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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대학서열화 타령이다. 발단은 삼성에서 나왔다. 지난 15일 새로운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편안을 발표한 삼성그룹이 24일 전국 200여 개 대학에 '총장 추천 인원'이라는 것을 통보했다. 대학총장에게 할당된 인원만큼의 인재 추천권을 부여하고 상시로 지원서를 접수받아 서류 심사 후 SSAT(삼성직무적성검사) 응시 자격을 주겠다는 수시 채용 방안이다.
난리가 났다. 추천 할당 인원이 많이 배정된 학교에서는 광대뼈가 올라가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지만, 배제된 대학들은 대학의 서열화·기업화이자 지역차별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제 대학마저 '삼성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냉소도 뒤따른다. 한국 대학의 명줄을 삼성이 쥐고 흔들 것이라는 식의 반응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한국 대학의 '삼성 의존'이나 서열화는 '총장 추천제' 때문에 나타날 미래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이 오만방자하기까지 한 '총장 추천제'는 벌써 갈 데까지 간 삼성 종속과 대학 서열화 현상이 만들어 낸 결과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 총수 일가의 비자금 비리를 폭로하면서 1999년 삼성그룹과 <중앙일보>의 계열분리가 위장 분리였다고 폭로한 바 있다. 삼성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삼성과 <중앙일보>는 오랜 인연을 가져온 관계였다.
어떻게 일개 신문사가 한국 대학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가 1994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는 '대학평가'의 위력을 본다면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학평가는 국가의 재정지원을 위한 평가, 구조조정을 위한 평가, 대학인증을 위한 평가 등 매우 다양하지만,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이 모든 대학평가 중에서도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특징은 평가를 통해 1위부터 순위를 발표하는 철저한 줄세우기에 있다. 매년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발표되면 각 대학의 희비가 바뀐다. 평가 결과가 좋은 대학은 홍보에 여념이 없고, 평가 결과가 나쁜 대학은 책임자가 징계를 받기도 한다.
단지 언론사가 재미삼아 진행하는 '순위 매기기'가 아니다.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2011년 감사원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신규직원 채용을 위한 서류전형과 관련해 '주의' 판정을 내렸다. 고용정책기본법과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학력과 학벌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어 있지만, 국내 4년대 대학의 등급을 상, 중, 하로 나눠 차별적인 점수를 매긴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공·어학·학점점수가 만점이고 국어능력 2급 이상, 국제재무위험관리사(FRM) 자격증을 갖춘 한 응시자는 대학등급에서 '중' 판정을 받아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이 대학등급을 나누는데 활용된 것이 바로 <중앙일보> 대학평가다.
준정부기관조차 신입사원 채용에 아무런 공신력이 없는 민간 언론사 대학평가 자료를 활용할 정도니, 다른 기업이 어떨지는 뻔한 일이다.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도 아니다. 각 대학의 경영진은 대학평가 순위 변동 여부로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는다. 당연히 평가에서 하나라도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상당수 대학들이 <중앙일보>를 위시한 대학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대학평가 전담기구'를 상설화하고 있다.
왜 대학은 <중앙일보>에 쩔쩔 매는가?지금 한국 대학들은 '대학평가'에 지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대학이 대학평가 앞에 한없이 작아지냐고?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학구조는 1990년 중반 이후 질적·양적 변화를 경험했다. 1994년부터 세계화를 부르짖던 김영삼 정부는 경쟁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한국사회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선택된 곳이 대학이다. 1995년 '5·31교육개혁안'을 발표하면서 기업 논리를 대학에 적용했다. IMF외환위기 2년 전의 일이다. 대학을 양적으로 늘리고, 기업처럼 대학 간 무한 경쟁을 통해 대학발전을 유도하겠다는 논리였다.
1996년부터 시행된 대학설립준칙주의로 인해 2010년을 기준으로 일반대는 38개교, 전문대학은 19개교, 대학원대학은 37개교가 늘었다. 지금 전체 일반대의 18.8%, 전문대학의 13.0%가 이 기간에 신설됐다. 90년대 중반 50%에 불과하던 대학진학률(전문대 포함)은 8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높아졌고, 2002년을 기점으로 전체 대학생수는 300만명을 돌파했다.
대학의 양적 팽창은 질적인 변화를 유도했다. 마음만 먹으면 대학을 가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게 된 이상, 이제 대학생은 사회적 성공이 보장된 엘리트 집단이 아니게 되었다. 희소성이 사라진 것이다. 대학의 양적 팽창과 대학생의 지위 하락은 다시 학벌과 대학서열체제의 강화로 이어졌다. 변별력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학벌과 대학서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서열화와 비할 바가 못 된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여다 보자. 우리 나라에서 대학진학률이 가장 낮은 지역이 어딜까? 놀랍게도 서울이다. 서울 중에서는 어딜까? 더 놀랍게도 명문대에 가장 많이 진학한다는 강남지역이다. 이 지역 수험생들이 대학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다. 서열화가 심화되어 '어떤 대학', '어떤 과'에 가느냐가 더 중요해진 상황에서 고소득층 자녀들이 대입에 유리한 재수를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평가'의 위력은 절대적인 한계선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대학과 수도권 대학의 차별은 이제 너무 둔한 구분이다.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 서울 중에서도 명문대, 명문대 중에서도 좋은 과로 이어지는 서열화의 촘촘한 계단은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좋은 과 내에서도 개인 간 경쟁은 한층 심화된다. 모든 대학이 높은 순위를 얻을 수 있는 지표를 충족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 결국 대학을 평가하는 지표는 대학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절대반지'가 된 셈이다.
