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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원숭이 그림자>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작품 무대는 '피스'라고 하는 숲이며, 부정선거로 당선된 숲통령 먹바위 딸과 평화를 염원하는 숲민들의 한 판 대결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숲을 무대로 한 우화소설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저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재를 무사히 끝낼 수 있도록 독자 여러분의 아낌없는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필자말

평화 는 어디에
평화는 어디에 ⓒ 강기희

"숲얼단은 이번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한 차례 투석전이 벌어진 후 시위대는 뒤로 물러났다. 먹바위 궁은 견고하고 단단하여 몇 개의 돌로 점거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더구나 숲얼단과 궁수비대의 반격은 생각 이상이어서 시위대는 피해만 입은 채 광장으로 돌아왔다.

어둠이 내리면서 시위대는 더욱 늘어나 숲 광장을 가득 채웠다. 긴 밤이 지나고 해가 쨍하고 떴다. 아침 식사는 다람쥐와 청설모가 맡았다. 수천 마리의 다람쥐와 청설모가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나르는 모습은 너무도 장엄하여 마치 다람쥐족과 청설모족의 대이동처럼 보였다. 그 장면을 목격한 시위대는 더욱 목청을 높여 먹바위 딸의 하야를 외쳤다.

식사를 마친 시위대는 먹바위 딸이 숲통령에서 물러나야 하는 이유를 적어 먹바위 궁에 전달했다. 오후엔 먹바위 궁 앞에서 선거무효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집회는 밤까지 이어졌고, 곳곳에서 시위대와 숲얼단과의 충돌도 생겨났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숲얼단 단장인 늑대가 자정을 기해 긴급담화문을 발표했다.

                                                  <담화문>

존경하고 사랑하는 S·피스 숲민 여러분! 금번 소요에 대해 얼마나 걱정과 염려가 크십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에 치러진 숲통령 선거는 피스가 숲민투표제를 실시한 이래 가장 공명정대하게 치러진 선거였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불순세력들이 기다렸다는 듯 선거를 치름에 있어 마치 엄청난 부정이 있었던 것처럼 거짓 선전 선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번 숲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배포하는 것은 물론이요,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된 숲통령을 물러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선량한 숲민을 선동하거나 피스 정보기관인 숲얼단에 대한 각종 음해와 왜곡, 불법과 탈법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는 피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적을 이롭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이에 우리 먹바위 딸 정부는 불순세력의 공세적 행동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E·피스의 분열을 획책하고 N·피스의 대남 전략을 추종하고 있는 불순세력들에게 선거에 관한 선전 선동을 멈추라는 준엄하고도 강력한 경고를 내리며, 이 시간 이후부터 피스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는 불순 주동세력의 검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더불어 숲민 여러분께 약속하건데, 숲얼단은 이번 선거에 털끝만치도 개입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씀드리며 불순세력의 주장 또한 일고의 가치가 없으니 현혹되지 마시길 특별히 당부 드립니다.

                                       -S·피스 숲얼단 단장 늑대-

"역사상 가장 공명정대한 선거였다니!"

담화문이 발표되자 숲얼단 소속의 딱따구리와 박쥐 등이 숲을 돌며 담화문을 뿌렸다.

"에이, 부정선거가 아니라는구먼. 그럼 그렇지."

"젊은 것들이 뭘 안다고 부정이다 뭐다 하며 나대나. 쯧쯧."

"그러게 말이네. 우리가 이만큼이라도 살게 된 게 다 먹바위 숲통령 때문이지 누구 때문인가."

"암, 두말하믄 잔소리지."

"저놈들 필시 북에서 보낸 간첩들일 거여."

"맞네. 맞어. 먹바위 공주님이 숲통령에 당선되니 훼방을 놓으려고 벌이는 짓이 틀림없어."

"이참에 저 빨갱이 놈들을 확 쓸어버려야지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네."

"걱정 말게. 숲얼단이 저놈들을 감옥소로 잡아 처넣는다고 하잖나."

담화문을 읽어 내려가던 소쩍새와 부엉이가 시위대를 바라보며 말을 주고받았다. 늑대가 발표한 담화문은 먹바위 궁과 숲 광장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던 시위대에게도 전달되었다.

"이런 잡놈들을 봤나. 이번 선거가 피스 역사상 가장 공명정대했다니!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숲민 모두가 아는데 이래도 되는 겨?" 

사슴이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먹바위는 친원파 일색으로 구성된 대의원 선거에서 숲통령 자리에 올랐던 탓에 내심 찔리는 구석이 있었지만 먹바위 딸은 부정이든 공정이든 숲민 모두가 참여하는 직접투표에서 당선되었으니 당당하다, 그러니 이제부터 누구든 부정을 가지고 따지거나 까불면 죽는다, 뭐 이런 선전포고가 아니겠어."

