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시잖아요."지난 2012년 MBC 기자회장으로 파업 때 기자들의 제작 거부를 이끌어내 해고를 당했던 박성호 기자. 그는 "현재 MBC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누구나 다 아는 걸 왜 묻느냐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웃었지만 얼굴에선 MBC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법원은 지난 17일, MBC가 노조원에게 내린 해고 및 징계처분은 무효라고 인정했다. 또한 재판부는 "공정보도는 근로조건에 포함된다"며 파업의 정당정을 인정했다.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은 당일 "너무 떨리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아까 판결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우리 조합원들이 좋아하겠다'였다"며 "다음부터 선배가 술자리에서 '너희 불법이야'라고 말하면, 당당하게 '네가 불법이야'라고 말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의 판결 직후 MBC는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또 20일과 21일에는 <조선일보>에 재판 결과를 비판하는 광고를 냈다.
JTBC 보고 씁쓸할 줄이야...이에 박 기자는 22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기 의사표현은 자유라고 본다"라고 전제한 뒤 "변호인을 통해 유감스럽고 항소하겠다고 하면 될 것을 광고까지 내면서 사법부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게 사법부에 좋게 비칠까?"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법원 판결 관련 MBC와 JTBC의 보도가 비교되는 것엔 "두 뉴스를 해직자들이 모여 저녁 먹으며 봤다"며 "MBC 보도가 그렇게 나가서 다들 씁쓸한 상황이었는데 JTBC 뉴스를 보고 누군가가 '우리 회사보다 낫네. 어디가 MBC야?'라고 말하더라"고 말했다.
종편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MBC지만 박 기자는 "그간 조직에서 능력을 검증받고 평가받은 기자들이 다시 MBC 뉴스의 중심을 맡을 기회가 온다면 좋은 보도가 가능하리라고 본다"며 "저는 MBC 구성원들의 저력을 믿기 때문에 많이들 어렵다고 얘기하지만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희망이 실낱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희망을 믿기 때문에 다들 참으며 버티고 싸워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다음은 지난 22일 방송회관에서 만난 박성호 전 MBC 기자회장과 나는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지난 17일 해고무효 확인소송에서 승소한 후에 박 기자께서는 "저 한 사람의 목이 아닌 전체 MBC 기자의 목을 쳤다가 오늘 붙이라는 판결이 난 거라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히셨는데요."MBC 기자 전체를 해고할 수 없으니 대표로 저를 해고한 것이라고 봤거든요. 왜냐면 저희가 그때 집단적인 의사 표시를 했잖아요. 보도의 공정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과 파업 대체 인력을 뽑아선 안 된다는 주장을 집단적으로 했습니다. 이를 회사가 억압하는 과정에서 해고 등이 발생했는데, 이번 판결로 원상회복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그런 소감을 말했습니다."
- 판결 났을때 심경은 어땠어요?"기뻤어요. 지난 2년에 대한 보상을 받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저희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 받았기 때문에 저희 모두가 명예를 회복한 것 같아 모두 축하 받을 일이란 느낌이 먼저 떠 올랐어요."
- 판결을 앞두고 소송을 제기한 44명 전원이 승소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있었는데 예상 외로 법원은 44명 전원의 징계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어요."보도의 공정성에 대해서 법원이 대단히 정확한 판단을 내려 주셨어요. 저희가 보도의 공정성을 주장할 때, 사측은 특정 정파(야당)에 유리한 것만을 공정보도라고 주장하는 것 아니냐는 궤변을 펼쳤어요. 정작 자신들은 특정 정파(여당)에 봉사하는 뉴스를 계속 내보냈으면서요. 공정성이 담보되려면 객관적인 뉴스인지 또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불편부당한 뉴스인지가 갖춰져야 합니다.
또 보도 과정에서의 공정성도 중요합니다. 기자들이 언론자유를 충분히 누리면서 뉴스에 대한 의견 개진을 하고, 토론을 하면서 뉴스를 만드는 과정도 공정해야 합니다. 보도과정의 공정성 회복이 저희 목표인데 판결문을 보면 판사님이 그대로 언급 하셨어요."