대학 지배하는 절대반지, 좋은 대학은 돈 많은 명문 대학?그렇다면 무엇으로 대학을 평가하는가? 학생들을 얼마나 잘 교육시켰는지? 훌륭한 인성을 갖춘 인재를 얼마나 양성했는지? 천만의 말씀이다. 가장 위력적인 절대반지인 <중앙일보> 대학평가 지표를 보자.
<중앙일보>는 2013년 기준, '교육여건', '국제화', '교수연구', '평판 사회진출도' 등 총 4개 분야 31개 지표를 사용하고 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 홈페이지에 들어가 세부지표를 찾아보라.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교수당 학생수나 교수확보율, 학생당 도서자료 구입비, 연구비 등의 항목은 재원 투입을 필요로 하는 지표다. 조금이라도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은 어디서 나오겠는가? 알바와 대출로 힘겹게 마련한 등록금에서 나온다.
좋은 점수를 위해 써야 하는 돈은 얼마 정도일까? 정답은 '다른 대학보다 많이'다. 2002년 즈음부터 시작된 대학등록금의 폭발적 인상은 '물가인상' 때문이 아니다. 상대평가에 의존한 대학 간 무한경쟁의 필연적 귀결이다. 순위를 올리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발전 이데올로기'는 등록금을 올리는 학교 당국의 논리였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포섭되었다.
물론 평가지표의 위력은 대학등록금을 낮추기도 한다. 등록금을 10원이라도 올리지 않으면 당장 학교가 무너질 것 같이 호들갑을 떨었던 대학들은 2012년부터 등록금을 인하하기 시작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평가지표에 등록금 부담 완화 지수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의 경우, 2005년까지 도입했던 '강의실 정보화 비율'은 대학 강의실의 첨단화 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시설비 투자를 급등시켰지만, 2006년부터는 대학 간 변별력이 없다는 이유로 평가지표에서 제외했다. 평가의 목적이 '서열화'에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012년부터는 '기숙사 수용율'을 삭제했다. 이제 대학을 공사판으로 만든 기숙사 짓기 붐은 당분간 사라질 전망이다.
흥미로운 것은 총 300점 중 60점이 배정된 '평판 사회진출도'다. 신입사원으로 뽑고 싶은 대학, 업무에 필요한 전공 또는 교양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는 대학, 향후 발전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대학 등의 지표는 국내 대기업, 중소기업, 외국기업 인사 담당자와 정부 부처 인사 담당자 750명의 설문으로 평가된다. 명문대 인적 네트워크는 물론 기업의 입김이 이미 '좋은 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에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경쟁 패러다임 남겨둔 대학구조조정, 대안 아니다이미 기업의 논리를 추종하고, 무한 경쟁에 꼬꾸라지는 대학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의 '총장 추천제'를 비판하거나 막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문제는 대학을 지배하는 이 무한경쟁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느냐다.
늦출 일이 아니다. 2018년은 대학정원이 대학을 가는 연령대를 의미하는 학령인구보다 많아지는 시점이다. 이것은 우리 대학구조의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필연적으로 무너지는 대학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한국 대학구조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지금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이기도 하다.
좋은 기회라는 의미는 이것이다. 대학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된 상황에서 국립대와 사립대의 비율이 2:8 정도인 민간 의존율을 보다 공공적으로 바꿀 수 있다. 지역 국립대를 집중 육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부실 사립대를 인수하여 국립대(정부지원 사립대 포함)와 사립대의 비율을 8:2 정도로 역전시킬 수 있다.
문제를 악화시키는 방향은 이렇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서열화된 경쟁체제를 바탕으로 일명 '부실 대학'을 선정해 퇴출하고, 양적 규모를 줄여 경쟁 구도를 지속시키는 것이다. 위의 평가지표에서 보았듯이, 이런 정책이라면 어떤 대학이 퇴출될지는 뻔한 일이다. 제 아무리 특성화되어 있고,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는 대학일지라도, 돈 없고 인지도 낮은 비명문 지방 사립대학부터 줄줄이 퇴출될 것이다. 이런 결과는 대학의 기형적인 수도권 집중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박근혜 정부의 선택은 무엇일까? 교육부는 28일 대학구조조정안 발표를 예고했다. 전체 대학 정권을 일괄 감축하면서 평가에 따른 대학 퇴출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렇다면, 여전히 지금의 문제는 남겨둔 채 경쟁 패러다임을 유지하는 후자의 방향이다. 경쟁이 계속 가능하도록 규모만 줄이는 방식으로는 기업에 종속된 대학, 무차별하게 서열화된 지금의 대학문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결과가 뻔한데, 뻔한 길로 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개별 대학의 입장에서 벗어나, 한국 대학교육의 패러다임을 전면 수정해야 할 시점이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밤새 알바에, 대출금에 시달리면서도 취업조차 못하는 대학생은 계속 울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