독수리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보탰다.

"우리를 불순세력으로 몰고 가는 걸 보니 단순히 선전포고쯤으로 끝날 것 같진 않은 걸."

토끼가 나섰다.

"그래, 먹바위 딸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니 부정선거 건은 어떻게든 덮으려고 할 거야. 그렇다면 생각보다 큰 시련이나 파도가 밀려올지도 모르지."

말을 마친 담비가 먹바위 궁으로 시선을 돌렸다. 밤이 깊었지만 궁 주변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집권 초기인데 막무가내로 밀어 붙일까?"

청설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설모야, 늑대를 가벼이 보지 마. 저 놈은 누구보다 먹바위 딸의 의중을 잘 읽는 놈인데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놈이지. 대머리독수리가 그랬듯 어쩌면 저놈도 우릴 본보기를 삼을지 모를 일이야."

사슴이 어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공중에선 숲얼단 소속의 박쥐들이 저공비행을 하며 시위대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맞아. 늑대 애비도 그랬어. 원숭이 치하에 있을 때 원숭이들에게 잘 보이려고 우리 동네 절반은 늑대 애비가 죽였다고 했어. 갈아 먹어도 시원찮을 집안인 것이지." 

말을 마친 노루가 씹던 풀을 퉤하고 뱉어 냈다.   

"그렇담 우리도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냐?"

청설모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도 우리의 의지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먹바위 딸과의 더 강력한 투쟁을 선포해야지."

담비가 그렇게 말하곤 해오라기에게 성명서를 작성하라 명했다. 독수리에겐 숲얼단의 움직임을 살펴 실시간으로 보고 하라는 지시를 내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늑대의 명령 "놈들은 적이다!"

새벽이 되자 별은 더욱 총총했다. 여름밤에 내리는 이슬은 차갑다기 보다 한낮에 내리는 비처럼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먹바위 궁은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어떤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았다. 

어둑한 하늘이 벗겨지고 있었다. 주변의 경계를 맡은 다람쥐가 하나 둘 하품을 늘어놓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밤을 무사히 보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시위대도 마찬가지였다. 함성과 구호로 밤을 보낸 시위대의 구호가 시간이 지나면서 한풀 시들해 졌다.

담비도 잠시 긴장을 풀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있던 박쥐들이 일제히 먹바위 궁 반대편에 있는 계곡으로 향했다. 독수리가 박쥐들의 움직임을 느꼈지만 날아가는 곳이 먹바위 궁 반대 방향이라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박쥐들이 향한 곳은 단풍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계곡으로 사철 뜨거운 온천수가 샘솟는 온천계곡이었다. 원숭이 떼가 피스를 강점했을 땐 원숭이 전용 유원지로 쓰였으나 지금은 먹바위 가문의 소유로 되어 있으며, 먹바위가 미모의 여인과 밀회를 즐기다 부하에게 살해당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온천계곡은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먹바위 딸이 아비처럼 비밀연회를 열 때나 닫힌 문이 삐걱 열렸다. 그 계곡 입구에 숲얼단 소속 단원들이 무장을 한 채 대기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시위대를 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온천계곡에 이른 박쥐들은 숲얼단 단장인 늑대에게 시위대의 상황을 보고했다.

"단장님, 지금이 놈들을 칠 기회입니다."

박쥐의 보고를 받은 늑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원들을 불러 모았다. 

"다시 한 번 말해둔다. 먹바위 딸 각하를 숲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모두 우리의 적이다. 우리는 오늘 적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지 시위대를 해산하거나 주동자를 검거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오늘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진다. 단번에 해치우고 흔적 없이 깨끗하게 처리한다. 알겠나?"

늑대의 말에 단원들은 옛, 하고 대답했다. 며칠은 굶은 듯한 그들의 입에선 역한 술 냄새가 피어 나왔고, 양귀비라도 먹었던지 눈동자 또한 반쯤은 풀려있는 상태였다.

"작전 개시!"

늑대가 작전 개시를 알리자 정찰대인 박쥐가 하늘을 날았고 단원들은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향해 뛰어나갔다. 

"전쟁이다! 놈들을 쓸어 버리자!"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강기희 기자는 소설가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장편소설 <은옥이 1.2>, <개 같은 인생들>, <도둑고양이>,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연산> 등이 있으며, 청소년 역사테마소설 <벌레들> 공저로 참여했습니다.



#국정원#박정희#친일파#박근혜#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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