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것이 없는데 잘못했다 하고 줄 돈이 없는데 달라고 잘못된 방식으로 접근해선 무례함까지 범하는 너희들 행동이 이해가되지 않는구나. 너도 충분히 골머리 아팠을 테니 이제 다시 얘기해볼래? 맨 처음부터 내가 너한테 하려던 그 대화. 그 분위기로. 단둘이만.그때 너랑 얘기 좋게 마치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려 했었다. 짧았지만 그래도 소중한 인연이고, 공부는 잘하고 있니,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니, 이런 소소한 이야기 나누면서. 이 꼬라지가 뭐니? 흉하게. 그 무례한 친구 얼굴은 다시 보고 싶지 않으니 대화 의사 있으면 연락 주거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슬퍼하는 연애편지가 아니다. 고깃집 사장님이 못 받은 임금을 달라고 이야기하는 알바노동자를 단둘이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다. 대학생 알바노동자 B씨는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다가 해고됐는데 우연히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아래 알바노조) 조합원들을 만났다.
알바노조로부터 주휴수당과 야간수당 등에 대해 난생 처음 들었고 차근차근 따져보니 자신이 받은 임금이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알바노조 조합원으로 가입, 알바노조와 함께 사장님에게 단체교섭을 시도했다.
이에 대한 사장님의 반응은 노조는 제3자이니 빠지라는 것이었다. 괜히 시끄럽게 트러블이 생긴 원인은 노동조합에 있고 사장과 노동자가 단둘이 인간적으로 만난다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장님은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고,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조합원들이 말하는 방식이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사장은 B씨를 각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장님이 이 메시지를 알바노조 조합원에게 보낸 건 알바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한 이후로, 조합원과 노조를 분리시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회사가 노동조합을 대하는 태도는 삼성의 이건희이든 조그마한 가게 사장님이든 비슷하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를 만든 노동자들에게 삼성은 탈퇴 협박과 함께 노조총회에 참석하지 않고 일을 하면 10만 원의 특별 보너스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두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노동조합을 탈퇴해서, 정말로 소주와 삼겹살을 얻어먹고 좋게 좋게 끝내든지, 아니면 노동조합을 끝까지 믿고 가든지. 전자의 경우는 대부분의 알바노동자들이 선택하는 방법이다. 지금 싸워봤자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 같고, 싸우는 방법도 모르고, 심지어 나를 보호해준다는 근로기준법에 대해서 배운 적도 없다. 그리고 딴 일 알아보면 그만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 조상들의 지혜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조용하고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던 성격의 B씨는 의외의 선택을 한다. 그는 알바노조를 선택했고, 무서운 사장님에게 반격을 시작했다.
고기가 아니라 알바를 굽는 고깃집 B씨가 일한 곳은 저가의 고기를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전문점이다. 싸고 먹을 만하니, 돈 없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서 수많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역시 싸구려 삼겹살 취급을 받아야 했다.
B씨는 2013년 4월 말부터 5월 둘째 주까지 약 3주간 3일씩 일했다. 주3일이라고 해도 일이 만만치 않았다. 오후 6시부터 오전 5시까지 11시간을 밤새 술손님을 받으며 일해야 했다. 고기 불판을 가는 과정에서 화상의 위험도 많았다. 어느 날 딱 한 번 지각한 순간, 사장은 B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통상 30일 전에 해고를 예고해야 하고 사업주가 이를 위반할 경우 1개월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지만 사장도 알바노동자도 이를 알지 못했다.
이외에도 알바노조에서 따져보니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일단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교부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노동자를 고용한 고용주는 알바든 정규직이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노동자들에게 근로계약서를 교부할 의무가 있다. 만약 고용주가 이를 어기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노동자는 일을 하기 전,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어디서 무슨 일을 얼마의 돈을 받고 일을 할지 고용주와 계약을 하고 이를 근로계약서에 적시할 권리가 있다. 노동자와 노예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만약 근로계약서도, 출퇴근을 했다는 기록도, 통장에 월급을 받았다는 기록도 없다면, 나중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일을 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알바노조로 들어온 상담 중에는 모텔에서 일을 하다가 쫓겨났는데, 사장이 월급을 안 주면서 일을 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한 사례도 있다. 함께 일한 동료들의 증언이 있으면 되지만, 이주노동자라서 불이익을 받을까 침묵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통장에 월급 기록이 있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일을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야근수당과 주휴수당, 4대 보험 등을 제공하지 않았다. 야근수당과 4대 보험은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지급해야 한다. 야근수당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일을 하면 1.5배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주휴수당은 주 15시간 이상만 일을 하면 모든 노동자가 하루치 평균 임금을 받을 수 있다. B씨의 경우 3주간 3일씩 총 9일을 일하다 해고됐는데, 임금으로 51만9000원을 받았다. 만약 주휴수당과 야근수당을 합친다면 75만1500원을 받아야 했다. 총 23만2500원의 임금을 떼인 것이다.
주휴수당 야근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는 알바노동자들에게 너무나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금액도 20만 원 정도의 소액으로 알아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노동부에 진정을 하더라도 사건이 종결날 때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각종 서류와 증거를 하나하나 모으고 작성하는 것도 안 해 보면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근로감독관들은 대부분 현직 형사들로, 업무가 과다하고 태도가 고압적인 경우가 많다.
