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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색 거실 바닥에 샛노란 꽃가루를 쏟아놓고 떨어진 동백꽃
 흰색 거실 바닥에 샛노란 꽃가루를 쏟아놓고 떨어진 동백꽃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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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계신 장모님은 한 달에 두어 개 화분을 만들어 오십니다.

치매를 앓고 계시는 장모님은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와 각자의 생활로 바쁜 가족들이 온종일 함께 있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낮 시간 동안 데이케어센터에서 지냅니다.

그 센터 프로그램의 하나로 원예치료가 있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화분을 만들면서 녹색식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과 정신적 치유효과를 도모하는 활동이지요.

최근 장모님의 작품으로 집안에 분이 늘었습니다. 이런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집안에 화분 들이기가 망설여집니다.

 치매를 앓고 계신 장모님께서 원예치료의 일환으로 만든 분
 치매를 앓고 계신 장모님께서 원예치료의 일환으로 만든 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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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맞추어 물을 주고 볕을 쬐이느라 최선을 다하지만 종내 생기를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화초나 나무를 화분에 심어 집안으로 들이는 것 자체가 나무의 입장에서는 고립이며 주인의 관심에서 벗어나면 생존자체가 어렵습니다. 식물은 집안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땅에 뿌리를 박고 이슬과 비를 맞고 볕과 바람을 쐬어야하니까요.

식물의 기운이 필요하면 공원을 걷고 숲으로 그들을 찾아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모티프원에는 꽃꽂이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기 위해 생명을 자르는 행위가 뒤틈바리인 제게도 위안이기보다 도리어 마음의 불편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허전한 공간이 있으면 생을 누리고 철을 마감한 갈대나 마른 진달래가지를 주어다가 꽂아둡니다. ​

 꽃꽂이 자리를 차지한 마른 진달래가지꽂이
 꽃꽂이 자리를 차지한 마른 진달래가지꽂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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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생명을 단축시켜야하는 부담도 없고 매일 물을 주거나 볕을 쬐어야하는 노동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 

지난 연말에 지인으로부터 동백꽃 화분을 선물 받았습니다. 집으로 배달된 한 달 뒤쯤부터 잎겨드랑이에 꽃망울이 생기더니 한겨울에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한겨울부터 하염없이 꽃을 피우고 있는 거실의 동백나무 화분
 한겨울부터 하염없이 꽃을 피우고 있는 거실의 동백나무 화분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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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꽃이 피고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계속 꽃이 핍니다. 갈래꽃이지만 벚꽃처럼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라 꽃송이가 목이 잘린듯 툭 떨어져버립니다.

요즘 이 동백꽃 때문에 몸씨 가슴이 아픕니다. 흰 바닥에 널브러진 붉은 꽃 옆에 노랗게 쏟아놓은 꽃가루를 보고서부터입니다.

꽃가루는 꽃식물의 수술 꽃밥 속에 들어있는 생식세포입니다. 즉 동물의 수컷 생식세포인 정자와 같은 것이지요. 정자가 난자와 결합되어야 새로운 객체를 생성할 수 있듯이 이 꽃가루가 암술을 만나야 가루받이가 됩니다.

주로 군락으로 자라는 이 동백은 새에 의해 수분(受粉)이 이루어지는 조매화(鳥媒花)입니다.

아무리 꽃속에 꿀을 숨겨도 동박새가 날아 들 리 없는 거실의 동백나무는 사력을 다해 꽃을 피우지만 그것은 한낱 수음(手淫)처럼 무상하기만 한 노력입니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결국 샛노란 꽃술을 쏟고 처연하게 자진(自盡)한 그 동백꽃의 처지가 잊히지 않는 이 봄이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겹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화분도 단호하게 거절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동백나무#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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