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15%짜리 정당이야. 뭘 할 수 있겠어. 빨리 야권의 힘을 합쳐 지방선거 승리하는 게 현 단계 민주당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사람들이 김한길 대표 바가지로 욕하는 것, 우리도 알아요. 암만 그래도 김한길이 지방선거를 이겨주면 그걸로 끝나는 거야. 지금 특검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그동안 특검 봤잖아. 뭐가 됐어? 선수들끼리 왜 이래, 정말!" 대설주의보가 예고된 10일 밤, 민주당 핵심 관계자의 말입니다. 다른 것은 다 빼고, 첫째, 이렇게 해서 과연 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둘째, 지금 특검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일까요? 한동안 머릿속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민주당의 상황 인식에 매우 놀랐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민주당이 불철주야 국정원 개혁특위 안에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에 여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원내대표-원내수석부대표간 4자회동을 통해 끊임없이 특검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건가? 혼돈의 밤이었습니다. 지금 특검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요 특검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면 특검논의는 시늉만 하는 것인가, 국정원 등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 논의는 어느 단계까지 왔나 궁금해졌습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연내특검 도입'을 주장하면서 반드시 관철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공연히 국민만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길해지기도 했지요. 국민들은 민주당이 특검 도입에 적극적일 거라 생각하고 있는데, 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접촉 트랙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4자회담 멤버인 정성호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에게 이날 밤 이슥한 시각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정 수석부대표는 "우리가 원샷특검 하자고 한 게 벌써 10월이었다"며 "특검대상에 김무성 의원을 포함하느냐 마느냐와 관련해 지난한 논의가 있었고 그 문제에 대한 협의가 일단락되지 않는 한 특검 도입의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수석부대표는 "현재로서는 법원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나와야 특검도 가능할 것 같다"며 "사법적 판단으로 유죄가 나면 특검을 받겠다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뜻이니 그때는 거부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정 수석부대표는 "특검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며 "특검을 한다고 해서 현재 검찰수사보다 더 많은 수준의 수사내용이 드러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검 임명은 대통령 권한인데 집권 초에 누가 특검이 된다고 해도 결국 검찰의 인력을 지원받아 운영할 텐데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정 수석부대표는 "원세훈 재판에서 선거법에 대한 유죄판결이 확실히 나오면 그때는 우리도 특검 주장을 확실히 할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연내 특검 도입 등 이렇게 시기를 확정해서 못 박기도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정성호 수석의 고민이 묻어나는 한밤의 전화인터뷰는 그 정도에서 마무리됐습니다. 지금이라도 특검이 도입되면 좋지만, 특검이 도입된다고 해서 딱히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수사결론이 나올 것이란 보장도 없으니 차라리 특검이라는 카드를 쥐고 새누리당이 문제적 행동을 할 때마다 압박용으로 쓰겠다는 뜻으로도 들렸습니다. 이것은 철저히 정치공학적 논리에 따른 계산법이겠지요. 국정원 개혁특위, 칼자루 쥔 새누리당 그러나, 국민들은 순수하게 현 단계까지 드러난 국정원과 국가보훈처 그리고 국군사이버사령부 등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진실이 매우 궁금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던 김하영씨는 국정원 직원으로서 이 사건에 깊이 연루된 인물로 판명났습니다. 국정원은 이 사건 초반 댓글을 단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내가 댓글 때문에 당선됐다고 생각하세요?"라면서 김한길 대표를 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보자면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아닙니까. 트위터만도 처음에는 5만개→121만개→2200만개까지 늘어났습니다. 국군 사이버사령부는 개인당 목표량이 2000만개의 트윗이었고, 이것을 초과 달성해 2200만개를 쏟아낸 군 관계자에게 상훈포장이 주어졌습니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충분히 여론을 좌우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SNS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뿐입니까. 이 사건을 수사하던 채동욱 검찰총장을 혼외자 문제로 엮어 날렸습니다. 채 전 총장은 원세훈, 김용판 두 사람을 끝까지 선거법으로 기소했는데, 박근혜 정부로부터 괘씸죄가 걸린 걸까요? 무엇보다 이 사건에 청와대 행정관이 개입했는데 그가 무슨 이유로 누구의 지지를 받고 왜 그 같은 일을 했는지 검찰은 지금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윤석열 여주지청장 문제는 또 어떻습니까. 이 사건의 전직 수사팀장이지만 징계로 밀려난 윤 청장은 "3·15 부정선거 이후 이렇게 엄청난 부정선거는 처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는 검찰이 수사인력의 한계로 아직까지 시작조차 못한 국정원 관련 사건 자료가 산적해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그 사건 계속 재판 중이지만 검찰 수사팀의 사실상 와해로 진척이 빠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사건을 목전에 둔 게 바로 제1야당 민주당입니다. 