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765kv 송전탑 건설 반대'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고(故) 유한숙(당시 71세) 어르신. 지난해 12월 6일 그가 숨을 거두고 어느덧 100일 남짓한 기간이 지났다. 아직도 밀양 송전탑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동안 각계에서 밀양 송전탑 건설을 막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1월 25~26일엔 전국에서 4000여 명의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 어르신들에게 힘을 주러 왔다. 그럼에도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3월 15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그 전날인 14일 저녁,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밀양송전탑 공사중단 요구, 고 유한숙 어르신 100일 추모제'가 열렸다. 쌀쌀한 날씨에도 100여 명의 시민들이 유한숙 어르신을 추모하기 위해 대한문 앞에 모였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정의당 김제남 의원, 김소연 전 금속노조 기륭전자 전 분회장 등도 참석했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지난 100일 동안 송전탑 반대 싸움을 하던 이들이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차리는 일부터도 매우 힘든 일이었다.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 8일, 경찰은 분향소를 차릴 만한 장소에 모조리 진을 치고 있었다. 이 국장과 밀양의 어르신들은 어떻게든 분향소를 차리려고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눠져 싸웠지만, 천막을 설치할 때마다 경찰에 의해 뜯겨나갔다. 마지막으로 확보한 밀양 영남루 앞 체육공원 자리에 설치했던 두 개의 천막 또한 경찰과의 충돌로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천막을 차리는 게 어려웠던 상황에서, 결국 그 추운 날 바닥에 비닐 한 장 깔고 분향소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 국장은 말했다. 그러나 그 위에 구조물 몇 개 세우는 것마저도 구조물이 된다면서 경찰은 철거하려 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을 팔레트를 실은 트럭마저 막고, 거기 실린 팔레트를 빼앗아 도망 다닌 경찰들과도 싸웠다.
그러한 물리적 방해와 함께, 고인에 대한 모독도 있었다. 이 국장은 "수사관이 와서 어르신이 왜 돌아가셨는지 확인하려 할 때, 의식이 남아 있으시던 어르신은 똑똑히 (본인이 음독한 건 밀양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서라는 내용으로) 대답했다"라며 "그 내용을 녹음까지 해 갔으면서, 녹음한 건 공개하지도 않고 엉뚱한 이야기만 한다"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아무 문제 없이 28년 간 양돈업을 해 온 어르신의 가정에 불화가 있었던 양, 부채가 있었던 양 왜곡하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내가 안 되면 우리 자식들이 나서서라도 철탑 뽑아낼 거다"추모제에 참석한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마을 대책위원장 김정회씨는 "경찰과 한전 마피아들은 권력도 있고 돈도 있고 공권력도 있다"라며 "그러나 밀양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가진 게 없다, 몸뚱이와 공권력에 대항하는 욕 밖에 가진 게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희 동화리 마을엔 철탑 세 개 중 두 개가 섰다, 그러나 저는 심장이 뛰는 한 철탑을 다 뽑아내는 그날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발언 마지막에 경찰들을 향해 "끝까지 해보자! 내가 안 되면 우리 자식들이 나서서라도 반드시 철탑을 뽑아낼 것이다"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김씨는 지난해 10월에 보름 동안 부인과 함께 단식투쟁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밀양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한 싸움에 적극적이다.
유한숙 어르신의 아들 유동환(45)씨는 단상에 올라 참가자들을 향해 감사인사를 했다. 그는 "아버지께서 음독 후 병원에서 경찰들에게 '765kv 송전탑 때문에 살기 싫어서 죽으려 했다'고 말씀하신 게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라며 "1인 시위하면서 그 소리가 계속 내 뇌리를 스쳤다, 아버지의 사인(死因)은 가정불화도, 음주도, 심정비관도 다 아니다, 그걸 밝혀내지 못 하면 아버지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 와서 1인 시위도 하고 여러분께 잘못된 걸 바로잡아달라는 심정으로 활동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상경투쟁을 하는 동안 음료수 등을 주며 격려한 서울 시민들, 그리고 이날 추모제에 참가한 사람들 덕분에 더욱 힘을 내게 된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유씨는 부친 죽음의 진상이 왜곡되는 상황을 막고,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자 지난 5일부터 열흘이 넘는 기간 동안 상경투쟁을 진행했다. 그는 날마다 청와대, 국회, 한국전력공사, 경찰청,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 추모제가 끝난 후, 유한숙 어르신의 영정에 헌화를 하고 '밀양 할매'들과 만났다.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이날 현장에 와 있던 할머니들에게 가서 직접 인사를 드리고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등 응원의 뜻을 전했다.
할머니들은 시민들을 한 명 한 명 껴안아주고 손잡아 주면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유한숙 어르신을 기억하면서, 남은 밀양 어르신들께 힘을 보태드리고 싶다는 시민들의 마음이 전달되는 뜻 깊은 순간이었다. 이러한 연대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 한, 밀양 송전탑 건설은 반드시 막아낼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