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의 한 고등학교의 모습. 학생들이 보충수업을 받던 중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쉬고 있다. (자료사진)
서울의 한 고등학교의 모습. 학생들이 보충수업을 받던 중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쉬고 있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학년 초, 교사로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언제일까. 올해 몇 학년을 수업하게 되고, 또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정해지는 때일 것이다. 담임교사라면 그보다도 자신에게 배정된 학급의 아이들과 처음 서로 인사하는 순간일 테고, 임용시험에 합격하고 첫 출근하는 신임교사라면 첫 발령지 학교의 교문을 들어서는 그때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좀 다르다. 몇해 전부터 가장 민감한 관심사는 담당 학년이나 과목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오직 '시간표'였다. 경험으로 미루어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얼마나 좋은 시간표를 받느냐에 달렸다. 교사마다 약간의 개인차는 있지만, 1교시 수업이 많은 시간표를 하나 같이 '최악'으로 꼽는다.

고등학교의 경우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1교시는 8시 30분에서 9시 사이에 시작된다. 물론, 등교시간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다. 빠른 경우는 7시 40분에서 아무리 늦은 학교도 8시까지는 등교하도록 돼 있다. 등교 후 각 교실에서 1시간 가량 자습과 학급별 아침조회를 한 후 시간표대로 교과수업이 시작된다.

1교시 수업의 '공포'

그렇다면 왜 교사마다 예외 없이 1교시 수업을 꺼릴까. 아이들의 '잠' 때문이다. 꾸벅꾸벅 조는 정도가 아니라,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취해 버리는 아이들이 정말 많다. 다가가 깨워봐야 채 5분을 넘기지 못하고, 교실 뒤로 가서 서서 수업을 받으라 하면 벽에 기대 조는 학생도 있다. 수행평가에 벌점을 준다고 을러대지만 그들에겐 아무런 효과가 없다.

작년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닷새 내내 1교시 수업이 있어서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그래도 올해는 일 주일 중 사흘뿐이라 비교적 수월하리라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웬 걸, '숫자'로만 보면 작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다. 학급당 거의 절반 가까이가 잠에 취한 채 속절없이 고개를 떨궜다. 교실이 아니라, 차라리 기면증 환자들의 병실이었다.

1교시 수업이 든 학급의 성적은 당연히 바닥일 수밖에 없다. 작년의 경우, 공교롭게도 두 시간 모두 1교시인 반의 성적은 다른 학급에 비해 평균 점수가 무려 10점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했다. 처음엔 수행평가 점수로 그 차이를 보정해 보려고도 했지만, 적어도 1교시를 피한 다른 과목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겠거니 하고 그 생각을 접기도 했다.

어떻든 잠에 취한 교실을 깨우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 한겨울에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수업을 한 적도 있고, 의자를 다 치우고 이른바 '스탠딩 수업'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아예 시작 전 5분여 동안 잠을 재운 적도 있었다. 돌아가며 발표수업을 시켜 보기도 했고, 모둠별 수업을 통해 참여도를 높여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잠든 교실을 깨우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 어떤 수단과 방법에도 자는 아이들은 어김없이 잤다. 되레 그들은 춥다고, 서 있기 힘들다고 교사 앞에서 얼굴을 붉혔고, 과제를 내주고 발표를 시켜도, 모둠을 편성해 역할을 맡겨도 늘 '남 일'이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이들은 어떤 수업 방식의 변화에도 적응하며 뭘 시켜도 척척 해냈다. 자는 아이들을 깨우기 위한 것인데도, 정작 수업은 늘 그런 노력이 필요 없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 되고 만다.

1교시 시작종이 울리고 출석을 불렀더니 그제야 여기저기서 하나둘씩 얼굴에 벌겋게 손도장이 찍힌 채 뭉그적거리며 잠을 깬다. 숫제 교과서에 침을 한가득 흘린 아이도 있다. 기지개를 켜게 하고 몸에 좋다는 스트레칭도 시켜보지만, 하품만 할 뿐 따라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만사가 귀찮다는 눈치다.

누군가는 쉽게 말한다. 수업시간 아이들이 잔다면, 그건 교사의 책임이라고. 수업이 재밌고 유익하다면 어떤 아이가 잠자겠느냐며, 수업 실력이 모자란 교사들의 변명이라고 쉽게 무질러 버린다. 신임교사 시절,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아이들의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의 수업 방식을 답습하다 보니 생긴 괴리감이 그렇게 표출된 것이라 나름 해석하기까지 했다.

