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여왕이 성탄절을 맞이해 한 동성애자에 대한 사면으로 다른 동성애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겼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면 '사면'이 아니라 '사과'여야 했다. 한 개인의 성적 취향을 문제 삼아 '화학적 거세'를 강제해 독사과를 먹고 죽음에 이르게 한 국가 폭력에 대한 사과(謝過) 말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전쟁을 최소한 2년은 단축시킨 에니그마 코드(독일군의 암호체계)를 해독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뛰어난 수학자인 앨런 튜링이 크리스 그레일링 법무장관의 요청으로 여왕의 '왕실사면특권'(Royal Prerogative of Mercy)에 의거해 사면을 허용받았다"고 24일 보도했다. 그레일링 법무장관은 사면을 발표하면서 뒤늦게 이렇게 칭송했다.
"앨런 튜링 박사는 훌륭한 심성(brilliant mind)을 가진 특출한 인간이었다. 그의 명석함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블레츨리 파크'에서 구현되었다. 그는 거기서 독일의 암호체계를 깨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전쟁을 종식해 수천만 명의 인명을 구했다."'독사과'의 주인공이 된 비운의 천재 수학자
컴퓨터의 개념을 만든 천재 수학자이자 대영제국 훈장(OBE)을 받은 전쟁 영웅이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한 입 베어 문 독사과'의 주인공이 된 비운의 과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이 24일자로 사면된 것이다. 1952년 당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유죄선고와 함께 '화학적 거세' 처분을 받은 지 61년, 2년간의 강제치료 도중에 시안화칼륨(청산가리)을 묻힌 사과를 먹고 죽은 지 59년만의 사면이다.
1939년 런던 북서쪽으로부터 80㎞ 떨어진 블레츨리 파크(Bletchley Park)에 있는 정부암호학교(Government Code and Cypher School)에 영국 최고의 수학자와 암호학자들이 집결했다.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하기 위한 지식인들의 집단 캠프로 블레츨리 파크가 선정된 이유는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중간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한때 최대 1만 명에 가까운 인력이 일했던 블레츨리 파크에 단연 최고의 두뇌는 앨런 튜링과 토미 플라워스(Tommy Flowers)였다.
당시 독일 수뇌부는 암호를 만드는 기계인 에니그마의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굳게 믿었다. 커다란 타자기처럼 생긴 이 기계는 자판으로 알파벳을 치면 복잡하고 난해한 형태로 구멍을 뚫었다. 이렇게 펀칭된 것을 읽어서 해독하는 암호풀이 기계인 에니그마는 평이한 문장을 이해할 수 없는 글자 배열로 바꾸어 2200만 개의 암호조합을 만들어내 나치의 암호 생성을 담당했다. 또한 에니그마는 암호화된 메시지를 푸는 데도 이용되는데, 독일 육-해-공군, 철도 등 여러 곳에서 만든 다양한 모델이 있었다. 전달할 문서가 타이핑되어 에니그마를 통과하면서 암호화되면 에니그마 없이는 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케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King's College) 출신으로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갓 수학박사(1938년)를 딴 튜링이 난공불락의 암호체계로 여겨진 에니그마의 수수께끼를 깼다. 그가 1939년 설계한 초고속계산기 더 봄브(The Bombe)는 매일 바뀌는 독일 암호문의 배열을 단 몇 시간 안에 풀어냈다. 토미 플라워스가 설계한 전자식 암호해독용 컴퓨터 콜로서스 마크1(Colossus Mark Ⅰ)을 만드는 데도 결정적 기여했다.
그 덕분에 영국은 독일 유보트(U-boat)의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었다. 영국 상선들은 유보트를 피해 사람과 화물을 실어 날랐으며, 영국 전함들은 유보트를 격침시켰다. 1944년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콜로서스 덕분이었다. 전쟁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나중에 독일의 위협을 저지한 단 한 사람을 꼽으라는 질문에 앨런 튜링을 지목했을 정도였다.
남자를 사랑한, 그래서 위험했던 '컴퓨터의 아버지'
1912년 런던에서 태어난 튜링은 기숙학교 시절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기인(奇人)이었다. 그의 첫사랑도 기숙학교에서 만난 남학생이었다. 학문과 연구가 다른 무엇보다 중시되는 케임브리지와 블레츨리 파크에서는 동성애도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동성애 성향이 드러났을 때 학교나 학계와 달리 일반 사회는 가혹했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외설행위'의 범죄였다. 영국에서 동성애 처벌법은 1967년에야 폐기되었다. 게다가 그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했으며 고지식했다.
어느 날 튜링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범인은 그의 과거 애인과 그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동성애자는 동성애가 발각되어 처벌받는 것을 두려워해 경찰에 신고하지 못할 것으로 오판했다. 고지식한 튜링은 범인을 신고했고, 어떻게 범인인 줄 알았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동성애 관계를 털어놨다. 그는 남성과의 성행위를 인정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법원은 컴퓨터 개념을 만들어낸 2차대전의 숨은 영웅이라는 점을 감안해 징역형 대신 '화학적 거세'를 제안했다.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그는 여성 호르몬의 일종인 에스트로겐을 투여받는 가운데 점차 우울증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성적 취향으로 타인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동성애자였기에 비밀정보 접근권을 잃어 직장인 영국 정보통신본부(GCHQ)에서 수행하던 암호해독 연구도 그만둬야 했다. 공교롭게도 제2차대전 전부터 냉전 초기 단계까지 17년 동안 외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소련 정보기관 KGB와 협력해온 해럴드 킴 필비, 도널드 맥클린 등 케임브리지대 출신 간첩 5인방이 영국 방첩기관 MI5의 수사망에 포착된 것은 1951년 5월이었다.
