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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골의 귀향.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이 한을 어찌할꼬?"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회장 강병현, 아래 진주유족회) 회원들이 마산 경남대에서 유해를 싣고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진주 명석면 용산소개에 임시안치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진주유족회는 10년 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항)리 산태골 숯막과 폐광 등에서 발굴됐던 유해 163구를 진주로 옮겼다. 2002년 태풍 '루사' 때 산사태가 나면서 일부 유해가 발견되어 2004년 발굴되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사진은 유골의 일부.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사진은 유골의 일부. ⓒ 윤성효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 윤성효

당시 발굴은 고 이상길 경남대 교수(사학)팀이 맡아서 했고, 그동안 유해는 경남대에서 보관해 왔다. 경남대는 학교 사정으로 유해를 더 이상 보관할 수 없게 되었고, 진주유족회가 진주로 가져온 것이다.

이 유해의 주인공은 진주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진주유족회는 "주민들을 탐문한 결과, 1950년 7월 중순경 진주 방향에서 버스로 실려온 민간인들이 유해가 발견된 곳에서 집단으로 학살되었다"고 밝혔다.

진주유족회는 "인근 지역을 정밀조사한 결과, 유골이 드러난 곳과 인접해 있는 곳에 폐광산이 있었고, 폐광 인근에 서너개의 사람이 쌓은 것이 분명한 돌무더기들을 발견하였다"며 "인근지역 주민들은 한결같이 폐광과 유골이 드러난 자리 등 서너곳에서 민간인들이 학살되었다고 증언했고, 실제로 그 주검들을 묻는 데 동원된 주민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유해 속에 다량의 물품이 발굴되었는데, 서류 한 점에 '송본(宋本)'이라는 글자가 확인되었다. 송씨 성을 가진 사람으로 추정되었는데, 더 이상 확실한 내막을 알 수 없었다.

진주유족회는 진주시에 유해를 안치할 장소를 요구했지만 거부당했고, 진주시 명석면 용산고개 사유지를 빌려 임대료를 주고 컨테이너 2개에다 임시 안치하기로 한 것이다. 진주유족회는 경남대에서 유해를 트럭 2대에 나눠 싣고 경남도청 앞으로 와 노제를 지냈다.

"진주에 임시 안치... 정부, 좀 더 성의있는 태도 보여야"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 윤성효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 윤성효

진주유족회는 정부에 DNA 검사를 요청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강병현 회장은 "한국전쟁 전후 여양리 마을 주민들 속에 사람들을 태운 차량이 올라갔다는 증언이 있다"며 "정부에 DNA 검사를 요청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진주유족회 정연조 사무국장은 "진주에는 임시 안치를 하는 것인데, 앞으로 안치소도 있어야 하고 위령탑이나 추모공원도 있어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조금만 더 성의있는 태도를 보여야 하며, 위령사업 등을 통해 후세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우(70, 진주)씨는 "당시 학살당한 분들은 20~30대였고, 부인들은 젊어서 혼자가 되었으며, 저희 아버지도 제가 6살 때 파출소에 끌려갔다가 돌아오시지 못했다"며 "저는 7살부터 지게를 지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머니는 젊어서 혼자되어 온갖 고생을 하시다 96세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족들은 모두 엄청나게 고생했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연좌제 때문에 피해도 보았으며 설움을 정말 많이 겪었다"며 "유해를 보관할 장소만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정부는 물론 지자체도 거부했는데, 억울하게 돌아가신 선조들이 한을 달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경남도청 앞에 제물과 함께 일부 유해를 갖다 놓고 노제를 지냈다. 다음은 '노제축'의 일부 내용이다.

"내 나라 내 땅에서 대대로 살며 전통을 이어 터전을 가꾸어 자손 만대 영광된 국토를 일구어 가꾸려 했으나 좌우 극한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남북이 서로 죽이는 전쟁의 와중에서, 쓰러져 가신 억울하고 한이 맺혀 차마 부르지도 못할 영령들이시어. 삼가 가시는 길 장애 없고 순탄하게 가시옵소서. 뼈에는 이념 없고 쓰러지면 한도 모두 사라진다 했사오니 비록 억울하고 원통하게 가셨지만 이제는 모든 원결 잊으시고 오직 가신 그 곳 극락이기만을 비옵니다."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사진은 유골의 일부.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사진은 유골의 일부. ⓒ 윤성효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사진의 유골의 일부.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사진의 유골의 일부. ⓒ 윤성효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 윤성효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사진은 유골의 일부.
한국전쟁전후 진주민간인희생자유족회는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 산태골에서 발굴되었던 163구의 민간인 유해를 진주 명석명 용산리로 옮겨가는 '백골의 귀향' 행사를 벌이면서 19일 오후 경남도청 정문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사진은 유골의 일부. ⓒ 윤성효



#민간인학살#진주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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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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