"재판 승리... 우리는 정당했다"- 사측은 곧 바로 항소했고 17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를 통해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또 <조선일보><문화일보><매일경제> 판결을 비난하는 광고를 실었는데요."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기 의사표현은 자유라고 봅니다. 그러나 자사 뉴스를 통해 판결을 비난하고, 일간지에 광고하는 건 낯설고 이해가 안 가죠. 그쪽도 재판 당사자잖아요. 통상 대기업이나 정치인도 자기가 원치 않은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재판부를 직접 비난하지는 않죠. 변호인을 통해 유감스럽고 항소하겠다고 하면 될 것을 보도도 모자라서 광고까지 내다니... 사법부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게 사법부에 좋게 비칠까요?"
- 당일 JTBC 뉴스가 MBC 뉴스와 비교되어 화제가 됐는데요. "해직자들이 모여 저녁 먹으며 두 뉴스를 봤어요. MBC 보도가 그렇게 나가서 다들 씁쓸했는데, 누가 'JTBC 뉴스할 시간인데 한 번 보자'고 해서 봤죠. 그걸 보고 다들 말을 못하더라고요. 누군가가 '우리 회사보다 낫네. 어디가 MBC야?'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도 해외에서 어떤 분이 JTBC 뉴스 보고 소식 알게 됐다고 연락을 해서 씁쓸했어요."
- 정영하 전 MBC 노조위원장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MBC가 JTBC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올 줄은 몰랐다"고 씁쓸해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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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입니다. MBC 뉴스를 누가 만들고 있는지 인적 구조를 살펴보면 놀랄 일은 아니에요. 물론 많은 뜻 있는 기자들이 재건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MBC 보도 부문의 사령탑과 편집 라인, 몇몇 주요 취재부서 부장 자리에 김재철 사장 시절 불공정 뉴스의 주역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정치적 뉴스를 다루는 출입처에는 여전히 김재철에 동조했던 소수의 기자들과 파업 대체인력들이 대부분 포진해 있고요."
- MBC가 일간지에 광고낸 건 자유라고 하셨는데, 개인의 돈으로 하면 모르지만 공금으로 했다면 말이 달라지지 않나요?"노조가 업무상 배임이라고 비판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데 아닌가 봅니다(웃음)."
- 김재철 사장 해임 이후 김종국 사장이 임명되자 MBC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김재철 시즌2'가 될 것이란 시각이 많았는데요."다 아시잖아요(웃음). 일부 변화가 있긴 하지만 달라진 것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일단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부분이 없잖아요. 이번 판결에 대응하는 태도를 통해 김재철 사장 체제를 확실히 계승했음을 대내외에 천명했다고 봅니다."
- 어느덧 해고된 지 2년이 되어갑니다."경제적인 면에서는 전적으로 노조의 도움에 의존하고 있어요. 노조에 빚을 지는 셈이죠. 동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늘 있고 노조에 감사하다는 말은 몇 번을 해도 모자라요. 일 측면에서 보면 올해부터 제가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을 맡게 됐고요. 또 방송기자 연합회에서는 편집위원장을 맡아서 방송기자들이 보는 저널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좋은 저널리즘을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기사 쓰거나 인터뷰를 하고 기획하면서 알찬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간간히 기회가 있어서 현직 기자나 대학생, 고등학생들 상대로 강의도 하며 지냈습니다."
- 김재철 사장이 물러났지만 공정방송이 오히려 더 후퇴한 것 같은데요."사측이 낸 광고에는 '노조 파업의 주된 목표는 대표이사 퇴진이었다'로 나와요. 말장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5공 군사정권 시절에 '전두환 물러가라'고 외치면서 싸웠다고 해서 '그것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전두환이라는 대통령 퇴진이 목표였다'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걸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저희가 2012년 1월 초에 제작거부 들어가기 전에 지나간 1년의 보도 불공정 사례 리스트를 발표했어요. 김재철 사장 물러난 이후의 불공정 사례를 작성하면 그때보다 훨씬 더 많을 것 같아요. 악조건에서도 동료들이 일부분이라도 참여해 뉴스를 재건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시청자들이 이제는 MBC 뉴스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어요. 이번 판결 이후 한 지인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3류가 된 MBC 뉴스를 복원하는 데 애쓰시기 바랍니다. 정말 눈뜨고 못 보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MBC 복원... 저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복원이 가능하다고 보세요?"네. 어렵지만 전 가능하다고 보고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여러 가지로 훼손은 되었지만, 반세기 이상의 굳건한 공영방송도 사람(사장)이 누군가에 따라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여줬잖아요. 역설적으로 공영방송의 가치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 그간 조직에서 능력을 검증받고 평가받은 기자들이 다시 MBC뉴스의 중심을 맡을 기회가 온다면 복원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저는 MBC 구성원들의 저력을 믿기 때문에 많이들 어렵다고 얘기하지만 가능할 겁니다. 희망이 실낱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희망을 믿기 때문에 다들 참으며 버티고 싸우는 것 아닌가 싶어요."