그는 국가폭력의 수모와 모멸을 겪은 지 2년 만에 청산가리의 일종인 시안화물을 묻힌 사과를 먹고 죽었다. 이 때문에 애플의 로고가 컴퓨터의 아버지인 튜링이 먹은 독사과를 오마주한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스티브 잡스는 나중에 질문을 받고 "사실이 아니지만, 그랬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의 죽음은 자살이 정설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자살이 아니라 실수로 독극물이 묻은 사과를 먹은 사고사라고 주장했다.
영국 정보기관에 의한 타살설도 여전히 제기된다. 미국 플로리다대 교수이자 작가인 데이빗 리빗이 쓴 책 제목 <너무 많은 것을 알았던 남자 : 앨런 튜링과 컴퓨터의 발명>(The Man Who Knew Too Much : Alan Turing and the Invention of the Computer, 2006) 처럼, 그는 컴퓨터, 핵무기, 암호 시스템 등 소련이 탐낼 만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당시 소련은 협박에 취약한 동성애자들을 공작의 타깃으로 삼았다. 실제로 나중에 간첩으로 확인된 '케임브리지 5인방' 중에서 동성애 관계라는 소문이 돌던 두 명의 영국 외교관이 소련으로 도망친 사건도 51년 5월에 발생했다.
'극악한(appalling)' 국가폭력의 희생자
<가디언>은 데이빗 리빗을 인용해 "튜링은 자신이 보안상의 위험인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경찰에 의해 추적당하고 쫓기고 있다고 느꼈고, 유죄 선고는 그에게 심오하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다"면서 이렇게 전했다. "50년대 영국에서는 동성애자인 그가 러시아 첩보망에 현혹되어 다른 편(적국)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동성애 배신자'라는 편집증이 있었다. 그러나 앨런 튜링은 너무 정직했고, 그래서 애국적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밝혔다.
튜링이 1954년 사망했을 때 그를 칭송한 부고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위대한 업적은 그때까지도 국가 기밀이었다. 세월이 흘러 비밀에 해제되고 그가 처음 개념을 정립한 컴퓨터 시대가 개막하자, 네티즌들은 캠페인으로 영국 정부에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2011년에 시작된 온라인 사면 청원 서명자는 그의 탄생 100주년인 지난해 11월 마감할 때까지 3만7404명이었다. 2009년 9월 당시 고든 브라운 총리는 튜링이 받은 '극악한(appalling)' 처벌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사면 청원은 거부되었다. 근거는 당시 튜링은 '범법자'였고, 적법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데이비드 카메룬 영국 총리는 24일 튜링을 '비범한 인물(remarkable man)'로 묘사했다. 카메룬 총리는 "그의 행동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명을 구했다. 그는 종종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로 언급되고 자신의 상당한 과학적 업적을 통해 뛰어난 국가적 유산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블레츨리 파크 트러스트'의 책임자인 이아인 스탄덴(Iain Standen)은 "사면은 그가 제2차대전 암호 해독뿐만 아니라 컴퓨팅의 발전 분야에서도 뛰어난 공헌을 한 것에 대해 진전된 인식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디언>이 전한 사면 반응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옥스퍼드대 수학과 연구교수이자 튜링의 전기 <The Enigma>의 저자인 앤드류 헛지(Andrew Hodges) 박사는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사면'이 어떤 법적인 원칙을 구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면서 "LGBT 권리 운동이 법적인 보장으로 완전히 구현되는 것이 모두를 위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헛지는 "더 실질적인 조치는 냉전 시대에 튜링이 GCHQ를 위해 수행한 비밀 업무에 관한 파일을 공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GCHQ는 올해 미국 국가안보국(NS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세계적인 불법 도-감청기관'이라는 유명세를 탔다.
"여왕의 사면은 너무 늦게 나왔다"영국 상원에 청원을 소개한 자유민주당 로드 샤키 상원의원은 "사면은 튜링이 겪었던 잔인함과 불의에 대한 약간의 보상을 했을 뿐"이라며 "단순히 게이라는 이유로, 튜링처럼 그들의 신념이 무시되는 유죄를 선고받은 모두를 위한 캠페인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게이 인권운동가 피터 태첼은 "여왕의 사면은 너무 늦게 나왔을 뿐만 아니라 지난 20세기에 피해자 없는 동성애 관계로 유죄판결을 받은 다른 5만명이 넘는 남자들에게도 늦은 것이다"고 강조했다.
LGBT는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성적 소수자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동성결혼 인정 등 성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점차 변화되면서, LGBT를 대상으로 한 금융상품인 핑크머니(pink money, 동성애자의 구매력)가 주목받고 있다. 여왕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너무 늦게 배달되었지만 튜링이 국가폭력에 의해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죽음에 이른 50년대와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