국가적으로 매우 심각한 민주주의 중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민주당은 목소리를 높였지만 지금까지 별로 된 것은 없습니다. 국정원 개혁특위 내용에 대해서는 평가할 만하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민주당의 제안을 새누리당이 얼마나 수용할지 현실적으로는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같은 날 <오마이뉴스>와 전화통화에서 "민주당이 내부에서 여론조사를 돌려보면 민생에 주력하라는 게 가장 많다"며 "정치투쟁 좀 그만하라는 제안이 많다. 그러니까 지도부가 날선 정치투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진 의원은 "정치투쟁만 하니까 계속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민생으로 풀어야 하는 게 아닌가 방향을 고민하는 것 같다"며 "전략적 판단에 따라 대응이 늦거나 무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것 때문에 답답하지만 그래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민주당 내부 "정치투쟁은 이제 그만" 민주당 안에 여러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현안이 많기 때문에 어느 것부터 어떻게 대응을 해야 좋을까 늘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너무 '전략적 판단'에 따라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엔 적기에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니 국민들은 그런 민주당을 향해 불신과 무능의 비판을 퍼붓기도 하지요. "하려면 제대로 하던가, 뭐니?" 민주당의 태도에 대한 비판 때문에 48%의 유권자들은 등을 돌렸고, 이제 고작 남은 지지율이 15%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민주당은 그 놈의 '전략적 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매번 새누리당이 짜놓은 대선 불복 프레임에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잣거리 성토도 대충 비슷합니다. 민주당이 새누리당과의 협상에서 특검 대신 양특(국정원 개혁특위, 정치개혁특위)을 받아놓고 그 자체로 90% 승리한 싸움이라고 했을 때도 일반 유권자들은 솔직히 살짝 '안습'이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지난 대선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으니, 앞으로 진행되는 선거에서 다시는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개입할 수 없도록 제도적 개선책을 찾는 게 옳다, 그 길이 훨씬 생산적이라고 보는 국회의원들도 여럿 됩니다. 물론 그 방향이 잘못됐다고 비판하거나 제동을 걸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과연 민주당이 새누리당과의 협상에서 얼마나 큰 성과를 따낼 것인가 하는 점 같습니다. 새누리당이 민주당의 이런 목표를 관철할 수 있도록 도울까 하는 의문이 남는 것이지요. 장하나, 양승조 의원의 발언 파문에서도 새누리당의 노림수가 읽힙니다. 새누리당은 그 어떤 작은 꼬투리라도 잡히면 잡히는 대로 국정원 개혁특위 활동 중단의 사유로 삼을 것입니다. 이때도 당연히 프레임은 같습니다. 종북과 대선불복이지요. 그때마다 민주당은 어물쩍 넘깁니다. 종북이라니! 화를 내고, 대선불복은 아닙니다 정도로 넘어가겠지요. 그러나, 새누리당은 말끝마다 '대선불복 프레임'으로 딴죽을 걸고 종북으로 야권을 싸잡아 때리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 같은 프레임 전쟁은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이 정치에서 멀어지면 신나는 사람은... 내년 지방선거의 주요 이념전선이 바로 종북이냐 아니냐, 대선불복이냐 아니냐가 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민주당은 이 두 가지의 프레임에서 허우적댈 게 아니라 이 전선을 뛰어넘을 새로운 프레임을 짜야 합니다. 그런데도 제1야당인 민주당은 새누리당 앞에 매번 입 한번 제대로 뻥끗도 못한 채 판판이 당하는 <톰과 제리>의 톰 신세가 돼 있지요.
정치는 허풍이 센 데라 그 어떤 걸 계산해도 무조건 뻥튀기를 하는 습성이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유독 민주당은 매번 자신들의 지지그룹을 축소해 계산합니다. 필경 국민들은 지난 대선 때 무려 48%의 지지율을 몰아줬건만 그들은 왜 매번 자신들을 20%짜리 정당, 17%짜리 정당, 15%짜리 정당으로 비하하는 것일까요?
민주당이 너무 겸손한 겁니까? 아니면 스스로 그 정도의 지지도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어찌됐든 민주당이 꾸는 큰 꿈은 지방선거 승리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의 승리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한 어정쩡한 태도로는 아무것도 되는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대중은 서서히 민주당을 떠나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떠나온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그렇다고 안철수 신당이 대안이다 이렇게 보는 시각도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민주당이든 안철수 신당이든 현안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시민사회와 5대 종단은 지난 대선의 부정선거 문제로 시끌시끌합니다. 시민사회의 문제의식을 야권이 끌어안고 힘을 보태 함께 싸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주산알만 튕깁니다. 어떤 게 더 실익이 있을까, 말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아무런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시민들은 점점 정치무관심층으로 돌아서고 있거든요. 이렇게 하는 신물 나는 정치, 너나 하세요. 그러나 국민이 정치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결국 득을 보는 것은 새누리당과 기득권 계층입니다. 중산층과 서민은 발 붙일 데가 점점 없어지는 것입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말합니다. 민주주의 기반이 무너지면 우리는 곧장 후진국이다. 네, 그런데도 지금 그대 무얼하고 계십니까. 우리 국민만 불쌍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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