- 판결 직후 YTN 해직 기자들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었습니다."저희와 같은 입장이긴 하지만 그분들은 해고된 지 만 5년이 넘었잖아요. 저도 이제 2년 조금 안 되었는데 그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죠. 그분들의 모습은 3년 후 저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는 않아요. 모든 일에도 순서가 있는데 그분들 사태는 오래되었고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었어요. 저는 그분들이 먼저 빨리 풀리면 좋겠어요. 그분들이 잘 풀려야 저희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죠(웃음)."
- 현재 공정방송 복원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여러 사람이 방송사 사장선임이라든지 지배구조 개선 문제 등을 말씀하세요. 그런 것도 일리는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조금 더 본질적인 얘기를 하고 싶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는 건 제도는 개선해야 하지만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 수준, 가치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이 시점에 공영방송의 공정성을 복원하려면 MBC의 기자들이나 경영진이든 공영방송이 무엇인가, 공영성 가치에 대해서 처절하고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처럽 다매체 다채널의 각종기기가 발달되어서 사람들 관심이 점점 파편화되고 방송에 산업 논리가 득세를 하는 때에 공영방송이 할 수 있는 책무는 더 있을 수 있거든요. 공영방송이 세상을 제대로 비추는 거울이 돼야 하고 세상의 여러 가치들을 다는 저울이 되어야죠. 그런 기능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필요한데, 공영방송의 종사자들이 단순히 창조와 경제를 결부시키는 개념에만 매달려선 안 되죠. 민주사회의 한 축으로서 공공서비스를 한다는 의식을 철두철미하게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 현 정권의 언론정책, 어떻게 보세요?"공영방송에 국한해서만 보면 간섭도 안 하고 배려도 안 하는 것을 기조로 삼은 건 아닌가 추측이 되요. 방송 산업에는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방송의 공정성과 공영성은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 정 전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곪아 터져서 박근혜 정부가 독박 쓸 것"이라고 했는데요. "공영방송이 내부적으로 골병이 들었다는 건 전 정권 때부터 나온 이야기였고,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총선과 대선 때 약간 관심을 보이는 듯했어요. 안타까운 것은 정권 출범한 이후엔 그런 논의가 어디서도 들리지 않아요. 선거 때는 관심을 가져야 했지만, 집권하고 나니까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됐거나, 집권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정부가 논의할 순번이 아닌 밑바닥 의제가 아닌가 싶어요."
- 2주 전 박대통령의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이 논란이 됐어요."사실 저 안 봤어요(웃음). 물론 기사를 통해 어땠는지는 알죠. 씁쓸했어요. 1년 만에 기자회견을 한다는 것 자체도 대통령을 취재원으로 삼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대단히 답답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정작 기자회견에서 벌어진 몇 가지 논란을 보면서, 국민들 눈에 기자들이 어떻게 비쳤을까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고 얼굴 화끈 거렸어요."
-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오마이뉴스> 독자분들이 저희를 많이 응원해 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요즘 MBC 뉴스를 본다고 말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었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파요. 저는 가급적 MBC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안 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제가 돌아가야 할 친정이고 일으켜 세워야 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MBC 복원은 저희들 의지만으로 될 것이라고 보진 않아요. 여러분들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셔야 합니다. 지금 하는 걸 보면 마땅치 않겠지만 애정까지 버리지 않으시길 부탁드리고, 곧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가 100회 돌파하는데 다 같이 축하해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