진정을 통해 못 받은 돈을 돌려받는다 하더라도, 사장의 입장에서는 재수 없게 당돌하고 싸가지 없는 알바생을 잘못 만나 생긴 일이지, 이를 계기로 알바 노동자들의 보편적인 노동권이 보장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알바노조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앞으로 그 고깃집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게 단체교섭이 시작되었다.
사장님의 협박 "니가 법을 알아?"... 난생 처음 본 내용증명 정식으로 단체교섭을 하기 전에 B씨와 알바노조 조합원들은 사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체불임금 내용을 전달받은 사장의 반응은 '격정적'이었다.
11시 이후나 시간 가능하고 매장 바쁜 시간에 얘기할 수도 없으려니와 언제까지 끌 문제도 아니니 오늘 꼭 나와주기 바란다. 더 주장하고픈 얘기 있으면 지금 다 하도록 해라. 얘기 다 끝난 다음에 뒷북치지 말고. 추가 주장은 5시까지 받겠다. 한 가지 더. 니 친군지 노존지 하는 친구는 대화에서 빠졌으면 한다. 걔들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얘기할 권리도 없고.직접 만났을 때의 태도도 고압적이긴 마찬가지였다. 반말은 기본이었다. 계속 어리게만 보는 것이다. 이후 사장은 '법'과 '변호사'를 들먹였다. 법을 어겼다고 따지는 알바노조에 대해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협박을 보내는가 하면, 해고된 알바노동자 B씨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했다며 추가로 받은 돈을 돌려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안 돌려주면 법대로 하겠다는 일종의 압박이었다. 난생 처음 내용증명과 고소협박을 받은 B씨나 알바노조의 입장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돌려달라는 금액을 보고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추가적으로 지급한 액수는 단돈 6만 원. 그리고 사장의 법적근거는 수습제도였다. 수습제도란 고용주가 최대 3개월 동안 최저임금의 90%를 지급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수습제도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당시에 미리 수습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 기간을 정한 경우에만 가능하다. 미리 정한 것이 아니라면 나중에 수습이었다는 이유를 들어 임금을 감액하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또 2012년 7월부터는 1년 미만의 기간제 노동자에 대해서 최저임금 감액을 금지한다. 내용증명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문서에 비해 가벼운 내용에 알바노동자들은 좀 더 용기를 냈다. 알바노조 차원에서 매장에 단체교섭 공문을 보내고 답을 기다렸다.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알바노조는 이 일을 알리기 위해 학교에 대자보를 부착하고, 유인물을 만들고, 집회를 위해 집회신고를 냈다. 최후의 보루로 노동부 진정서도 작성했다. 관리감독을 소홀하게 한 해당지역 노동부 앞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B씨는 난생 처음 경찰서 형사들의 전화도 받아보았지만 무섭기보다는 알바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싸울 수 있다는 설렘이 더욱 컸다고 한다.
생애 첫 집회... 그리고 승리지난 8일 고깃집 앞에서 10여 명의 알바노동자들과 청년들이 피켓을 들고 확성기로 크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알바 월급 구워먹고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떼인 돈 달라 했지 협박 카톡 달라 했냐?" "○○○야 ○○○야 떼인 돈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재미있는 구호들이 울려 퍼졌고, 손님들도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조그마한 고깃집 앞 집회는 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당황스럽고 기발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사장은 "이 정도밖에 못 하냐? 실망이다"라며 비아냥 거렸다.
집회참가자들은 화가 났지만 침착하게 다음을 기약했다.
그 다음 주 금요일에 큰 집회를 예고하고 알바노조 전체 차원의 대응을 준비했다. 프랜차이즈 본사에도 전화를 걸어 교섭을 시도하고자 했다. 경찰도 비상이 걸렸다. 그러다보니 사장의 태도가 갑자기 확 바뀌었다. 사장은 결국 알바노조에 단체교섭을 응하겠다는 항복 선언을 했다. 반말은 사라졌고, 알바노조를 무시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지난 16일 알바노조 사무실에서 단체교섭을 진행했다. 사장님은 교섭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간 많은 고민이 있었으며 이제 오해를 풀고 문제가 잘 해결되기를 바란다"라고 사과했다.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도 "고기를 먹으러 오는 사람도, 알바를 하는 사람도 대부분 대학생들"이라며, "운영자 입장에서도 기본을 지키고 알바들을 존중하는 것이 결국 영업이 잘 되는 길일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교섭내용에는 체불임금 지급약속과 더불어, 법 준수 약속, 임금명세서 지급, 화상 등 상해 대비한 안전조치, 정기협의, 협약사항 게시, 가맹본부에 단체교섭 제안 등이 담겼다. 특히 뜨거운 불판을 교체하는 등 고깃집 알바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여 응급물품을 구비하고 장갑·집게 등 안전장비를 구비하고, 상해를 입을 경우 근무시간 내에서 휴식 및 병원치료가 가능하도록 조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억울한 알바노동자 한 명이 못 받은 임금을 받는 것을 넘어서 모든 알바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작지만 의미 있는 승리였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힘도 없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알바노동자들도 함께 하면 이길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 박정훈 기자는 알바노조 활동가입니다.
* 이 기사는 '청춘기자상' 응모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