름이 없다. 노동조합 상근자? 노동운동가? 노동조합 활동가?
"엄마는 무슨 일을 해?" 아이가 물으면... 당신 딸이 언젠간 정치 쪽에 한 발쯤 담가서 친구들에게 자랑 한 가닥쯤은 할 수 있도록 기대한 우리 아버지 희망사항을 무참히 짓밟고 나는 스물여섯 현장에 들어간 이후 나이 마흔이 먹도록 지금까지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처음 현장에 있었던 몇 년을 제외하고는 벌어오는 돈이 쓰는 돈보다 많았던 적이 없었다. 다행히도 그 흔치 않다는 '정규직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 다니는 남편을 만나 용돈 받아가며 살고 있다. 경제적 독립?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다.
진보적 운동의 영역들이 다양해지면서 주변에 노동운동을 하는 선후배들보다 협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 다양한 정당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나보다 더 나을지 그것은 알 수가 없지만 세월이 가도 노동운동하는 사람이 보편적 직업군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운동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긍심도 경제적 보상도 점점 멀어져가고, 남는 거라곤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낯선 내 자신과 피곤한 하루하루.
얼마 전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자는 ( )이다"라는 설문을 진행했는데 그 답들이 어른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했던 일이 떠오른다. 괄호 안의 단어들은 우리사회가 '노동자', '노동'을 바라보는 지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불쌍한 사람', '덜 배운자', '가난한 사람' …. 그러면 내 딸들에게 엄마는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 쯤으로 보이려나?
먹고사는 문제를 논하기엔 너무 무거운 직업주로 신규노조 설립과 교섭, 노동상담을 하는 것이 나의 일인데, 금속노조 간판을 달고 있다 보니 외부의 사람들에게는 '정규직 대공장 노동귀족'으로 욕먹는 것도 나의 일이다.
때로는 내 임금의 몇 배를 받는 사람들의 임금을 인상하기 위해 교섭 테이블에 앉기도 하고, 아버지뻘 되는 조합원에게 큰소리를 치기도 한다. 비장하면 경직되었다고 비판 받고, 가벼우면 운동성을 의심받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왜 그렇게 사냐고, 어서 '사회의 품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앞세우기에는 너무 무거운 직업, 하지만 많은 활동가들이 이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떠나는 직업.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이 직업에 어떤 이름을 달아주어야 할까.
얼마 전 여성운동을 하는 활동가 한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분은 그 즈음 활동을 정리하고 쉬고 있는 중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지쳤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분은 나에게도 "어서 그만두라"고 '조언'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보겠다고 하다가 스스로 병 나는 것을 모르는 것이 우리다"라고 했다. 한창 지쳤던 당시의 나는 그분의 그 말이 참 와 닿았다.
활동가와 직업인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스스로 자신을 보존하는 일은 참 중요하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나같은 활동가들이 자꾸 지쳐서 사라지는 것은 큰 손실이다. "꼭 노조나 사회 단체에서 일해야 운동하는 건가? 사는 것이 운동이지!" 백 번 옳은 얘기지만, 만약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순간이 오면 그건 "힘들어서 그만두겠다"거나 "나 상처받아서 좀 쉬겠다"는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니다.
촌스러운 '노동해방' 구호, 가슴을 달구는 말내가 스스로에 대한 한가로운 연민을 부리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삼성서비스노동자들은 자결한 동지에 대한 의리로 전국적 투쟁을 벌이고 있고, 유성지회장은 두 번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이 계속 올라온다.
다른 나라는 노동조합에서 근무하는 이런 직업이 '서비스업'으로 분류된다던데, "이도 저도 아니면 프로패셔널하게 노조관료라도 제대로 하자"는 얘기를 우리끼리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내 주변엔 '노조관료'보단 '혁명가들'이 더 많다.
아직까지 나는 촌스러운 '노동해방 쟁취하자'는 구호보다 우리 노동자들이 처한 처지와 우리 사회의 노동운동이 가야 하는 길을 잘 표현하는 구호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리고 내 주변의 많은 선후배, 동료들은 아직도 노동해방을 꿈꾸며 가슴을 달군다.
사족 하나, 민주노총, 산별연맹, 각 지역 노동조합 조직에서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선배 활동가님들. 이 글을 보고 부디 노여워하지 마시라. 막내 노조활동가의 '사는 것에 대한 투정'으로 귀엽게 봐주시길. 모두들 살아서, 살아남아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그 날까지 버티고 싸우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