'교사 매너리즘' 그건 오만이었다

그래서 한땐 '겁도 없이' 교사들의 정년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다른 교사들 앞에서 주장하기도 했다. 소통을 통해 아이들의 변화를 따라가려는 열린 자세와 교직에 대한 소명의식, 그리고 열정만 있으면 '잠에 취한 교실' 정도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나이든 교사들이 스스로를 자위하는 변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건 오만이자 그릇된 편견이었다. 어쩌면 교사로서 자학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갓 부임한 신임교사들조차도 수업 때 아이들 깨우는 일이 너무 힘들고 괴롭다며 혀를 내두른다. 거의 예외가 없을 정도다. 소통하려는 의지와 젊은 열정만으로는 도저히 메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조심스럽게 다가와 1교시 시간표를 바꿔 달라며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었다.

교과서를 아예 덮어 버렸다. 그러고는 한 시간 동안 '잠든 1교시'에 대해 원인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 함께 대책을 세워보기로 했다. 몇몇 아이들은 '눈 뜬' 아이들이 피해를 본다며 그냥 예전대로 수업을 하자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절반 가까이 '눈 감은' 교실에서 차마 그럴 수 없다며 그들을 설득했고, 교실은 이내 '아고라'로 변했다.

일단 놀랍게도 '좀비'들이 스멀스멀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 어떤 강압에도 꿈쩍하지 않던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퀭한 눈이 시나브로 생기를 찾아갔다. 엎드려 있던 아이들은 물론, 그냥 수업을 하자고 이야기했던 아이들조차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들어 자기 생각을 발표했다. 그건 개인별 발표라기보다는 집단적 하소연이자 학교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2, 3교시가 되어야 정신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졸면서 등교를 하고, 잠이 덜 깬 상태로 1교시 수업을 받게 되는 거죠. 저희들도 1교시는 선생님들만큼이나 괴로워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건, 영수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이어져온 습관이에요. 이제 와서 바꾸기란 어려울 걸요."

"오전 7시 40분까지 등교는 너무 이른 것 같아요. 그때까지 등교하려면 늦어도 6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아침밥은커녕 씻을 시간도 없어요. 모르긴 해도, 아침밥 먹고 오는 아이들이 채 절반도 안 될 걸요. 어차피 자습 시간 때도 졸기 일쑤인데, 한 시간 정도 확실히 늦췄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걸핏하면 학교에서는 조는 이유가 새벽까지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게임이 무슨 '만악의 근원'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요. 제가 알기에, 여기 조는 아이들 중 게임 좋아하는 아이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아예 스마트폰이 없는 경우도 있어요. 왜 하루 중 14시간도 넘게 앉혀 놓는 학교의 숨 막히는 학사일정엔 그렇게 관대한 줄 모르겠어요."

정말 그랬다. 아이들 대부분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고, 절반 넘게 아침밥을 걸렀다. 충격적이게도 12시 이전에 잠드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고, 2시를 넘기는 경우가 38명 중 일곱이었다. 대개는 학교 숙제가 많아서, 또 방과 후 학원과 독서실에 가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고, 개중에는 자신을 위해 온전히 투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자정 무렵이라는 이채로운 주장도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마치 군복무처럼 '감내'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항변' 일리 있습니다

대개의 인문계 고등학생 아이들은 그 이른 아침에 등교를 해서, 밤 10시가 되어서야 학교 밖을 나선다. 우리 사회에서는 워낙 오래되어 관행처럼 굳어진 일이라 조금도 이상하거나 낯설지 않다. 밤 10시가 돼도 불야성인 육중한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들이, 다른 곳도 아닌, 학교라는 건, 외국인의 눈으로 보자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황당하고 괴기스러운 장면일 것이다.

늦게 자니 늦게 일어나는 건 당연지사다. 대여섯 시간 잠자기도 어렵다. 부족한 잠을 일요일에 벌충한다고 말하는 경우는 그나마 낫다. 여기저기 학원 다니느라 주말이 외려 더 바쁘다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적나라한 현실을 듣노라니, 1교시 때 자는 아이들을 깨울 용기가 감히 나지 않는다.

과거 TV의 오후 '9시 뉴스'가 시작되기 전에 이런 공익광고가 방송되었던 적이 있다. 꽤 오랫동안 이어져 그 카피 문구를 모르는 기성세대는 없을 것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강한 어린이가 됩시다.'

그런데, 그 문구를 추억할 뿐, 더 이상 기억하려 들진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엔 우리 아이들이 겪는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학년 초 시간표를 편성할 때면 어김없이 어떻든 1교시를 피하려는 교사들의 물 밑 작전이 펼쳐진다. 작년에 견줘 올해 '잘 짜인' 시간표에 내심 안도하는 나와, 수업시간에 잠자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고 버럭 화를 내는 나. 잠자는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뻔한' 원인은 나 몰라라 하면서, 애먼 시간표만 가지고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졌다.

종이 울렸고, 그렇게 수업은 끝났다. 처음으로 아이들 모두가 눈을 뜨고 보낸 1교시 수업이었다. 감사할 일이다.


#좌충우돌 수업이야기#1교시 수업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