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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5 정전사태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았던 한 공무원이 2년여 만에 명예를 되찾았다. 당시 보고 과정의 문제는 개인이 아닌 전력거래소 '허수 예비력' 은폐 탓이라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 정전사태가 발생한 지난 2011년 9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중앙급전실에서 직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전국 곳곳에 정전사태가 발생한 지난 2011년 9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중앙급전실에서 직원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 연합뉴스

공무원 개인은 명예를 회복했지만 정부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덕분에 국민은 2년 전 9·15 순환 정전사태의 실체적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지난 2011년 9월 15일 오후 국내 예비전력이 부족해 전국적으로 일부 지역 전기 공급이 중단되는 사상 초유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사태 책임을 지고 징계를 받았던 한 공무원이 2년여 만에 명예를 되찾았다.

"전력거래소 '허수예비력' 은폐 탓... 공무원 개인 책임 아냐"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심준보 부장판사)는 지난 11월 28일 김아무개(46) 당시 지식경제부 전력산업과장이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제기한 견책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손을 들어줬다. '허수예비력'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해 정전 당시 상황을 상관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징계한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한국전력거래소가 10년 넘게 '허수예비력'을 은폐해온 사실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전력거래소는 국내 전력생산량과 전력수요량을 실시간 집계해 그 차이를 '예비력'으로 표시하는데, 그 예비력 안에 즉시 가동할 수 없는 '허수' 발전기 용량까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정전사태 당시에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나 한국전력에 설치된 전력수급모니터에 표시된 예비력에 포함된 허수예비력이 약 300만kW(킬로와트)에 달해 상황 파악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로 전력거래소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9·15 정전사태가 발생했다는 국회 입법조사처와 전정희 민주당 의원 주장에 더 힘이 실리게 됐다. 전정희 의원은 지난해 6월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를 토대로 전력거래소가 EMS를 활용해 자동급전하지 않고, 허수가 많은 공급예비력을 형식적으로 모니터에 표시하면서 수동 급전해오다 정전사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올해 초 EMS 현장 조사까지 벌였지만 전력거래소는 시스템 운용에 문제가 없다고 맞서왔다.

전력거래소 조직적 은폐로 9·15 정전사태 자초

이번 판결문을 토대로 9·15 정전사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봤다. 늦더위가 한풀 꺾인 줄 알았던 지난 2011년 9월 15일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 이상 오르며 전력수요가 갑자기 늘었다. 당시 기상청에서 이날 최고기온을 섭씨 33도로 예상했는데도 거래소가 당일 최고온도를 섭씨 28도로 적용해 당일 최대전력수요를 6400만kW로 과소 추정한 게 화근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전력수요가 이미 6400만kW를 넘어섰고 오후 1시 이후 운영예비력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전력거래소는 운영예비력이 400만kW 아래로 떨어지면 경보를 발령하는데, 이날 오후 1시 5분쯤 운영예비력이 400만kW 이하(관심 단계)로 떨어진 데 이어 1시 10분쯤 300만kW 이하(주의 단계), 1시 25분쯤 200만kW 이하(경계 단계), 1시 35분쯤 100만kW 이하(심각 단계)로 급락했다. 최고 단계에 이르는데 고작 30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1시간 뒤인 오후 2시 35분쯤에서는 50만kW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전력거래소는 평소처럼 오후 2시 30분 이후 기온이 내려가 전력수요가 줄어들 걸로 보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2시 1분쯤 한전을 통해 미리 계약을 맺은 수용가에게 자율적으로 전력 소비를 줄이게 하는 '자율 절전'과 계약 수용가의 전력 공급을 직접 줄이는 '직접부하제어' 조치를 취하게 한 것 정도가 전부였다.

이날은 오후 2시 30분 이후에도 전력수요가 계속 늘었고 오후 4시쯤까지 떨어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오후 1시 55분쯤 지역 민원으로 충주수력발전소가 가동을 정지한 데 이어 오후 2시 35분쯤 보령 복합화력발전소 제3발전기가 고장으로 멈췄고, 전력사용 피크시간대에만 가동하는 전국 5개 양수발전소가 오후 3시 25분쯤부터 저수량 고갈로 멈추는 등 악재가 겹쳤다.

전력거래소는 이날 오후 1시 20분쯤 관심 단계 경보를 발령한 데 이어 오후 2시 20분쯤 심각 단계 경보를 뒤늦게 발령했지만, 정작 지식경제부에는 사전은 물론 사후에도 이를 보고하지 않아 화를 키웠다.

