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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옛말은 이제 말 그대로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최근 세상은 더 짧은 주기로, 훨씬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명절에만 가게 되는 고향 할머니 댁에 바뀐 풍광에 어색해하는 일은 연례행사가 되었으며, 학기 중에 잠시 타지에서 공부하다가 방학 때 집에 들르기만 해도 새로 뚫린 길에, 새로 생긴 건물들에 놀라곤 한다. 사회의 하드웨어마저 이렇게 빠르게 바뀌는 중인데, 소프트웨어들, 특히나 트렌드에 민감한 대중문화는 어떻겠는가?

필자가 '포켓몬스터'에서 벗어나 쇼 프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던 2000년 초반부터 현재까지, 대중문화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변화는 걸 그룹들에게 있다.

2007년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로 시작된 걸 그룹 열풍은, 무려 7년이 지난 지금에도 현재진행 중인데, 당시의 걸 그룹들과 비교했을 때 지금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7년 당시의 걸 그룹들은 매력은 한 마디로 '풋풋함'이었다. 2, 30대의 기성 가수들 사이에서 묘령의 나이의 그들의(그녀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했고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지금의 걸 그룹들이 처한 상황은 7년 전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근 몇 년 사이에 큰 화두, 섹시 코드

다른 가수들 사이에 서 있기만 해도 돋보였던 7년 전과 달리 지금의 '걸 그룹 전성시대'사이에서 그들은 돋보이기위해, 알려지기 위해 엄청난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가장 주된 '노력'은, 근 몇 년 사이에 큰 화두가 된 노출을 통한 섹시 코드이다.

사실 여성 연예인들이 자신의 섹시함을 어필 하는 것 자체가 문제되는 행위는 아니다. 섹시함을 콘셉트로 하는 가수들은 십여 년 전에도 있었고, 방송위원회는(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전신) 그들을 심의하기 위해서19금 딱지를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최근 걸 그룹들이 섹시코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그들의 무대내·외에서의 퍼포먼스가 도를 넘어섰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후 방통위)가 그들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셀 수 없이 많은 타 그룹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걸 그룹들은 더더욱 헐 벗고 있고, 매우 질 낮은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있다. 수많은 걸 그룹의 가수들은 미성년자들에게 시청이 허락된 공중파 방송에서 가슴을 다 드러낸 의상과 엉덩이를 겨우 가리는 치마(그들은 그 의상을 치마라고 주장한다)를 입고 무대에 드러누워 '쩍벌'춤을 추며 뇌쇄적인 눈빛을 보낸다.

이제 살색 전쟁터에 데뷔를 하는 새로운 그룹은 대중들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얼음물에 입수를 한다, 그것도 물에 들어가면 속이 훤히 비칠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고 말이다. 의문이 안 생길 수 없다.

"정녕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가?"

올바른 규제를 하지 못하는 방통위에도 큰 문제가 있지만, 가수들을 벗기는 연예기획사들의 관점을 한 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들이 섹시코드에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은 선정적인 노래나 춤으로 성공한 타 기획사의 연예인들을 보면서 섹시코드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고 말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프로이드가 말했듯이 성적 욕구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 중 하나이고, 원초적 욕구를 겨냥한 마케팅은 분명히 시장에서 효과가 있다. 그러나 연예 기획사들이 간과하는 점은 선정성으로 승부를 본 걸 그룹들은, 시청자들에게 '수 없이 많은 다른 섹시한 걸 그룹들 중의 하나'로 밖에 인식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가요계에 같은 콘셉트의 걸 그룹은 차고 넘친다. 새로 데뷔하는 그룹이 요염한 퍼포먼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해서 결코 대중의 뇌리에 기억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선정적인 안무와 의상으로 화제가 되어 여러 포털 사이트의 대문을 장식했던 수많은 신인그룹 중에 아직까지 기억나는 그룹은 몇이나 되는가? 필자에게는 문제의 사진을 하나하나 다 클릭해 본 기억은 있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이름은 없다.

대중들에게 섹시함은 더 이상 차별화의 전략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섹시코드로 흥행을 한 뒤 색깔을 바꿔보겠다는 기획사들의 변명은 말 그대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데뷔한 걸 그룹들이 가수로서 다른 콘셉트를 시도해서 실패했을 때 그 다음 번 선택은 무엇일까? 보나마나 그들은 가장 안전한 선택, 다시 섹시콘셉트로 회귀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그룹은, 많은 다른 관능미의 걸 그룹들과 함께 시나브로 시간의 수면 아래로 사라질 것이다.

결국 걸 그룹들에게 '섹시함'이란, 단기적으로는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게 해주지만 장기적으로 그들을 파멸시키는 마약과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더 건전한 대중문화를 위하여, 미성년자들에게 악영향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부모들을 위하여, 연예 기획사의 연예인들의 롱런을 위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온 가족이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더 이상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지 않고 싶은 한 청년을 위하여, 섹시 콘셉트에 대한 재고를 요청하는 바이다.


#걸 그룹#섹시코드#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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