모니터에는 300만kW 남았는데... 실제 예비력은 고갈

 9.15 정전 사태 이후 최대전력수급 및 예비력 변화 추이.
9.15 정전 사태 이후 최대전력수급 및 예비력 변화 추이. ⓒ

전력거래소 중앙급전소 신아무개 차장이 이날 오후 2시 13분쯤 지경부 전력산업과에 전화해 "수급상황이 조금 불안정하여 수요조절 조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전했지만 당시 지경부와 한전에 설치한 전력수급모니터에 표시된 예비력은 400만kW 정도여서 큰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전력거래소는 전력수급모니터에 표시된 예비력이 현재 운전 중인 발전기 용량에서 전략수요량을 뺀 '운전예비력'과 위기 상황시 즉시 가동해 20분 이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기 용량인 '대기예비력'을 합한 '운영예비력'라고 밝혔지만, 여기엔 즉시 가동할 수 없는 발전기 용량인 '허수예비력'도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 사실을 몰랐던 김아무개 지경부 전력산업과장이 전력거래소에 의문을 제기하자 전아무개 중앙급전소장은 구체적 설명 없이 전력주파수가 정상인 60Hz보다 낮은 상황만 언급하고 '부하차단(지역별 순환 정전 조치)'을 해야 할 상황이 올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오후 2시 55분쯤 전력수요량이 공급량을 초과해 운영예비력이 0으로 떨어지자 전력거래소는 한전에 지역별 순환 정전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통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때도 전력수급모니터상에는 아직도 '예비력' 약 300만kW가 남아있었다.

결국 오후 3시 11분쯤 지역별 순환정전조치에 들어가 4시간 40여 분이 지난 이날 오후 7시 56분에야 종료된다. 그 사이 강남·송파·서초·영등포·종로 등 서울 일부 지역을 비롯해 수도권, 농촌 지역 등 일부 지역에서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전국적으로 큰 혼란이 발생했다.

당시 전력거래소는 하절기 전력수급기간이 9월 9일로 끝나 834만kW에 이르는 발전기들이 계획예방정비에 들어간 탓이라고 언론에 해명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허수예비력' 존재가 드러나자 전력거래소는 그해 12월 2일 '전력시장운영규칙'을 바꿔 예비력 개념을 공급예비력과 운영예비력, 운전예비력 등으로 세분화하고 전력수급모니터에도 허수예비력을 뺀 운영예비력만 표시하도록 했다.

전정희 "EMS 제대로 활용 못해 '허수' 10년 간 방치"

 10월 3일 오후 5시 35분 현재 전력거래소(왼쪽)과 에너지관리공단(오른쪽) 홈페이지 발표 예비전력. 전력거래소 예비력은 1272만kW인 반면, 에너지관리공단 예비력은 989만kW로 300만kW 가까이 차이가 난다.
10월 3일 오후 5시 35분 현재 전력거래소(왼쪽)과 에너지관리공단(오른쪽) 홈페이지 발표 예비전력. 전력거래소 예비력은 1272만kW인 반면, 에너지관리공단 예비력은 989만kW로 300만kW 가까이 차이가 난다. ⓒ 김시연

재판부는 "전력거래소가 허수예비력 존재를 계속 은폐해온 점 등을 종합하면 원고가 정전사태 당시까지 허수예비력의 존재를 파악하기란 객관적으로 불가능했다"면서 "지식경제부 전력산업과장 직을 수행한 원고 개인에게는 공무원 개인의 직무상 의무 위반과 '주관적 비난 가능성'은 없으므로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주무부서인 지식경제부가 그 산하 공법인인 전력거래소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하고 여름철 전력수급 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여 대처하지 못해 정전사태가 야기되었다"면서 "그로 인해 국가경제와 피해국민 개개인에게 엄청난 재산상 손실을 끼쳤으므로 주무부 장관이 국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함은 물론 국가가 피해 국민 개개인에게 배상책임을 질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른바 '조직 과실' 문제를 지적했다.

전정희 의원은 4일 이번 판결에 대해 "정부가 9·15광역정전사고 책임을 실무선에 있었던 지경부 전력산업과장과 전력거래소 급전원들에게 전가한 것은 꼬리자르기식의 잘못된 행태"라면서 "뒤늦게나마 전력거래소가 지난 10년간 허위 보고를 일삼으며 계통운영을 부실하게 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져 천만다행"이라고 밝혔다. 

전 의원은 "전력거래소가 10년간 전력수급 모니터를 통해 허수가 있는 예비전력 수치를 표시해왔던 것은 정확한 운전예비력을 계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주파수 조정 등에 필요한 운전예비력은 전력계통운영시스템(EMS)의 예비력관리프로그램(RMS)에서만 계측할 수 있는데 전력거래소는 지난 10년간 이 시스템을 실시간 운전에 활용하지 못해왔다"고 거듭 지적했다. 아울러 제3의 외국 기관에게 EMS 기술 검증을 맡겨 계통운영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복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력거래소는 9·15 순환 정전 당시 전력수급 경보 기준이 되는 '운영예비력'이 아닌 '공급예비력' 기준으로 외부에 정보를 제공하고 예상 온도에 대한 오차로 문제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은폐한 건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승구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수급운영팀장은 "9·15 사고 이전까지 지경부와 한전 등 외부에 '허수 예비력'이 포함된 '공급 예비력'을 제공한 건 굳이 운영예비력까지 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면서 "사고 이후엔 공급예비력과 운영예비력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전력거래소가 기상청 예상 기온을 잘못 인지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보통 전날 오후 6시 발표를 기준으로 삼는데 사고 전날 오후 6시 이후 기상청이 다음날 예상 기온을 섭씨 28도에서 33도로 조정한 걸 미처 반영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라고 밝혔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여전히 기관별로 예비력 표시 기준이 다르다는 지적에 대해 "정보를 제공받는 기관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인데 운영예비력으로 통일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서울행정



#전력거래소#산업통상자원부#9.15정전사태#예비력#전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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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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